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길의 땅이야기] 미평동
[박종길의 땅이야기] 미평동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09.0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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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평(美坪)이라는 이름은 ‘미뜰(밑들)’ 또는 ‘큰 미뜰(밑들)’이라고 부르던 우리말 땅이름을 음을 빌려 미뜰의 ‘미’를 아름다울 미(美)로 ‘뜰’을 들 평(坪)으로 고친 땅이름이다.

산 밑에 들이라는 뜻의 ‘밑들’에는 들 가장자리 곳곳에 여러 마을이 있었지만 농사를 짓던 들판위로 큰 마을이 들어서면서 들 이름은 차츰 잊혀져 가고 ‘밑들’은 미평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바뀌었다.

‘밑들’ 미평 주변으로는 위로부터 양지(陽地), 신죽(新竹), 죽림(竹林), 평지(平地), 소정(小亭) 이라는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지고 미평동의 이름만 불려지고 있다.

양지마을은 볕이 잘 드는 호암산(虎岩山) 남쪽의 양지쪽에 마을이 자리잡아 양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마을 앞길을 ‘진터거리’, 중산아래의 비탈을 ‘빗골’이라 했다.

신죽마을은 새롭게 터를 잡은 여수대학교 주변으로, ‘신대밭골’ 또는 ‘순대밭골’이라 하였는데 시누대가 많아서 이런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죽림마을은 미평과 만흥동을 잇는 고개 주변의 마을로, 본래는 ‘대밭골’이라 부르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죽전(竹田) 또는 죽림(竹林)으로 표기하였다.

마을 주변에 대형 고인돌이 많이 남아있는데 용수마을로부터 오림동까지 이어지는 고인돌 군(群)이 남아있었다면 우리나라 최대의 고인돌 군락은 여수가 되었을 것이다.

죽림 마을 북쪽의 복성골은 작은 마을이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에 여수시가지 물 공급을 위한수원지의 건설로 죽림마을 일대로 이주를 하면서 마을이 사라졌다.

최근 건설중인 국도 17호선 우회도로가 여수신항으로부터 이 골짜기를 경유하여 삼일의 남수와 삼동마을로 이어질 거라 한다.

평지 마을은 미평동 중앙에 자리잡은 마을로 이름처럼 평평한 들에 마을이 자리하여 평지 마을이라 하였다. 이 일대는 ‘번데기’, ‘버든들’이라고도 부른다. 평평한 들이 길게 벋어 있기 때문이다.

평지 마을에는 ‘반택이’라는 지명이 전해온다. 반씨와 택씨가 살아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그럴싸한 유래가 전하지만 ‘반택이’란 땅이름도 반반한 땅이란 뜻이니 번데기와 같은 뜻이 아닌가? 고인돌 왕국 여수답게 이 마을 골목과 텃밭 사이에도 여러 기의 고인돌이 남아있다.

소정(小亭)마을은 초등학교가 있는 미평 삼거리 부근에 있던 마을로 작은 정자가 있어서 <소정 designtimesp=21736>이라 했다고 한다. 이는 마을 이름을 한자의 뜻만 풀이하여 지어진 이야기로 ‘쇠징이’ ‘소징이’로 부르던 본래의 의미는 ‘산자락이 가늘게 끝을 이룬 곳’ 이나 ‘작은 길목이란 뜻’으로 ‘소징이’란 우리말을 소정(小亭)이란 한자로 적고 보니 작은 정자가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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