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배 돈, 엄마 아빠에게 맡기면 안된다?”
“세배 돈, 엄마 아빠에게 맡기면 안된다?”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6.02.03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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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화상 5] 설과 세배 돈
   
아버지인 난, 명절에는 돈이 없어도 부모님들께 자식의 얼굴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야 낳아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한다는 생각입니다. 돈이 다가 아닌 명절, 훈훈한 인정이 있는 명절, 얼굴만 봐도 좋은 것이 명절의 의미라고 여기니까요.

먹을 것이 부족했던 어린시절, 설하면 풍성한 먹거리보다는 설빔과 세배 돈을 받는다는 생각에 많이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새 옷을 얻어 입지 않더라도 동네 한바퀴를 돌고 나면 얼마의 세배 돈이 생길 것인지가 밤잠을 설칠 정도로 최대 관심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 나는 대략 만원 내외를 세배 돈으로 받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번 설에 아홉 살인 딸과 여덟 살인 아들은 세배 돈으로 사만 칠천 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요즘 말로하면 횡재(?)했지요. 한편으론 돈 무서운 줄 알아야 하는데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이 오천 원 권 지폐가 나와 세배 돈을 건네던 단위가 오천 원으로 낮아져 주는 사람의 부담이 작아진 탓도 있지만 내가 받았던 세배 돈과 아이들이 받은 액수가 별반 차이 없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세배 돈은 천원으로 고집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세배 돈도 명절에 마음을 나누는 선물처럼 액수를 떠나 정의 나눔이어야 하는데 어느 때부턴가 아이들에게 경제적 가치 척도로 얼마를 벌어야겠다는 의미로 변질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명절이면 주머니가 왜 그리 얇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세배 돈은 명절을 나기 위해 꼭 ‘준비된 지갑’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설 날 오후, 아버지 집에서 나와 처가에 가는 길에
“여보, 장인어른과 처남들 생선회 잘 먹는데 회 좀 사지?”
“…….”
아내는 말이 없습니다. 아마 주머니가 달랑달랑한 모양입니다.

작은 광어회를 사면서
“아나고회 하나 더 사지?” 하며 집으려는데 아내는 손사래를 하며
“아부지가 멍게 잘 드시니 멍게 하나만 더 사요” 합니다. 이런 땐 정말이지 미안하기도 하고, 머쓱해 집니다.

처가에서 달랑달랑하던 현금이 떨어져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즐거움을 훔치듯 세배 돈을 빌렸습니다. 그것도 아이들이 잊지 않도록 대신 보관하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아이들은 친지들에게 받은 세배 돈으로 그동안 사지 못했던 것들을 사려고 할 터인데…….

이쯤되면 말이 빌린 것이지 강탈(?)이나 다름없지요. 이런 것을 아는지 주위에서는 ‘세배 돈, 엄마 아빠에게 맡기면 안된다’는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이 조언을 들으면서 아버지인 난 뜨끔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들에게 ‘눈치없이 그런 말을 한다’는 투로 눈을 흘기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빌린(?) 돈은 다시 다른 아이들에게 정을 나누는 세배 돈으로, 부모님들의 용돈으로 고스란히 들어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향의 정이 담긴 쌀 가마니와 먹을 것을 싣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이게 ‘돌고 돈다’는 돈의 의미는 아닐까요?

한편, 명절이면 뒷편에서 아버지들의 시름은 깊어만 갑니다. 아버지들은 아이들 때때옷도 사야하고, 부모님과 친지들께 드릴 용돈과 선물, 아이들에게 나눌 세배 돈, 이동할 여비 등이 서민의 삶에서는 여간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이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은 고향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객지에서 쓸쓸한 명절을 보내곤 하겠지요.

   
이렇듯 아버지들은 적으면 적은대로 명절을 보내면 되는데 그게 아닙니다. ‘남편이 설 비용을 얼마나 줄까?’ 기대하는 아내의 얼굴과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 혹여 사장 명함을 가지다보면 직원들의 기대하는 눈치 등은 보통 부담이 아닙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면 아버지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멍에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지 않는가 싶습니다. 그래서 명절이면 마냥 좋았던 마음에서 철이 들면서 점점 싫어지고 부담스러운 명절로 변하는 게 아닐는지.

여하튼 어려운 세상에서 제대로 된 부모 되기도 힘들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은 무척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도 지난 시점에서 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남편과 아이들의 아버지들에게 이쯤에서 ‘고생이 많다’고, ‘고맙다’고 격려의 말 한 번 전해보는 게 어떨까요? 다시 한 번 건강과 가정의 화목을 기원해 봅니다.

오마이뉴스와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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