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명은 시한부지만 봉사는 영원하다”
“내 생명은 시한부지만 봉사는 영원하다”
  • 박성태 기자
  • 승인 2004.11.23 18: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경대상 3회째 수상한 박종언 그린훼밀리 여수지부장(65)

   
20여 년 동안 쓰레기 줍는 일에만 매달린 박종언지부장(그린훼밀리환경운동연합 여수지부)은 한마디로 ‘기인’(奇人)이다. 봉사에 신들린 사람, 참봉사의 외길을 묵묵히 걷는 그가 지난 10월 24일 환경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올해로 3회째 연거푸 수상이다.

65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인 삶을 사는 그는 자신을 “3개월짜리 시한부 인생이다”고 폄하한다. 지병인 심장병 때문에 3개월마다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인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로부터 이번 수상의 의미와 계획을 들어 보았다.

축하한다. 이번 수상 소감은.

환경봉사단체가 전국에 수백 개가 넘는데 연 3회씩이나 대상을 수상해 기쁘고 흐뭇하다. 다만 상금이 없는 상이라 아쉽다.상금이 있었다면 봉사 활동을 더 많이 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우리 회원들은 365일 중 300일을 봉사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출근하는 분들이 20명이다.이 분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부랑자’들로부터도 상을 받은 것으로 안다.

우리 회원 중에 무당 굿을 하는 분이 계시는데 굿이 끝나면 돼지고기, 떡, 과일이 많이 남는다. 이것을 김영규시의원이 운영하는 금강원에 매달 가져다 준 것이 계기가 돼 그곳에서 생활하는 분들이 돼지고기 원없이 먹게 해줬다고 ‘부랑자일동’으로 상을 다 주더라. 무엇보다 값진 상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있어야 봉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봉사하려는 참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

주로 어떤 봉사일을 하나.

쓰레기 치우기, 꽃밥 가꾸기, 도로변 정리, 바다 청소 , 고아원청소봉사 등 닥치는 대로 남이 도움을 필요하는 일은 뭐든 다 한다.

봉사일로 가정을 소홀히 할텐데 가족들의 불만은 없나.

항상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놀랠 줄 모르지만 봉사하느라 가족과 별거생활한 지도 10년째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이해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줘 마음이 편하다. 불과 5년전만 해도 쓰레기줍는 아빠라고 창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내와 자식들이 나보다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 내가 놀랠 정도다.

항상 옷 한 벌로 생활하신 것 같은데.

고급양복, 고급승용차타면서 봉사하는 것은 인정 안한다. 내가 좀 답답한 사람인지 모르지만 사회단체 모임에도 안 나간다. 봉사하기도 바쁜데 다 쓸데없는 짓이다. 처자식 다 챙겨가지면서 봉사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다. 솔직히 이게 내 철학이다. 자기 몸을 생각하지 않고 순수하게 봉사하는게 진짜 봉사다.

봉사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민주화투쟁 중 80년도에 전국 수배령이 내려 서울 난지도에서 3년간 거지들과 도피생활을 하고 여수에 내려와 생활하게 됐다. 그때 지방자치가 막 시작했는데 김충조 전 의원이 시의원에 출마해보라고 권유했는데 공탁금 100만원이 없어 출마못한 사연이 있다. 이때부터 ‘환경을 지키는 여수여천시민의 모임’을 구성해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있다면.

처음엔 오해를 많이 받았다. 정치할 사람이라고 의심을 받았다. 참 봉사를 느낀 것은 3년전에 서시장에서 길거리 청소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전혀 가망이 없다고 했다. 장례준비까지 했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한 달 동안 두 번이나 장례준비를 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살아나 의하계의 표본이 됐다. 이때부터 진정한 봉사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3개월마다 치료를 받고 있어 3개월 시한부 인생살이를 하지만 봉사를 통해 삶의 가치를 깨닫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사도 “안녕하십니까”가 아닌 “건강하십시요”라고 한다.

앞으로 계획은.

3개월 더 살고 여유만 있다면 조그만 환경학교를 만들고 죽고 싶다. 현재 나는 산동네 슬레이트집에서 오갈 데 없는 사람들과 함께 숙식하고 있다. 누구든지 다 오라한다. 다만 여자는 해당안된다.(웃음) 그래서 봉사활동도 하고 숙식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한때 ‘미사일 박’, ‘유도탄 박’이라 불릴 정도로 인정사정없이 살았지만 지금은 남을 이해하자는 것이 내 철학이다. 남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봉사하며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 가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