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은 살아있다
전태일은 살아있다
  • 박성태 기자
  • 승인 2005.11.11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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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태의 렌즈속으로1]
   
▲ 목숨을 건 크레인 투쟁을 푼 박정훈 지회장의 뒷모습에 박힌 슬픔은 우리사회의 아픔 만큼이나 크게 비춰지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1970년 11월 13일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22살의 전태일은 이 한마디 절규를 외치며 자신의 온 몸에 불을 질렀다. 35년이 지난 현재는 어떤가.

11월초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 61명은 자신들의 일터를 11일간 점거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조를 인정해달라는 것이였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의 권리가 비정규직에게는 인정되지 않았다.

노조를 만들자마자 120명이 한달새 해고됐다. 원청과 사내 하청업체는 죽어도 노조만큼은 인정할 수 없다는듯 결사적으로 폐업이라는 방법으로 노조원들을 해고 시켰다. 그런데도 이들은 해고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강변했다.

나아가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조의 제안에 단 한번도 응하지 않았다. 원청인 하이스코는 자신들이 협상 당사자로 나서면 위법이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4개월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민주노조 인정과 해고자 복직을 주장해 온 비정규직 노조는 결국 공장점거 농성이라는 폭력적 사태를 불러왔다.

이런 점에서 전태일의 분신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정규직 노조는 인정하면서도 비정규직 노조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기막힌 모순이 만연된 이 곳이 바로 한국사회라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이였다.

비정규직 노조는 차별없는 세상을 원했다. 삼보일배를 하면서, 점거농성 기간동안 라면 한 봉지를 4명이 나눠 먹으면서 그들이 원했던 것은 똑같은 인간으로, 똑같은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는 기본적인 요구였다.

인권을 내세운 참여정부도 노동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뒷전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구호만 있고 실천이 없는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다.

전태일의 분신이 현재형이듯이 하이스코 사태도 여전히 현재형이다.

11일간의 점거 농성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드러선 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박정훈 지회장의 "이?땅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 여러분! 노동자는 하나라는 대원칙하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투쟁하자"는 절규가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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