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도의 김가가 기른 것 '김'
태인도의 김가가 기른 것 '김'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12.1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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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호의 물고기세상 11]

홍조식물 보라털과에 속하는 바닷말(해조류)인 김은 얕은 바다의 바위에 이끼처럼 붙어 사는데 길이 30㎝, 폭 6㎝정도의 넓은 띠 모양이고 가장자리에 주름이 져 있다.

빛깔은 검은 자줏빛 또는 붉은 자줏빛이며 10월경에 나타나기 시작해 겨울에서 봄까지 번식하고 그 후에는 차차 줄어 여름철에는 보이지 않는다.

김의 한자 이름은 해태(海苔)이고 지금도 중국에서는 하이타이(海苔)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김을 채취해 식용한 것은 최소 5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경상도지리지」에 동평현(東平縣), 울산현(蔚山縣), 동래현(東萊縣), 장기현(長夔縣), 영일현(迎日縣),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의 토산공물부(土産貢物簿)에 해의(海衣)라는 이름으로 실려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남도 광양군 태인도의 토산품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면 해태가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김’ 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이며 사연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김 양식법을 창시한 사람은 김여익으로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투쟁하다 임금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방황하다 1640년 태인도에 들어가 살면서 해변에 떠내려 온 나무에 김이 붙어 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김양식을 시작했다.

김여익이 양식한 김을 하동장에 내다 팔면서 ‘태인도 김가가 기른 것’ 이라는 뜻으로 ‘김’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2차 대전 중 해안지방에 있던 일본군의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김을 따서 식량으로 급식한 사실이 있는데 전쟁이 끝나고 전범들에 대한 재판이 벌어졌을 때 김을 먹인 사실이 포로에 대한 가혹 행위로 인정된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당시만 해도 김에 대해 알지 못했던 미국 사람들은 김을 구워 먹인 것을 얇고 검은 종이를 강제로 먹인 행위로 간주한 때문이다. 김은 채취한 시기에 따라서 품질이 다른데 일반적으로 겨울에 채취한 것이 단백질 함량도 높다.

마른김에는 100g당 30~40g의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콩에 함유된 35g보다 많은 양이다. 김에는 또 비타민이 풍부해서 겨울에 푸른 채소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비타민 공급원으로 중요한 구실을 했다. 마른김 1장에 달걀 2개 분량의 비타민A가 들었고 마른김 3장이면 장어구이 1접시와 맞먹는다.

비타민B1은 야채보다 많고 B2는 우유보다 많으며 비타민C는 밀감의 3배나 들어있다. 지방은 적은 편이지만 칼슘과 철, 인, 칼륨 등 무기질이 풍부하다. 김은 식욕을 돋우는 독특한 향기와 맛을 가지고 있는데 그 향미는 아미노산인 시스틴과 탄수화물인 만닌 등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비타민 B2는 일반적으로 동물성 식품에 많고 식물성 식품에는 적은 편인데 김에는 생선이나 고기만큼 들어있다. 김은 빛깔이 검고 광택이 나며 향기가 높고 불에 구우면 청록색으로 변하는 것이 상품(上品)이다.

청록색으로 변하는 것은 김 속에 있는 피코에리스린이라는 붉은 색소가 청색의 피코시안이라는 물질로 바뀌는 데다 엽록소가 퇴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에 젖거나 햇빛에 노출되면 이들 색소는 청록색으로 변하지 않고 향기도 없어지므로 마른 김을 보관할 때는 습기가 없고 서늘한 곳에 두어야 한다.

임여호 여수지방해양수산청 수산관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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