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길의 딸 이야기] 소라면 - 현천리
[박종길의 딸 이야기] 소라면 - 현천리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10.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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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내를 가물 현(玄)과 내 천(川)으로 현천(玄川)
용인민속촌은 현천마을의 정부자 집을 뜯어 옮긴 집

쌍둥이 마을과 소동패 놀이로 잘 알려진 현천리1구(玄川里)에는 선천, 중촌 오룡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현천이라는 마을 이름은 본래 이름이었던 <가무내>를 한자로 바꿔 적은 이름으로 가물(검을) 현(玄)과 내 천(川)이라는 훈을 빌려 쓴 이두식 표현이라 할 수 있다. <br><가무내>라는 마을 이름의 뜻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천에 물이 적어서 가물어 있다는 뜻이라고 전해 왔는데 말라있는 개천이란 뜻의 건천(乾川)이라 하지 않고 현천으로 표기하였다.

다른 지역의 ‘가무내’란 땅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가무내’는 ‘감’과 ‘내’란 말이 합성된 말로 옛말 ‘감’은 큰 산을 이르는 말이었으니 가무내는 큰 산 아래의 냇가로 설명하고 있다. 가무내란 개천은 우리나라 곳곳에 전해지는 땅이름 중 하나로 우리지역에도 여러 곳에 전해오는 이름이다.
 
지금의 선천, 중촌, 오룡을 1789년의 호구총수 기록과 비교해보면 현천(玄川) 중촌(中村) 오룡정(五龍亭) 마을로 기록되어 있어 처음 현천 마을은 오늘날의 선천 마을을 이르는 마을 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선천(先川)마을은 냇가가 마을 앞에 있다는 뜻으로 1897년 여수군이 설군 되면서 일제초기까지는 단계(丹桂)라는 마을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현천으로도 부르는 중촌마을은 호구총수에서는 중촌으로 등장하지만 1897년의 여수군 설군시 기록이나 1914년 일제의 기록에 모두 현천으로 기록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마을의 풍수가 연화부수지여서 부자가 많이 난다고 전해왔다.

특히 이 마을의 정씨 가문은 조선 후기에 만석군 부자로 대대로 이어져 왔으며 일제시대에는 이 가문의 후손이었던 정충조가 일제에 항거하며 여수지방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이끌기도 하였다.

대대로 이어지던 정씨 가문의 고래등 기와집은 용인 민속촌으로 옮겨져 지금도 전해오지만 해방정국에서 사회주의 활동가로 변신한 정충조의 존재로 대대로 내려오던 만석군 부자집을 황량한 빈터로 만들게 하였다.

정충조는 남북연석회의가 있던 48년 초에 월북하여 내려오지 않았으나 주변의 가족들은 여순사건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이 처형되면서 몰락하였던 것이다.

오룡마을은 마을을 둘러싼 산의 모양이 다섯 마리의 용의 형상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현천마을은 70년대 말 방송을 통하여 쌍둥이가 많이 태어나는 마을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마을에 호기심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의 욕구는 풍수지리를 비롯해서 수많은 종류의 쌍둥이 탄생과 관련된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특별한 이유를 찾지는 못했다.

현천마을의 자랑거리중 하나로 우리지방 농촌의 서로 돕고 살아가던 미풍양속을 전해주는 이 마을의 소동패놀이는 최근에 마을에 전수회관이 지어져 상부상조의 전통을 오랫동안 후세에 전해주게 되었다.

소동패는 어른들의 대동패와 구분되는 모임으로 현대식으로 하자면 마을 <청소년단>쯤으로 개칭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소동패 놀이의 재현에는 6~70대 고령의 소동(?)들이 참여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앞선다.?

현천마을 뒤의 국사봉이라는 산에는 스님과 쌀 굴에 관한 전설이 전해오며 쌀굴을 비롯해서 장사가 가지고 놀았다는 꽁돌바구, 메뚜기바구 등이 있고 최근에 지어진 국사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현천2구마을인 마륜(馬輪)마을은 외지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던 곳으로 호구총수에서는 기와를 굽던 곳의 뜻을 가진 와지(瓦旨)마을이란 기록으로 전해온다.

마륜이란 마을 이름은 여수군이 신설되면서 처음 사용하게 되었는데 외지라는 마을 이름이 좋지않다고 여겼기 때문에 마을 뒷산의 이름인 천마산에서 인용 지지었다고 한다.

천마산은 철마산이라고도 하며 일본이 정기를 끊기 위해 설치했다는 쇠말뚝전설이 전해져 오는 곳으로 이는 1910년을 전 후로 측량기점을 표시하기위해 산 정상에 설치했던 표시석 때문에 생겨난 이야기다.

현천3구 마을인 가사(佳沙)리는 아름다운 모래 해변이란 뜻의 한자풀이로 마을유래가 알려져 오는데 한자의 글 뜻보다는 어느 지역의 갓 지역이라는 뜻의 ‘가새’란 뜻의 마을 이름으로 보인다.

가사리에는 농곡(農谷)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이 하나있는데 이곳은 논이 많은 곳이라는 뜻의 ‘논골’을 한자로 고쳐 농곡마을이 되었다.

농곡마을 뒷산 골짜기는 그 길이가 길어서 진골이라고 하고 현천 마을과 사이에 국사봉이 자리하고 있어서 신선바구 메뚜기바구 선바구 굴바구 등의 재미있는 바위 이름들이 많이 전해오며 현천리와 사이의 산에는 밥을 할 때마다 쌀이 나오던 쌀바구가 있었으나 한꺼번에 많은 쌀을 원하던 욕심 많은 행자 때문에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가사리 마을 서쪽 해변에는 밀물 시에 바닷물이 들어와 잠긴 바위 웅덩이에 불에 달군 돌을 넣어 온천욕을 하던 해수탕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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