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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의 땅이야기] 화양면 안포리2
[박종길의 땅이야기] 화양면 안포리2
  • 남해안신문
  • 승인 2005.03.1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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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리’ 산으로 둘러쌓인 지역 ‘안징이’서 유래

화양면소재지인 나진으로부터 남으로 약 6km지점에 있는 해안마을 원포리는 우리말 땅이름 <멀개>로 불렸다. 마을에서 해변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개가 멀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멀개’는 한자로 기록을 하면서 멀원(遠)과 개포(浦)로 표기하여 마을이름 원포가 되었다.

원포리에 있는 작은 마을 <굴개>는 포구의 모양이 굴강 모양으로 둥글게 생겨서 굴개라 부른다. 여수지역에는 이 곳처럼 굴개라는 이름의 포구가 여러 곳에 나타나는데, 굴개는 포구의 모양이 원모양으로 둥글게 생겼으며 폭풍우시 배들이 안전하게 피항할 수 있는 지역이 많았다.

대부분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지형이 많았지만 마을에 적당한 피항지가 없는 곳에서는 인공적으로 굴개를 축조한 경우도 있었다.

현 여수시 국동과 봉산동 사이에 있던 굴개, 방답진 성의 굴개, 여천 선소의 굴강, 고돌산진의 굴강, 화양면 소장리의 굴구지, 원포리의 굴개 등이 자연 또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비슷한 기능의 굴개였다.

굴개 앞에는 조그마한 섬 ‘나무섬’이 있다. 이 섬을 나무섬으로 부르게 된 유래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땅이름의 변화를 거친 것을 알 수 있다. 이 섬의 지형을 살펴보면 간조 시에는 육지와 섬이 연결되어 건널 수 있게 변하는데 예로부터 이러한 지형은 ‘목섬’ 또는 ‘모가지 섬’이라 불렀다. 돌산 금봉리의 목대(항대項大)나 여수시 소호동의 목섬(항도項島)이 비슷한 지형과 이름이다.

이러한 것을 보면 이 섬의 이름도 처음에는 목섬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쉬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는 목섬을 뜻으로 옮기질 않고 목도(木島)로 기록하였고 다시 우리말 뜻으로 해석하여 나무섬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땅이름의 왜곡은 일제에 의해 지도가 제작되면서 많이 생기게 되었는데 우리말 이름의 산과 섬의 이름들을 쉬운 한자나 잘못된 해석으로 기록을 하여 엉터리 땅이름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안포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안정, 원포, 세포마을을 합병하여 지어진 이름이지만 안정마을만을 이르기도 한다. 안정리의 순 우리말 이름은 ‘안징이’인데 안은 사물의 안쪽이고 징이는 지역을 뜻하는 접미사로 안징이는 산으로 둘러싸인 안 지역의 마을이란 뜻이다.

여천군시절 발행된 <마을유래집>에는 안정을 한자 풀이하여? 편안하고 고요한 마을이어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설명하였다.

마을에 전해지는 땅이름으로 ‘노딧개’란 곳은 안정마을 북쪽의 마을 입구에서 ‘조개등’을 건넜던 돌다리를 이르는 지명으로 간척지가 들어선 이후로 돌다리는 없어졌지만 땅이름은 남아있다.

이 마을에는 화양면이 곡화목장 시절에 말을 키우던 목자들이 말의 무사안녕을 빌던 사당인 마신당이 있었다. 마신당의 당집 안에는 쇠로 만든 말 인형의 신물이 있어서 이 곳 산등성이의 이름을 ‘쇠꼽말등’이라고 하였다.

마신당 주변으로 해방 전 까지도 말을 기르던 목자들의 애환서린 돌무더기 서낭당이 산 중턱에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일제시대엔 화양지역에 목화가 많이 생산되어 이 마을 포구를 통해 수탈되어 일본으로 실려 가기도 했다.

안골 계곡에서 내려오던 냇물이 여울진 곳 여운네, 조금에도 건널 수 있던 나루 조금날, 홈이 깊게 파인 골짜기 홍골, 원포를 넘던 고개 재너메, 찬물이 나던 찬물내기, 가짜 묘가 있던 헛메 등 지형의 특징 잘 나타내어진 땅이름들이 많이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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