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의 리더십을 원한다
징기스칸의 리더십을 원한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2.1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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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옥금 <함께하는여성회장>
주말 저녁이면 ‘징기스칸’ 이라는 드라마가 내 시선을 잡아두었던 때였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징기스칸이 가졌던 유목민의 마인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인터넷, 디지털, 지구촌, 세계경영, 열린마음, 지구공동체, 연방제의 개념들 모두가 정착민족보다는 유목민족의 특성에서 기인하였음을 실감하면서 흥미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징기스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착문명과 유목문명의 차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정착민족에게는 소유가 강하게 나타나지만 유목민에게는 개인 소유보다는 함께 공유하는 것이 강하게 나타난다. 정착사회에서는 군왕제가 발달하여 왕이 백성 위에 군림하지만, 유목사회에서는 리더를 중심으로 한 봉사정신이 발달한다. 전쟁터에서 보통은 왕이 군대 대열을 뒤따르지만, 징기스칸은 전쟁을 할 때에 자신이 가장 앞장서고 아들들이 그 옆에 따른다.

정착문명을? ‘성을 쌓는 문명’ 이라하자, 유목문명의 인간은 ‘길을 만드는 민족’이라 할수 있다. 정착민족을 ‘과거형 인간’이라하면 유목민은 ‘미래형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문명은 어떤 인간형을 원하는가?
21세기는 유목문명의 마인드가 지배하는 시대임이 분명하다. 인간은 오랫동안 정착문명 속에서 살아왔다. 정착은 반드시 어떤 근거지를 필요로 한다. 정착은 바로 자본과 영토를 필요로 하였고 자원이나 이념을 필요로 하였다. 또한 안정된 직업과 평생직장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제 국가든 개인이든 울타리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모든 칸막이는 무너지고 경계는 파괴되고 정착의 고정된 근거지. 평생직장의 개념도 없어진지 오래다.

지구촌은 거대한 전자통신망으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 정보를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유목문명으로의 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지방에 산다는 것이 더 이상 경쟁에서 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미래학자들 가운데 유목문명의 도래를 정확히 읽어낸 사람은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 정도다. 그는 도시유목민의 사회를 예견했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일상과 가치관을 보면서 나 스스로도 여기에 동의 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지상위에 고정되어있던 모든 것은 더 이상 그 지배권과 기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은 움직이고 움직이는 모든 것은 변한다 라는 광고카피가 있다.

혹여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금 누리고 있는 자신의 영역에 아직도 자신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제 기업이든 학교든 군대든, 국가든, 지방정부이든 간에 급격한 변화에 얼마나 유연하게 얼마나 창조적으로 대응하느냐가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다.

13세기 징기스칸이 이끄는 유목민들은 농사를 지으며 한곳에 가만히 머물러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한경쟁의 한가운데서 수렵과 목축, 약탈만으로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모래바람과 마른 목을 적실 물한모금을 얻기위해 수백칼로미터를 걸어야만 하는 황무지, 영하 40도의 추위와 맹렬한 더위만이 존재하는 인간을 한사코 거부하는 땅이 바로몽골이라는 것을 알고 여행자들은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고 긴장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사막에서 징기스칸 이전까지는 차라리 굶어 죽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징기스칸은 척박한 땅을 끝없이 이동하면서 살아야 하는 자신들의 유목 운명을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는 힘으로 만들어냈다.

지금 우리는 징기스칸의 유목이동 마인드를 가진 지도자를 원한다. 자꾸만 거꾸로 가는 인구감소에 대한 대책, 농도의 잇점을 살려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경제적인 안목, 여성의 힘을 인정하고 적극 활용 할줄 아는 페미니스트적인 사고, 생각이 다른 누구라도 포용할 줄 아는 유연성, 육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개발만이 아니고 바다에서 육지를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놀라운 발상과 낭만의 소유자를 뽑고 싶은 것이 유권자의 소망이라면 너무 소박하지 않은가.

드라마속에서 징기스칸은 대단히 인간적인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전쟁중에도 노모를 모시고 다닐 만큼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징기스칸의 이야기는 힘없고 가난한 수많은 약자들에게 들려주는 희망의 이야기였다.

지금 우리는 징기스칸의 희망을 원하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지역적 한계를 함께 넘을 리더자를 원한다.

몽골 공화국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가면 돌궐제국을 부흥시킨 명장의 비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정착문명과 유목문명의 차이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과 지향해야 할것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길을 만들어 가는 유목민의 마인드를 우리지역에 적용시켜보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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