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푸른바다를 보았지
깊고 푸른바다를 보았지
  • 박태환 기자
  • 승인 2005.12.30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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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출신 한창훈씨 항해기 출간
   
▲ 부산에서 두바이까지 21일동안 바닷길을 항해한 네명의 작가들. 왼쪽부터 안상학 유용주 박남준 한창훈
자, 바다다. 그것도 대양이다. 우리는 현대상선 측의 전폭적인 협조에 힘입어 컨테이너선 하이웨이호를 타고 두바이를 다녀올 수 있었다. 대만의 지룽, 홍콩, 중국의 얀티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포트클랑, 그리고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항해 3만 리, 총 스무하루가 걸렸다. 이 책은 그 기록이다. 책머리에

대양으로 나선 작가들

박남준, 유용주, 안상학, 한창훈. 문단에서 흔히 두주불사의 ‘죽음의 사인방’이라 불리는 이들이 한 배를 탔다. 올해 4월, 정말로 한 배를 타고 남지나해와 인도양을 항해했다.

현대상선의 2200TEU급 컨테이너선을 타고 부산에서 저 머나먼 아라비아반도의 두바이까지, 꼬박 스무하루간의 대장정이다.

이들은 작가들의 상상력이 육지에, 그것도 1990년대 이후로는 카페와 여관에만 갇혀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비좁은 땅에서 졸렬해진 상상력을 해방하려 바다로 나설 기회를 구하던 이들은 끝내 대양을 가르고 왔으니, 어쩌면 이번 여행은 한국문단에서 유례없는 상상력 회복 이벤트라 할 만하다.

이들을 이끈 사람이 거문도 출신의 한창훈 소설가. 한 소설가는 그동안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등 바다를 소재로 한 작품을 즐겨 써 왔다.

이들의 항해와 기록이 “해양 시대를 대비한 해양문학의 새로운 첫걸음”이 되고, “앞으로도 교역의 현장과 대양을 통한 소통의 언어를 이루기 위해 현역 작가들은 절실하게 닻을 캐고 팽팽하게 돛 올리는” 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들은 대양으로 나선 것이다.

여행이 이들에게 남긴 것

그러면 이들의 여행은 어떠했던가. 부푼 기대를 안고 배에 오른 이들은 승선 첫날, 부산항에 정박한 배 안에서 술이 없어 괴로움의 밤을 보낸다. 처음엔 서먹했던 선원들과도 선상 탁구를 치며 스스럼없는 관계를 형성한다.

싱가포르를 지나 해적이 출몰한다는 말라카 해협을 지날 때에는 소방호스 외엔 아무런 방어용 무기가 없는 배의 해적 당직을 자처하여 경계근무를 선다.

마침내 인도양에 들어선 이들은 그 깊고 푸른 바다를 보며 바다가 자신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을 깨닫는데, 밤하늘의 별과 아침 해 저녁노을을 보며 존재론적인 고민에 휩싸이기도 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깊은 내상을 입는다.

항해 과정에서 어느 순간이 가장 인상적인가를 내가 물었는데 캡틴은 선수부가 막 부두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가장 가슴 뭉클하다고 답해 나를 감동시켰다. 아, 그는 항해자이다. 이동을 삶의 질료로 삼는, 멀고 먼 곳을 향해 파도치는 대양 위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고독한 항해자인 것이다. (한창훈)

사람 냄새 가득한 이야기들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 가족들 친구들과 떨어져 외롭고 고된 항해를 계속해야 하는 선원들의 이야기도 눈길을 잡아맨다. 하이웨이호의 선원은 모두 22명. 모두 남자다. 네 작가는 이 중 미얀마에서 온 선원 일곱을 제외한 15명의 선원 한 명 한 명을 인터뷰했다.

선장에서부터 20년 젊음을 배에서 보낸 갑판수까지, 승선경력 21년의 백전노장 조기장으로부터 아직 대학에 재학 중인 스물두 살 실습생까지, 바다 사나이들의 눈물과 웃음, 회한과 부푼 꿈이 어린 진솔한 이야기들에는 사람살이의 냄새가 가득하다.

늘 붙어 다니는 네 친구가 의기투합하여 실행한 이 유쾌한 여행은 지켜보는 사람도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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