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워도 희망이었는디 어찌 쉽게 버린당가
"어려워도 희망이었는디 어찌 쉽게 버린당가
  • 강성훈 기자
  • 승인 2005.01.04 16:5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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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여수의 시작, 아침시장을 찾아
   

“경기가 어렵다 어렵다 해도 버릴 수 없는 것은 이곳이 자식들 키워내고 입에 풀칠하게 해준 희망이었응께. 또다시 희망을 일궈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제”

몇몇 차량들만 휑한 도로에서 속도를 낼 뿐 정적이 흐르는 시각. 도로변에 닿은 차들이 산더미만한 야채더미를 토해 내고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 속에서 쉼없이 몸놀림을 하고 있는 아침시장 사람들.
시계 바늘은 이제 갓 4시를 넘어 서고 있지만 아침시장 사람들의 하루는 벌써 시작됐다.

서교동 전신전화국에서 남산동 어시장 일원에서 형성되는 아침시장은 새벽 4시를 전후로 야채 시장이 들어 서면서 시작된다. 돌산과 만성리 등지에서 재배된 배추, 무, 갓 등을 출하한 농민들과 중간도매상간의 거래로부터 장터가 시작되는 것.

요즘은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새벽 4시부터 시작되지만 여름이나 봄, 가을에는 새벽 2시~3시면 거래가 시작된다. 중간상인들과 거래가 끝나면 잠시 쉬었다가 일반소매인들과 거래가 시작된다. 그 때서야 본격적인 장터가 이뤄지는 셈이다. 일반 거래는 날이 밝아야 하기 때문에 아직도 두시간여의 여유가 있다.

중간상인들과 거래를 마친 시장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닥불 주위로 모여들어 언 손을 녹이며 담소를 나눈다.

   

경기 침체 한파 속 새해 호황 기대

“보먼 몰러? 진즉 넘겼어야 하는디 아직도 그대로구만. 언제 폴고 간다냐” 며 하소연 하는 김씨 할머니. 오늘 거래상황 좀 알아볼 양으로 던진 질문에 심드렁한 대답만 돌아온다.

만성리에서 무를 싣고 온 신금자씨는 “요즘 같아서는 새벽에 나와서 이 고생해도 하루 2만원 벌이도 힘들어. 김장도 끝나가는 터라 야채장사는 더 어렵제”라며 어려운 경제 상황을 이야기 한다.

“30년 가차이 여기서 장사를 했는디 요새처럼 힘든 때가 없었구만. 싸디싼 중국산이 천지여. 근디 무신 값을 받겄는가"

현재 아침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야채값은 무 한다발 값이 1천원 안팎으로 형성돼 2년전에 비해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을 정도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인자는 김치까지 들여와서 판을 치는디 누가 야채사다가 김치 담궈서 손님 상에 내 놓겄어. 긍께 더 애로울 수 밖에 없제”라는 김씨 할머니의 하소연에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이 묻어난다.

다른 모닥불로 걸음을 옮기자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 어려운 경기 상황에 대한 걱정들이다.

   

거래감소, 가격하락 이중 어려움은 여전

“가져오기 바쁘게 팔려나갈 때도 있었제. 근디 물건 받아 장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영 신통치가 않어”라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돌산 평사리에 사는 정씨 할머니. 정씨는 30여년 넘게 아침시장에서 장사를 해 오고 있는 터주대감(?)이다.

“그래도 해가 바뀌었응께 좋아 지겄제. 좋은 생각 하다보면 이 고비도 넘길 것 아니겄는가. 예전에도 그랬응께”라며 희망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옆자리에서 파를 다듬던 김 노인도 “국민들 세금 받아다 쌈질하는 정치인들 때문에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거여. 국민들 생각해서 싸울 궁리말고 경제 살릴 궁리했으면 좋겄구먼. 어쨌거나 입에 풀칠하고 자식들 키워낸 곳이 이곳이여. 그랑께 좀 심들어도 여기서 해 비칠날 찾어야 하지 않겄어”라며 거든다.

7시가 넘어서면서 야채시장 옆 어시장도 장사준비로 손놀림이 분주해 진다. 전화국 앞에서 광주은행 앞에 이르는 인도상에도 나물이며 각종 채소들을 팔러 여수지역을 비롯해 순천, 광양 등지에서 나온 상인들이 자리를 메운다.

잠시 어려운 경제를 하소연하던 새벽 장꾼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주부들을 붙들고 흥정을 시작한다. 제법 장터의 시끌벅적한 기운이 감돌면서 온기가 전해 오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장보는 맛은 시끌벅적한 여기가 지일이제”

아침시장의 왁자지껄함에서 2005년에 대한 희망섞인 기대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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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짱 2005-01-05 09:58:48
강기자님. 별표 다섯개 줍니다.

에스프레소 2005-01-04 21:48:41
물씬 감동이 느껴집니다.
역시 르포 전문 기자답군요.
남해안신문에서 활동을 기대해 봅니다.
올해는 권력을 향한 신문이 아닌 낮은 곳의 민중들의 삶에 애정을 갖는 기사를 기대해 봅니다.
강기자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