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으동동다리] 제석산 호랑이로 살아간 문씨
[아으동동다리] 제석산 호랑이로 살아간 문씨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09.0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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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옥교수

439m의 영취산에서 동남쪽을 바라보면 진례산 너머 해발 336m의 산봉우리가 눈 아래 탑처럼 보인다. 제석산이다. 이 산에는 둔갑술을 부리다 영원히 호랑이인 채로 일생을 마친 문씨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제석산 아래에 문씨 성을 가진 사람이 부인과 함께 오붓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사서오경에 달통했다. 특히, 「주역(周易)」에 통달하여 둔갑술가지 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문주역(文周易)이라 불렀다.

문주역은 날마다 밤이 좋았다. 호랑이로 둔갑해서 세상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벽이 되면 다시 주문을 외워 호랑이의 탈을 벗고 잠을 들곤 했으니 가족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내는 밤마다 외출하는 남편의 행동이 수상했다. 그래서 부인은 어느 날 저녁 남편의 방을 몰래 엿보았다. 남편은 한참 주문을 외더니 호랑이로 변신한 후 집을 나가는 것이었다.

너무나 놀란 아내는 정신을 수습하고는 이 주문을 불살라 버렸다. 다시는 남편이 그러지 않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새벽이 되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부인은 호랑이가 방에 들자 다시 그 방을 엿보았다.

호랑이는 주문을 찾더니 그것이 없어진 줄을 알고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었다. 부인은 그때야 자신의 부적절한 행동을 뉘우치고 호랑이 앞에 나가 자초지종을 말을 할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호랑이 앞에 나서기가 여간 두렵지 않았다. 호랑이의 뒤를 밟았다. 산 중턱에 다다르더니 굴을 파는 것이었다. 날이 밝자 호랑이는 자신이 판 굴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후, 부인은 남편을 영원히 볼 수 없었으며 문주역은 다시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호랑이인 채로 살았다고 한다.
주역에 통달한 호랑이 때문인지 아무리 아름나 포수라 할지라도 이 산에서는 총을 쏘아 짐승을 맞혀 잡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문주역의 원한이 호원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워 산 중턱 산제바위에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원래 제석(帝釋)이라는 말은 불교 성립 이전 인도 사람들이 벼락을 신격화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즉, 인도인들은 제석을 모든 악마를 정복 할 수 있는 신중의 신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불교가 성립된 이후 제석은 세계의 중심을 상징하는 수미산(須彌山) 꼭대기 도리천(?利天)에 있으면서 불교에 귀의하는 모든 중생을 보호하는 하늘의 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제석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민속신앙과 연결되어 있다. 곧, 민간 신앙에서는 가신(家神)으로 무속 신앙에서는 생명과 부귀의 신으로 통한다. 불교 유입 이후에는 제석 사상은 민속 신앙과 결부되어 더 보편화되었다.

삼불제석, 제석굿, 제석단지, 제석등잔, 제석본불이 등이라든가 도처에 ‘제석산’이 많은 것이이를 증명한다.

인간과 동물의 둔갑술은 우리의 신화에서부터 민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퍼져 있다. 홍길동전이나 손오공 등과 같은 고소설에도 주인공들이 도술을 부린다. 대순 진리의 상제 강증산 선생도 호랑이로 변하는 둔갑술을 부렸다고 한다.

그들은 호풍환우하고 신출귀몰한 신비스러운 술수로 인간과 신, 인간과 짐승을 넘나들 줄 아는 초월적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학문이 높아야 하고 전지전능한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결국, 제석은 우리 민족에게 어떤 영험한 힘을 가진 천신(天神) 혹은 가신이었고, 둔갑술을 부릴 정도로 학문이 높았던 문주역은 제석산 주인으로서 여수의 천신 혹은 가신의 신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조화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아마 학문이건 지혜이건 일천한 인가만 이 세상에 득세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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