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 중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마을
돌산 중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마을
  • 남해안신문
  • 승인 2006.01.16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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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의 땅이야기 68] 돌산읍 서덕리
   
▲ 덕곡리에 있는 느티나무
서기, 덕곡, 승월마을로 이루어진 법정리 서덕리는 돌산이 군이 되었던 1896년에서 1914까지 지금의 돌산도 지역인 두남면의 면소재지 마을이었다.

섬인 돌산도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끼지 않은 마을로 조선시대 수군의 진이었던 방답진 에 군청이 자리하자 돌산도의 면행정을 담당할 마을을 고르던 중에 한학을 공부한 선비가 많다는 이유로 서기마을에 두남면 사무소를 두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서기마을의 옛 이름은 ‘서골’로 알려져 온다. 마을 전설에 지나던 길손이 마을 앞에서 쉬어가다 ‘예사로운 곳이 아닌 상서로운 땅이다‘라고 하여 서(瑞)골이라 불렸다고 유래를 전하고 있다. 서기(瑞基)라는 마을의 이름을 뜻풀이한 전설로 보이는데 1789년의 호구총수에서는 서의(西衣)동으로 기록하고 있어 억지스럽다.

호구총수 기록으로 보면 서골은 서쪽 골짜기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보인다. 서기마을은 다른 이름으로 ‘서당골’로도 불려왔다.

일제 초기에도 멀리 남면에서까지 서기마을의 서당으로 글공부를 위해 찾아왔다고 하며 ‘글방골’로도 불렸다고 한다. 마을 북쪽 수죽산은 산 정상부근에 습지가 있고 산죽이 많이 자라기 때문에 수죽(水竹)산으로 이름 지어졌으며 산정에는 작은 산성이 전해오고 있다. 마을과의 사이에 있는 골짜기는 ‘중산골’이라 하는데 폐사지가 있기 때문이다.

서기마을 서쪽에 위치한 덕곡마을은 마을의 위치에 걸맞게 ‘짚은골’이라 하던 지역으로 한때는 깊은 골짜기의 한자이름인 심곡(深谷)마을로 불렸다. 짚은골 외에도 돌산도의 가장 높은 산인 봉황산(460.3m)앞이라 하여 산전(山前)이라 했으며 볕이 잘 드는 양달에 위치하여 양지(陽地)마을로도 알려졌다.

덕곡마을과 서기 마을 사이의 골짜기는 ‘가장골’이라 한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에 위치한 골짜기나 풍장을 위해 가매장을 하던 골짜기의 의미로 부르던 가장골이 덕곡마을에서는 ‘동학란 때 많은 시신을 가매장하여서 가장골이라 했다’고 전해지고 있어 최근 여수지역의 동학농민전쟁의 이야기가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시점에서 동학의 흔적을 살피는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지쪽 덕곡과 마주보고 있는 승월마을은 ‘되달리’ 또는 ‘되:뜰’이란 본래의 땅이름이 있었다. ‘되달리’를 한자로 기록한 이름은 승월(升月)인데 승월을 ‘되처럼 작은 들’이라 해석하여 마을 주민들은 놀림이 되기도 했다한다. 이런 이유로 되 승(升)자를 오를 승(昇)으로 바꾸었고 떠오르는 달처럼 아름다운 마을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하게 되었다.

되처럼 작은 들에서 떠오르는 달처럼 이름이 바뀌어서였는지 승월마을 앞들은 돌산도의 가장 소중한 땅으로 변했다. 한 때는 김치 항아리의 천덕꾸러기 신세에서 이제는 미각을 돋구는 고급 김치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돌산 갓의 주산지가 승월마을이며 이 마을 주변에서 생산되는 갓이 가장 품질이 좋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마을 주변에는 의미를 알기 어려운 옛 땅이름들이 여러 개가 전해온다. ‘도토밭골’, ‘도도전골’, ‘지치밭골’, ‘알림곡’, ‘비상골’ 등의 땅이름들이 말하는 사람마다 비슷한 우리말과 연관 지어 전하는 다양한 유래와 함께 풍부한 상상력을 이끌어내게 한다.

마을 뒷산에서 군내리로 이어지는 산등성이는 ‘질매재’로 부른다. 소의 등에 안장처럼 얹어서 짐을 지게 하는 질마(길마)처럼 생긴 산등성이의 모양에서 유래되었는데 이제는 설명하기가 어린학생들에게 초가집 설명하기 만큼 어려워진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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