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의 봄은 오지 않았다
여성인권의 봄은 오지 않았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3.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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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강정희 <편집위원, 여수성폭력상담소장>
   
용산 초등학생 성추행 살해사건을 계기로 연일 성폭력 보도가 차고 넘치던 와중에 새로운 사건들이 우리를 또 다시 공분하게 한다.

교도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자살을 기도하여 현재까지 의식불명의 상태에 있는 서울 구치소의 여성재소자 인권유린의 실태는 여성재소자에 대한 인권유린의 현 주소를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사건발생 직후 재소자는 여성교도관에게 피해사실을 알리며 적극 대처 했으나 조사과정에서 사건의 은폐와 축소를 위해 협조할 것을 강요당하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다.

이는 구금시설이 인권의 사각지대로서 이들에 대한 처우가 어떠한지를 반영하고 있으며 굴욕적이고 강압적인 조사과정에서 피해자가 겪은 극심한 고통은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또 보수언론과 보수정당의 추악한 권언유착의 부적절한 술자리에서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해 물의를 일으킨 한나라당의 최연희의원 사건이 터졌다.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여성은 술자리에 합석하게 되면 성적 대상이 된다는 사실과 또한 식당주인인 줄 착각했다는 변명에서 여성에 대한 이중 차별을 여실히 확인 하였다.

또한 이번 사건은 학력이나 직업과는 무관하게 모든 여성들이 성추행·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이 취하면 좀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술을 핑계대는 남성사회의 암묵적 카르텔은 피해자에 대한 고통과 상처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에 질세라 여당의 한 의원은 ‘아름다운 꽃을 보면 누구나 그 향기에 취하고 싶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것이 자연의 순리이자 세상의 섭리이다’ 라고 하였다.

봄타령, 꽃타령도 좋지만 자신의 성적인 욕구충족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침해해도 된다는 말인가? 이처럼 새삼스러울것도 없이 성폭력은 우리의 도처에 일상적으로 끊임없이 존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초강력 스펙터클한 사건이 아닌 그 동안 수 많은 성폭력 사건들은 사건화 되지 못했고 고소할 만한 일이 아니었고 기소 할 만한 일이 아니고 처벌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딸 같아서’ ‘여동생 같아서’ ‘손 좀 만지고’ ‘가슴 좀 만지고’ ‘커피 심부름 시켰을 뿐인데’ ‘그 깟 일로 문제삼는 그 여자가 신경과민이다’ 라고 하는 우리의 일그러진 성의식들이 성폭력을 양산하는 근본원인 이었으며 고통당하는 피해자는 목숨을 내 놓아야만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사회의 가부장적인 성문화와 성차별적인 관행이 우리들의 관념속에 뿌리깊이 성불평등과 성폭력문화로 지배해 왔음을 요즈음의 현실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최근 산발적으로 이뤄지는 성폭력 관련법의 논의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성폭력 문제를 조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폭력 범죄자의 경우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양형기준을 만들어 공시해야 하며 더 나아가 성범죄자의 재범방지 및 신속한 수사를 위해 진술녹화제의 전면 실시와 아동·장애인 피해자에 대해 국선 변호인제도 도입의 검토 등 수사절차상의 장치를 법제화 하여야 한다.

특히 전자팔찌, 화학적 거세등 강경대책을 논의하기에 앞서 기소율이 42%~45%에 그치고 있는 성범죄에 대한 문제인식이 우선 선행되어야 하고 이 논의들이 일관성 있게 입법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가 고귀한 삶의 주체로서 자유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평등하고 성숙한 사회를 원한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꽃의 향연이 한창이다. 봄바람 꽃바람속에 ‘여성인권보장’ 이라는 훈풍이 불어오는 진정으로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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