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의 마지막 사랑…
이 생의 마지막 사랑…
  • 정송호 기자
  • 승인 2004.10.18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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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남산요양원 정원 한쌍 노부부 '황혼결혼식' 올려
자원봉사자, 후원자, 인근 초교 '전통혼례' 체험학습까지

   
▲ 생의 마지막 사랑을 이룬 황혼녘의 두부부
지난달 13일 본지에서 '희망을 찾는사람들'에 소개됐던 "죽기전에 소원이뤘지요"의 주인공 정철, 김영진 두노인의 아름다운 황혼결혼식이 지난 13일 돌산읍 우두리 남산요양원 정원에서 주변의 축하 속에 전통 혼례식으로 진행됐다. 본사는 노년의 아름다운 사랑을 통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한 재조명을 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 신랑입장

황혼 결혼식을 총 지휘하는 집례자가 '신랑출∼'을 외치자 한아름 꽃 바구니를 든 소녀와 그 뒤에 홍등·청등을 든 두 소녀가 앞장을 서고 건장한 청년 네명이 사인교에 사모관대를 한 늙은 새 신랑을 태우고 식장을 들어서자 하객들이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야 좋겠다. 나이 들어서 또 장가가고' 또 한쪽에서는 '야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

   
▲ 정절의 상징인 기러기를 들고 있는 신랑

전통혼례에 꼭 기러기가 등장을 한다. 기러기는 한번 짝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서로의 인연을 끊지 않는다고 해 수절의 길조로 여겨 사용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기러기 상위에 올려지고, 신랑이 혼례식을 하늘에 알리고 맹세의 뜻으로 북쪽을 향해 재배를 했다.

하지만 정철 할아버지는 절을 하지 못하고 목례를 했다. 왜냐하면 몇 해 전 무릎수술과 골다공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결혼식 내내 그 거동의 불편함을 자신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주신 주변의 사랑으로 감수하고 있었다.

또 신부측의 기러기가 상위에 올려지고 집례자가 '신부출∼'을 외치자 신부를 태운 가마가 식장으로 들어왔다. 가마 속의 신부의 주름얼굴에 험난했던 세상살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찍은 환한 미소의 얼굴은 엄연한 새 신부였다.

   
▲ 신부

할머니는 선천성 장애로 집례자의 말을 듣지도 못했지만 혼례식 내내 정철 할아버지의 얼굴에 시선을 때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들리지는 않지만 정철 할아버지의 행동 하나하나는 할머니의 귀에 사랑의 메아리로 들리기 때문이었다.

화촉이 밝혀지고, 몇 번의 절이 오고가고 또한 신랑 신부에게 술을 따라 잔을 교환해 마시면서 어는 덧 혼례식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 밝혀지는 화촉

신랑신부와 함께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료 어르신들도 휠체어에, 의자에 앉아서 부러운 눈빛으로 행복을 기원해 주고 있었다. 또한 혼례식을 치르기 위해 일일찻집 준비부터 신혼방 꾸미기 그리고 혼례식 당일 하객들 접대까지 분주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남산요양원 가족들은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신랑·신부 각 합석∼', '방안면∼'을 집례자가 외치자 혼례식이 치러진 동안 처음으로 신랑 신부가 한자리에 섰다. 신랑이 옆에 서자 신부는 손을 내밀고 얼굴을 들어 생의 반려자인 신랑 얼굴을 보면서 혼례식을 막을 내렸다.

신랑과 신부가 한자리에 서고 혼례식이 끝나자 하객들의 박수소리가 울려 펴지고 노부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혼례식을 준비했던 남산요양원 위덕훈 원장은 "오늘 결혼한 노부부는 이번 사랑을 놓치면 남은 여생을 후회하고 살 것이다"며 두 노인의 사랑에 대해 전해주었다.

또한 황혼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여수시 여성자원봉사센터 20여명의 자원봉사와 우리소리예술단, 한울림풍물단 등의 축하공연들이 펼쳐졌다.

   
▲ 노부부의 결혼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고 있는 동료 노인들

특히, 혼례가 끝나고 한울림풍물단의 축하공연이 이어지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앉은자리에서 흥에 겨워 가볍게 어깨를 들썩거리며 우리 가락의 흥에 젖어 연신 '잘한다~'를 외치며 축하의 마음과 지금까지의 답답함을 훨훨 청명한 가을 하늘 속으로 날려보내고 있었다.

더불어 이 전통혼례식장에는 돌산 백초초교 우두분교 37명의 학생이 서은주 선생님의 손을 잡고 체험학습을 와 시종일관 신기한 모습으로 전통혼례로 치뤄지는 노부부의 결혼식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노부부의 전통혼례에 대해 학생들 반응은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신기하다', '절차가 복잡해서 나는 이렇게 결혼 안 해', '옛날에는 결혼식 한번 하기 너무 힘들었겠다'. 하지만 고학년들 반응은 달랐다. '어떻게 하면 나이 들어서까지 결혼을 다시 할 생각을 했을까?'

   
▲ 현장체험학습을 온 인근 백초초교 우두분교 학생들

이 황혼결혼식을 도와준 사람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객들을 위해 떡을 해오신 인쇄업을 하시는 후원자. 야채불고기를 해오신 식당사장, 호박을 키우며 남을 돕는 숨은 후원자, 지역 봉사단체 대표들…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하객들을 찾아 일일이 악수를 하며 고마움에 대한 답례를 하던 할아버지는 어느덧 얼굴이 붉어졌다. 왜냐하면 하객들의 건네는 축하주에 어느덧 홍조 띤 얼굴빛이 되었던 것이다.

말 못하는 신부는 이러한 새신랑의 모습을 보고 손짓으로 옆에 앉게 해 자신들만이 이해하는 대화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며 또 새로운 부부의 연을 시작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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