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섬의 안쪽에 위치해 ‘안섬’으로 불려
섬과 섬의 안쪽에 위치해 ‘안섬’으로 불려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6.0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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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의 땅이야기 85] 남면 안도/소리도
금오도의 남쪽에 있는 섬 안도(安島)는 섬과 섬의 안에 즉 안쪽에 있는 섬이어서 <안 섬>이라고 부르던 섬이다.

한 때는 섬의 모양이 기러기 모양을 닮았다 하여 기러기 안(雁)자를 쓰기도 했다. 1860년 경신년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섬을 뒤덮은 울창한 삼림이 불에 타고 100여 호가 넘는 민가는 단 한집만을 남기고 모두 불타버려서 오갈 데가 없던 주민들은 봉산으로 지정되어 살수가 없던 금오도로 숨어 들어가 오늘날의 금오도를 일구게 되었다고 한다.

안도리에는 안도리와 서고지 마을이 있는데 안도리에는, 안도마을과 함께 이야포, 상산동, 오지암, 동고지라는 작은 마을이 있고 서고지리에는 서고지 마을과 부도라는 작은 섬에 있는 부도마을이 있다.

이야포는 <이앳개>를 한자로 고친 땅이름으로 <이애>에 있는 개(浦)란 뜻인데 섬마다 <이애>라고 하는 땅이름이 많아 흥미롭다. 상산동은 높은 산이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며 <동고지>는 동쪽 곶에가 마을이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고, 서고지는 서쪽 곶을, 부도는 섬의 형상이 가마솥 모양이어서 가마도로 부르던 이름을 한자로 고쳐 적은 이름이다.

이야포의 낮은 야산 자락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의 작은 분묘가 <이야포의 비극>을 담고 있는 곳이다. 이 곳은 한국전쟁시 제주도를 목적지로 하여 떠나온 피난민 수백 여 명이, 화물선에 의지하여 부산과 남해의 욕지도를 거쳐 오다 비교적 전쟁의 포성이 멈추었다고 생각되던 남해안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해변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1950년 8월 3일 한가로운 한 낮의 여유를 맞고 있었던 이들은, 이유를 알 수 없던 미군비행기의 폭격으로 민간인 25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가 최근에야 당시의 비극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안도의 남쪽에 있는 소리도는 한자로도 소리도(所里島)라 하다가 조선시대 말부터 소리도를 솔개로 뜻풀이하여 솔개 연(鳶)자를 써서 연도라 하였다.
까랑포와 떡개 등이 있는 연도 마을의 기원에 대한 전설로는, 삼국시대에 유배지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이 뗏목을 타고 이곳에 이르렀지만 사방이 절벽이라 상륙을 못하다가, 잡목들이 우거진 섬의 목 입구로 바닷물이 들고나는 것을 보고서, 바가지를 띄워서 바가지를 따라서 들어오니 지금의 연도만이 나타나서 그때부터 살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섬의 주변에서 마제석부, 토기, 금동립 불상 등이 발견되었으며 옛날 제주도를 지나기 위해서 머물렀던 곳이라서 역포로 불렸다는 역포 마을이 있다.

연도의 <까랑포>에는 월호도의 <글성이>처럼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려던 서불이 지나는 곳마다? 새겼다는 서시과처라는 큰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왔지만 아쉽게도 1959년의 사라호 태풍 때 바위가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연도의 가장 남쪽, 연도 등대 부근에는 보물이 숨겨진 동굴로 알려진 <솔팽이 굴>이 자리하고 있다. 연도 출신이 카투사 근무시절에 네덜란드인 후손에게서 보았다는 보물지도의 이야기로 보물탐험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였었다.

올 여름 피서는 연도의 보물동굴 탐험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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