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평화운동 60년’ 지역사회단체 맏형
‘생명과 평화운동 60년’ 지역사회단체 맏형
  • 김석훈 기자
  • 승인 2006.09.13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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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맞는 여수YMCA, 지역 위한 발자취
   
▲ 1951년 관문동회관 신축 모습
여수반도와 지역시민사회의 중심에 서있던 여수YMCA가 올해 창립60주년을 맞았다.

여수YMCA는 오는 25일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 체육관에서 창립기념식을 갖고 지나온 60년을 되돌아보고,또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60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내부적 성찰과 계획의 시간을 다진다.

특히 여수Y 60년사를 편찬하고, 60주년 사진전시회, 세계 십자가 전시회, 기념식 등을 갖고 목적과 이념토론회를 거쳐 그 결과를 ‘60년 비전’으로 선포할 방침이다.여수Y의 60년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아본다. - 편집자 주-

시민사회단체의 주도자 여수YMCA

한국YMCA는 지난 100여년 동안 한국사회가 합리적인 사회, 민주적인 사회로 가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여수YMCA의 지난 60년간 부흥기가 있었는가하면 침체기가 있었고, 편한 세월이 있었는가하면 고난의 세월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Y를 거친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렸고 그 땀이 지금의 여수YMCA에 깊숙이 배여 있다.

여수Y가 했던 많은 일 가운데 가장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시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건과 3려통합이다.

1995년 7월 시프린스호 사건이 나자 해당 기업은 어떻게든 지역 여론을 무마하기 위하여 각계각층을 포섭하려 했다.하지만 Y와 함께 여수지역 시민단체는 혼연일체가 돼 해양오염조사와 그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 했다.

또 3려 통합도 각 자치단체와 지역 지도자들의 소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주민 여론조사를 실시, 통합에 이를 수 있는 주도적 운동을 다 했다.

   
▲ 사회변혁운동에서 여수YMCA는 언제나 맨 앞 줄에 있었다.
여수YMCA 창립


YMCA전국연맹에서 출판된 ‘한국YMCA운동사’ 기록에 의하면 여수YMCA는 1945년 9월10일 창립됐다.

여수Y가 1945년 9월에 창립하였다는 기록은 정식적인 YMCA 창립이라기보다는 논의와 활동을 시작하였던 시점으로 해석된다.

1946년에 교회 및 주위의 요구에 의하여 Y운동을 보다 활발히 하기 위하여 연합회 보조와 지방유지의 후원으로 관문동에 사무실 및 주택 각 1동을 구입하고 이사를 8명으로 개편하고 총무로 황진석씨를 선출해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했다.

창립 당시 회장은 이철, 총무는 황진석이었다. 이는 주로 여수읍 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보충자료로서 기록이 남아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1945년 11월 15일 주로 여수읍 교회를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초대 회장은 유종섭, 총무는 문명규, 이사는 6명으로 선임되었다는 내용이다.

또 다른 기록에는 1946년 9월 25일 공화동에 구 교육청 건물을 임대하여 각종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사무실과 주택이 부서지고 교우들이 피난하자 일시 지하시설에서 활동을 펼치다가 수복 후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청소년과 함께한 60년대

1968년 여수YMCA는 창립22주년 기념행사를 기점으로 사회참여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올바른 청년상을 위한 심포지엄, 여수지방 청년생활의 개선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윤락여성 및 직업소년 위안 및 인격지도 교육을 진행하였으며 ‘청소년을 새롭게’란 주제로 외부강사를 초청하여 청소년 대상 강연을 집중적으로 행했다.

1960년대 말기에 여수YMCA가 가장 중점적으로 시도했던 사업은 사회의 밑바닥에서 방황하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불우한 청소년들을 껴안은 사업이었다.

여수는 다도해의 중심이고 여천공단 개발 등 산업화의 중심지로 도서지방에서 무작정 가출한 청소년들이(당시 여수경찰서 통계에 의하면 약 300여명) 시내에서 배회하며 구두닦이 혹은 걸식 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YMCA는 연등동 소재에 정명민씨(현 전남병원원장 선친)가 부모님 묘소 이장터(대지60평)를 YMCA에 기증하여 그곳에 16평 슬라브 건물을 세워(정순계 강석원 증경이사장과 박경하 당시 전남일보지사장 중심으로 건축비 모금함) “희망의 집”이라 간판을 걸고, 가출하여 구두를 닦고 있는 청소년을 모집하여 평균 30여명을 수용하였으며, 낮에는 일터에 나가서 일하며 저축하고 밤에는 야학을 운영했다.

새회관 건립과 시민사회주도

여수YMCA는 1987년 지역사회 모금운동을 통해 현재의 회관자리에 새롭게 회관건축을 했다.

40여년간의 힘들고 어려웠던 잠행의 역사를 견디며 쌓아왔던 힘을 모아 일거에 지상에 그 몸집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때부터 여수YMCA는 여수여천 지역사회에 시민운동단체로서 사회교육, 문화단체로서 청소년단체로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재정적으로는 아기스포츠단, 어린이Y 등 사회교육사업을 통해 든든한 기반을 쌓게 되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을 위해 가장 앞장서기 시작했다.

1980년대초 여천화양면의 핵발전소 부지설정반대, Y중등교육자협의회운동을 통한 시민자구운동, 시민고충처리센터인 시민중계실 개설, 공정선거실천감시운동본부 활동, 우리농산물먹기 시민캠페인 등 전국적인 차원에서 각종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90년대 지방자치 시대가 되면서 전국적인 문제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눈을 돌려 지역사회의 주체인 시민의 자치역량을 육성해 내고 지역발전과 역사, 문화, 환경보존을 위한 각종 운동을 실시했다.

여수시민의 식수원인 주암댐 상사호 상류 폐기물 처리장 건설반대운동, 여수시의 올바른 하수종말처리장 만들기, 언론인촌지사건 고발, 율촌공단부지 내 임진왜란 유적지 장도 살리기 운동, 씨프린스호 기름누출사고로 인한 해양오염대책 본부활동, 여천공단환경문제시민대책본부 활동, 여천화양면 핵발전소 설립반대운동 등 지역사회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YMCA가 시민과 회원들의 요청 속에서 앞장 서 참여하고 있다.

   
▲ 지난 2004년에 개국한 인터넷 청소년 방송국
청소년 문제 앞장


회원활동으로는 청년 학생뿐만 아니라 증가하는 아파트 지역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환경운동, 생명운동차원의 생활협동조합 ‘등대만들기’운동을 통해 지역사회조직 운동을 시도하였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소년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청소년 사랑의 전화를 개설하여 바른 청소년을 성장시킬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Y는 이 땅이 하나님 나라란 경제적, 정치적으로 강한 나라, 강한 계층, 강한 자가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약한 자, 힘없고 가난한 자, 소외받는 자들도 함께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한다.

아울러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생명체란 자각 하에 생명을 사랑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가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이에따라 여수Y는 60년의 오랜 어려움의 역사의 기틀위에 여수반도가 아름다운 자연과 지역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회원, 지역주민과 함께 노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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