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팰리스 비웃는 경운기하우스
타워팰리스 비웃는 경운기하우스
  • 정송호 기자
  • 승인 2004.05.20 18: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물상 오규준씨 7년째 경운기에서만 숙식
오씨 "난 절대 빌어 먹고 살지 않는다"

1만원을 건내는 기자의 손목을 잡으며 "내가 거지요. 나는 남의 것을 탐내보지 않은 고물장수요 이러면 큰일나요"

국제유가가 몇 십년만에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고,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는 35억원을 호가해도 사람들이 매매를 하지 못해 난리를 치는 탐욕의 메마른 사회를 대변해 주듯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평생을 고물장수 외에 해본 일이 없이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돈벌이와 욕심이 없는 탓에 7년째 경운기에서 숙식을 하며 처절하게 살아간다. 주인공의 삶은 분명 경직된 사회가 양산해낸 희생자며 우리의 복지정책을 대변해 주는 단면이다.

여수시민이라면 한번쯤 만나본 낮 익은 고물장수, 40대도 학창시절 이 사람에게 고물을 주고 엿을 바꿔 먹었던 기억이 있는 사람! 바로 오규준(50.)씨이다.

오씨의 주소지는 소라면 1433번지. 그러나 오씨는 자신의 주소지는 소라면사무소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오씨의 주소지는 여수, 그러나 정작 당사자의 삶은 우리의 이웃도, 여수시민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씨가 경운기를 타고 다니며 고물장수를 한지는 27년, 덥수룩한 머리에 몇 년째 씻지 않은 외모, 이제 사람들은 그를 낫선 이방인으로 취급하며 경계심을 먼저 갖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고물장수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이제는 왜 저렇게 사는지 관심을 넘어 화재꺼리가 되고 있다.

춥지는 않은지, 무엇을 먹고사는지 정신상태는 정상인지 등등, 세간의 궁금증을 풀기위해 기자는 19일 오후 무선에서 덕양으로 연결된 신도로에서 3년째 새워져 있는 일명 경운기 하우스의 주인을 찾았다.

유일한 직업인 고물수거를 하지 않고 몇 일째 경운기가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 찾아갔을 때 오씨는 좁은 경운기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의 경운기는 자신의 주거 공간이자, 수집한 고물을 운반하는 생계도구이며 친구인 셈이다. 오씨의 집인 경운기 안은 비가 새지 않도록 포장을 쳐 지붕역할을 하게 했고 버려진 이불을 바닥과 포장안쪽에 깔아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그 좁은 공간에는 성인 어른 한사람 정도가 겨우 몸을 구부리고 새우잠을 잘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휴대용 가스렌지와 라면 몇 봉지, 그리고 낚시대 몇 개와 찌그려지고 검게 그을린 냄비 한 개가 그의 살림살이 전부다. 한마디로 동물들이 사는 우리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였다.

기자가 오씨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심한 악취로 말을 걸지 못할 정도였으나 그의 편안한 미소는 도인을 만난 것처럼 빨려들어 갔다.

오씨는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5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따라나와 학구를 거처 순천에 중앙초등학교(24회)를 졸업했다. 그리고 신체검사를 받고 6주간 군사교육을 받고 당시 여천군 소라면으로 퇴거해 지금까지 27년 동안 여수사람으로 살아왔다. 그의 주소는 예전 부모님과 살던 소라면 1422번지(우시장 내)이며 주민등록도 이곳으로 되어 있다.

오씨는 7년 전까지만 해도 부인과 자식 둘을 가진 한가정의 가장이었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가정문제가 나오자 잠시 인상이 찌푸려지는 듯 하던 오씨는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해 주었다.

7년 전 덕양에서 초등학교(14세)와 중학교(17세)를 졸업하고 자식들이 어느 날 부인과 함께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서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었는지, 또한 가정폭력이 있었는지를 물어봤지만, 그는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며 "말못할 깊은 사연이 있어 말하기 싫다"고 짤막하게 가정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식들이 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딘가에 살아 있으면 한번 정도는 찾아오겠지요"라고 체념하듯 말했다. 사실 확인을 해본 결과 부인은 몇 해전 사망했으며, 자식들은 둘 다 소년원에 들어가 출감을 해서 한 명은 현재 고흥에 있고, 다른 한 명은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한다.

오씨는 27년 전부터 '소라'를 중심으로 인근 자연부락을 찾아다니며 리어카와 경운기를 가지고 다닌 고물장수로 살아오고 있다. 이 지역출신 사람들은 누구나 기억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그 젊은 엿장수!

그는 가족과 헤어진 후에 해산가는 철도 다리 밑에서 2년, 석창에서 1년 또한 여수 여인숙에서 경운기를 가지고 다니며 출퇴근하며 1년 그리고 현재 위치한 자리에서 3년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오씨는 하루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고물을 사고 팔고 해서 기름값을 제외하면 한달에10만원정도 번다며 "그래도 여름은 좀 생활하기 괜찮은데 겨울에는 자고 일어나면 계란이 얼어있다"며 경운기 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운기를 하루 움직이는 기름값 2,500원의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어 일주일째 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생활보호대상자 2급 카드를 가지고 있어 매달 면사무소에서 20여만원이 지급된다고 했다. 아프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소라면 보건소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며 생활하는 것만 제외하면 다른 어느 정상인과 다름없이 살아가고 있다.

기자는 오씨를 만나기 전 알콜 중독자나 정신이상자 등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지 못한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취재에 나섰으나 만나고 나서는 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또 그가 고물수거를 하면서 살아가는 만큼 부정적인 느낌이 들어서 남의 물건에 욕심을 낸 적이 없느냐는 식의 조심스런 물음에 그만 혼 줄이 나고 말았다. "고물장사를 하다보면 대충 주어 오면 되지 안느냐"는 질문에 "나가 오규준이요. 지금까지 다른 사람 물건을 탐한 적이 있는지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시오"하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취재를 마치고 측근한 마음과 인터뷰에 성공했다는 고마운 마음 때문에 만원짜리 한 장을 건네는 기자의 손목을 꽉 쥐면서 "큰일나요, 큰일나! 성의는 고맙지만 사지가 멀쩡해 일 할 수 있는데 공짜를 바라지 않소, 차라리 나보다 어려운 사람이나 도와 주시요"라고 했다.

그도 이제는 주변의 따가운 경계의 눈초리가 마음에 걸린 듯 했다. 처음 "그작 저작 사요. 희망 같은 것 꺽인지 오래 됐소"이랬던 것과 다르게 기자와 헤어지기 전에는 "복지원이나, 직장을 구해주면 이제는 깨끗하게 씻고 경운기 포장도 걷어내야지요", 또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경운기 가지고 장사도 해보고 싶다"며 마음한쪽에 남들처럼 살아가고 싶어하는 의욕이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