지나 온 세월, 소처럼 되새김 하기
지나 온 세월, 소처럼 되새김 하기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6.12.31 0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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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겸손을 실천하지 못한 죄, 김장으로 달래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움 한 켠에는 ‘이렇게 또 한 살 먹게 되는구나’란 되새김이 들어 있다. 그래서 인도에선 성스런 동물로 ‘소’가 꼽히는 걸까? “되새김”

나이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땐 ‘어서 세월 갔으면’, ‘빨리 어른 되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길’ 바랐는데 한 살 씩 먹다 보니 그게 아니다. 켜켜이 쌓이는 나이 앞에서 ‘뭘 하고 살았을까’, ‘이 나이 먹도록 뭘 했지?’ 싶다. 이래서 어른들이 ‘세월이 무섭다' 하셨나 보다.

지나 온 세월, 소처럼 되새김질 해 본다.

 

 

‘담배ㆍ술 줄여야지’로 시작한 한 해, 결국 그 지긋지긋한(?) 술ㆍ담배 줄이지도 못하고 여태껏 제자리걸음. 한 해 깔끔하게 마무리 하자, 다짐해도 연말이면 어김없이 같은 모습.

‘싸우지 않고 재밌게 즐기며 살자’로 시작한 한 해, 여전히 싸우면서 재미도 느끼면서 즐기며 살았건만 남는 게 없는 것 같다. 꼭 무에 남아야 세월을 알차게 산 것은 아니건만 왜 이리 허전할까?

 

‘양가 부모님께 자식 같은 자식 되자’로 시작한 한해, 아직도 자식이되 자식 노릇 제대로 못한 느낌이다. 자주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마음 뿐. 다시 생각하면 부모님 마음도 읽지 못하고 외려 더 서운하게 하진 않았는지.

‘금슬 좋은 부부로 살자’로 시작한 한 해, 우리 부부는 정말 금슬 좋았나, 돌이켜 보면 꼭 그런 건 만도, 그렇다고 그러지 못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애는 쓴 것 같은데 아내는 서운한 게 많을 것이다. 그러겠지.

 

‘‘되도록이면 좋은 아버지 되자’로 시작한 한 해, 아이들에게 부담스런 아버지는 아니었는지. 아이와 격의 없이 어울리는 그런 아버지 보단 친구들 왔을 때 “친구랑 왔는데 같이 놀아도 돼요?” 물으면 “그래라” 답하지만 한편에선 ‘시끄러운데~’ 하지는 않았는지.

‘더불어 겸손하게 살자’로 시작한 한 해, 겸손은 몸에 붙지 않고 그래왔던 것처럼 거만스레 행동하기도 했을 터. 말로는 가슴 따뜻한 사람 되어야겠다지만 머리로 사람을 대하지나 않았는지. 겸손이 최고인지 알면서 실천하지 못한 죄, 때 늦은 김장하며 자숙한다.

 

 

30일, 자숙하러 부모님 댁에 간다. 처제와 함께. 큰 누이도 와 있다. 절인 배추 물을 짜고, 버무리고, 통에 담는다. 입맛 땡긴다. 붉은 색이 맛깔스런 색임이 분명하다. ‘겸손이 최고지’ 되새기며 배추 물을 짠다. 김장에 냄새 배지 않게 꼭다리를 자르며, 간과했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배추를 반에 반으로 가르며 거만까지 더불어 잘라낸다.

내년에는 속이 꽉찬 배추처럼, 영글은 알곡처럼, 풍성한 과실처럼, 더욱 알찬 한 해가 되길 바래본다. 모두들 하시는 일들 잘되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나라에도 좋은 일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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