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김채곤) 고향방문
로버트 김(김채곤) 고향방문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11.18 0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난중일기] 고한석 <논설위원>
   
감동스러운 사연 그리고 감격스러운 언행,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보고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4일 오후 4시30분 여수 시민회관에서 열린 로버트 김(김 채곤) 고향방문 환영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시민회관을 가득 메운 고향시민과 학생들 앞에서 인사말을 통해 “꿈에도 그리던 내 고향 남쪽바다, 저 푸른 물결의 여수”를 채 잇지도 못하고 울먹이고 말았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만감이 교차하는 감회를 가까스로 추스른 그는 이어 “나는 스파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민적 영웅도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그의 신념과 심경이 그대로 노정되는 순간이었다.

그 어떤 꾸밈 같은 것도 그 어떤 허례 같은 것도 티끌 하나 섞이지 않은, 그래서 과시하거나 현시하지 않은 순수하고 겸손하기만 한 그만의 <고백>이었다.

올해로 60 중반에 다가선 그다. <범죄의식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모국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행한 일들이 급기야 10년이라는 긴 형극의 세월동안 망운지정(望雲之情)의 고통 등 애간장 타들어가는 인고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마치 소년처럼 순수하게 자신의 심경을 털어 놓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아직 구체적 계획은 잡지 못했으나 앞으로는 미래의 국가 동량인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밝혔다.

새삼 들춰내기도 안타깝기만 한 그의 <잃어버린 10년>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분해하는 기막힌 사연으로 점철돼있다.

1996년 9월24일 미 해군정보국(ONI) 군무원으로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김이 한국에 국가기밀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미 연방 수사국(FBI)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1997년 7월 간첩죄의 일종인 ‘국방기밀취득음모죄’로 징역 9년과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았다. 1940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여수에서 초·중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 우주항공국(NASA)을 거쳐 1978년부터 미 해군정보국(ONI)에 취업해 19년간 컴퓨터 정보 분석관으로 근무했다.

1996년 동해를 통해 강릉으로 침투한 북한 잠수정이 좌초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당시 주미 한국대사관 해군무관이었던 백동일 대령의 요청에 따라 한반도 관련 정보를 백 대령에게 건네줬다. 단 1센트의 대가도 없이.

그가 백 대령에게 전달한 정보들은 휴전선 부근의 북한군 배치실태나 북한의 무기 수출입 현황 등 한국정부가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이 대부분으로 <혈맹인 미국과는 당연히 공유 할>정보였지만 FBI는 그가 컴퓨터 전문가로서 ‘극비(top secret)’ 또는 ‘비밀(secret)’로 분류된 미 해군의 기밀문서에 접근해 정보를 넘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변호인들의 조언에 따라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징역 3∼5년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국방기밀취득음모죄로 법정최고형인 징역 9년에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고 말았다.

그가 조국을 위해 정보를 건네다 미국에서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에서는 1997년 국회의원과 종교계 등 인사들이 모여 <로버트 김 구명위원회>가 조직됐으며 1999년에는 고향 여수에서 구명위원회가 조직돼 구명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7년여 동안 수감생활을 거쳐야 했고 모범수로 지난해 6월부터 가택수감 생활을 해왔으며 미 버지니아 주 동부지방법원이 그의 보호관찰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당초 2007년까지로 예정됐던 보호관찰을 끝내고 9년 8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돼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찾은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수형생활기간 동안에도 한국과 고향의 소식을 잊지 않고 찾았다. 한국 신문을 통해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모국동포들이 보내준 성원과 후원에 늘 감사해왔다.

첨엔 방관하던 모국에 원망의 염도 없지 않았으나 이미 지나간 일들이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했다. “잃어버린 10년이지만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건강하게 사는 바 앞으로 <로버트 김의 편지>(www.robertkim.or.kr)라는 인터넷 문화공간을 통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어 가자.”라고.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은 그가 부디 건강하길 빌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여생은 보람된 날들로만 펼쳐져 나가길 또 빌었다.

그러기 위해선 그가 본디 그랬듯이 그를 스스로의 의지와 신념 그리고 삶의 방식대로 살게 보호해야 한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또 그에 휩쓸릴 그도 아니겠지만 혹여 그를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채색(彩色)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와 같은 행위는 어쩌면 그를 또다시 잃어버린 세월로 몰고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