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명절 서민 ‘시름’
우울한 명절 서민 ‘시름’
  • 강성훈 기자
  • 승인 2005.09.15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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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추석 앞둔 재래시장을 찾아
“오가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흥정이라도 해볼 것 아니여”
추석을 5일여 앞두고 찾은 재래시장은 오가는 행인보다 장사하는 이들이 더 많을 정도로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13일 오후 3시, 여수지역 대표적 재래시장인 서시장을 찾았다.
“안돼요”, “직접 보시요 무신 장사가 되는갚,? “한숨밖에 안 나오요”
가게가 들어서기 무섭게 약속이라도 한듯 지레 같은 대답들이다.

같은 자리에서 20여년간 옷장사를 했다는 A상회 김모씨는 “추석대목이요? 이런 대목은 처음이요. 추석대목이 아니라 장사생활 20년만에 맞은 위기 대목이요”라며 일침을 놓는다.

추석대목 특수는 찾아볼 수 없고, 그나마 계절이 바뀌면서 새 물건으로 갈았지만 정작 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계절 변화시기에 찾아오는 특수도 잃어버렸다는 분석이다.

“사진 찍을라믄 사람 왁자지껄한 것 찍으시오. 그래야제 보는 사람들이라도 찾아 나설 것 아니요” 시장풍경을 담아내고 있는데 앞 상회에서 신모씨가 대뜸 하소연인지 당부인지 모를 한마디 하고 나선다.

신씨는 “그렇잖아도 장사가 안되는 판에 자꾸 휑한 시장만 소개되니 더 위축될 수 밖에 없어요. 아 사람 심리가 안 그러요. 자꾸 부쩍댄다고 해야 쉽게 찾아오는 법이요”라며 도움아닌 도움을 청한다.

시장이라고 하지만 휑한 공간에서 가뭄에 콩나듯 흥정이 붙을 뿐 사는 이들보다 파는 이들이 많은 공간일 뿐이다.

서시장은 복합적으로 이뤄진듯 하면서도 과일, 잡화점, 수산물 등의 가게자리가 나름대로 질서정연하게 자리잡고 있다.

옷가게들의 한숨섞인 푸념소리를 뒤로 한 채 과일가게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 과일값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소폭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아이고, 또 거짓말 쓸 거면 저리로 가. 무신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보도를 하고 말이요” 장사 좀 되느냐는 질문에 과일 좌판을 지키고 않았던 김모씨가 한마디 쏘아 붙인다.

“아니 비싸지도 않는 과일값을 두고 날마다 비싸다느니 폭등했다느니 하는 소리를 해대니 찾을 사람도 안 찾을 것 아닌갚옆에 앉았던 또다른 김씨가 해명에 나선다.

올해 과일값은 생산량보다 소비가 위축되면서 가격이 되레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수원예농협공판장에 따르면 사과, 배 등 과일의 경우 지난해보다 높게는 20%까지 하락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른 추석, 더위 겹쳐 대목재미 ‘가물가물’… 상인만 ‘북적’

사과의 경우 특급이 지난해 5만원에서 올해는 4만원에 거래되고 있고, 상급의 경우 지난해 3만원에서 올해는 2만8천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도는 특급이 지난해 2만2천원에서 올해는 1만6천원으로 크게 떨어졌고, 상급은 1만7천원에서 1만3천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예년에 비해 빠른 추석을 이유로 과일값이 급등했다는 소식들이 연일 보도되면서 오히려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밤 10시가 돼야 집에 들어가고 했는디 요새는 7시30분이면 철수준비 허요. 그러니 무신놈의 장사가 되겄소”10여년간 서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했다는 손모씨다.

“IMF 땜에 그러려니 했더니만 대형마트 생기고 나서는 아예 뚝 끊겨버렸어라”며 한숨 짓는 손씨는 어렵다는 이야기 속에서도 넉살좋은 시장 아주머니의 편안한 미소는 지어 보인다.

“올 설대목때만 해도 추석쯤 되면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 기대를 하면서 버텼지만 이제는 그 기대마저 무너지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시장에서 10년 넘게 떡장사를 했다는 이모씨도 “지난해 추석대목에는 1~2가마 주문이라도 있었는디 올해는 1말 주문도 없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무조건 서민경체 챙기는 사람들 치켜 세워야 겄어. 괜한 데 신경쓰지 말고 경기 살리는데나 힘써달라고 해”라며 일침을 놨다.

서시장 지하에 자리잡은 수산물 시장도 썰렁하기는 매 한가지다.
오후 3시가 훌쩍넘었지만 이제야 한켠에 모여앉아 점심식사를 하는 중이다. “밥값도 못했응께 이제야 밥을 먹제”라는 신모씨는 “과일이야 좀 내렸다고 하는디 이 놈의 고깃값은 되레 오르고 있어 장사가 더 안된다”며 하소연이다.

올해 제수용 생선의 경우 지난해보다 30%가량 급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종일 쪼그리고 앉아 생선 냄새 맡아야 겨우 입에 풀칠하요.”
어느 좌판하나 흥정하는 사람한명 없다.

수시간여를 돌아다닌 끝에 왁자지껄한 흥정소리 대신 긴 한숨소리만 묻어나는 시장통을 빠져 나왔다.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 한참을 걸었을 시장길을 몇 걸음에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잘사는 날이 올거야/ 포기는 하지 말아요...우리 모두 잘살거야/ 잘사는 날이 올거야” 손님없는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노랫가락이 희망가가 귓전을 때리는 추석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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