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수원지, 산림욕장으로 인기
수려한 수원지, 산림욕장으로 인기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12.2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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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석의 향토순례 5] 태양이 돌보는 마을 ‘미평동’

▲ 미평동 제용근 주민자치위원장이 미평 수원지를 가르키고 있다.
호암산 밑의 동네라는 뜻의 ‘밑들’에서 유래한 미평동은 1914년 일제 때 미평리로 불리다가 1967년 미평동으로 승격돼 오늘에 이른다.

호암산을 중심으로 조성된 신도심 택지개발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는 미평동은 선경·주공·한화·귀인아파트 등 전체인구의 87%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데 양지·소정·평지·신죽·죽림 등 5개 부락으로 형성돼있다.

이른바 대표적인 도·농 복합형 주거지역이다. 올해 8월말 현재 5000여세대 1만5000여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미평동은 그에 걸맞게 미평·양지 등 초등학교 2개교, 진남여중학교 1개교, 그리고 올해 개교한 충무고등학교 등 모두 4개의 학교가 있다.

거기다 최근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의 지속적인 확장으로 인해 학생들 전용인 원룸 주택이 빠른 속도로 신축되고 있어 대학로 특유의 문화형성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미평동이 시민들에게 친숙했던 근본은 뭐니 뭐니 해도 미평동 산 1번지 일원의 수원지(水源池)라 할 것이다.

지금은 수량이 감소하고 수질이 악화돼 하루 2000톤씩 한화공장 원수 공급에 그치고 있지만 2003년 3월 이전만하더라도 전체 여수시민들 식수공급의 원천이었다.

1930년 일제 때 축조된 수원지는 높이 16.4m 제방길이 160m에 담수면적이 2만8930㎡ 로 유역면적만도 1.07k㎡에 이르러 최대저수용량 16만4800㎡의 위용을 자랑했었다. 당시는 공무원만도 4명이 관리했었으나 지금은 청경 1명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또한 주위경관이 아름다워 초등학생들의 소풍지로 각광받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동네 노인들의 위안잔치마당으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완공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인근 산림욕장과 연계해서 그 수려한 경관은 여전히 주민들의 쉼터로써 손색이 없다.

수원지를 빠져나와 마을로 들어서면 마을구조가 남향으로 일조시간이 길어 항상 햇볕이 잘 든다는 양지(陽地)마을이 있다. 이곳은 1976년 남해화학 공장부지 이주민들 27세대가 집단으로 이주해와 살고 있는데 근면하기로 정평이 나 부촌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은 사람은 제용근(61) 미평동 자치위원장이다.

“이주 당시는 그때 대부분의 시민들 경제적 수준처럼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나같이 어찌나 부지런하게 일을 하시든지 노는 사람 한 명도 없는 유일한 마을이 바로 이 마을입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본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양지마을이라는 지명이 주는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연이어 자랑을 했다.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최근 동네부녀회가 주축이 되어 완성을 본 노인들의 회관이 바로 그것이다.

때마침 회관에는 할머니 몇 분이 모여서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매우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고령화시대를 맞아 동네마다 노인들의 쉼터건립추진은 당면한 주요 시책으로 부각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미평동의 문화유적으로는 1910년부터 1950년까지 죽림서재(竹林書齋)라는 서당이 있어 한학의 요람이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고인돌로 보이는 거석(巨石)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도심 한복판의 미평동은 울창한 숲과 근면한 사람들의 조화로 삶의 질 향상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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