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세상 꿈꾼다”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세상 꿈꾼다”
  • 박태환 기자
  • 승인 2006.03.27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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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의 대모 박계림 자활원장
   
▲ 여서동에 새 둥지를 튼 농아자활원 원생들. 왼쪽에서 두번째가 박계림 원장.
“청각장애인들이 느끼는 벽을 일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사지는 멀쩡한데 듣지를 못해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고 말하지를 못해 자신의 맘을 전달할 수 없는 아픔. 이처럼 큰 아픔은 없다”

여수지역 청각장애인들의 대모격인 농자자활원의 박계림 원장(52, 여)은 청각장애의 아픔을 이렇게 표현했다.

박 원장이 청각장애인들과 동거동락을 같이 한 것은 1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시절 호기심에 배웠던 수화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

당시 여수시 충무동에서 찻집을 운영하던 박 원장은 가끔 가게를 찾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청각장애인의 말인 수화로 주문을 받았다. 깜짝 놀란 청각장애인들은 이후 박 원장을 찾기 시작했다.

더구나 청각장애인들의 집이었던 농아자활원이 충무동에 위치해 있어 박 원장의 다방은 청각장애인들의 모임장소가 됐다.

청각장애인들이 아프면 함께 병원을 찾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대신 머리를 감싸쥐었다.

박 원장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것이라면 수지침에서부터 간병교육까지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체계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늦은 나이지만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2003년 정부가 모든 사회복지시설에 대해 신고를 의무화하도록 법령을 개정했다. 충무동 농아자활원까지 가기 위해서는 등산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정도의 고지대였던 상황.

박 원장은 “이 참에 청각장애인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농아자활원을 마련할 생각”을 했다. 청각장애인들이 고생을 해서 모은 돈 2300만원을 가지고 여수지역 곳곳을 돌아보며 땅을 물색했다.

그렇게 2004년 화양면에 땅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때 얼마나 기뻤던지 청각장애인들과 깨끗한 새 집에서 살 수 있게 됐다”며 환호를 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수자원구역으로 묶여 건축물을 지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다 인근 주민들의 반대도 생각보다 거셌다. 눈물을 머금고 그 땅을 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포기를 할 즈음 도움의 손길이 도착했다. 여서동 대치마을 인근에 좋은 땅이 있다는 이야기기가 들어 왔다.

그렇게 지금의 땅에 농아자활원을 건립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현 상황이 안타깝다”는 박 원장은 “이제는 장애를 가진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모두 함께 생활하는 그런 시대가 곧 올 것이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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