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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가 수려해 '산수리'
산수가 수려해 '산수리'
  • 관리자
  • 승인 2004.04.2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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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리여수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율촌면의 산수리 마을은 해발 343m의 앵무산 자락을 경계로 북으로는 순천시의 해룡면과 경계를 이루며 산수리 1구와 2구로 나누어져 있다.
산수리란 마을 이름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시에 처음 생겨난 이름으로 앵무산과 율촌천이 있는 주변의 산수가 수려하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금산과 수전마을에서 유래한다.
행정리명인 산수리는 여러 개의 작은 마을들로 이루어졌는데 마을마다 아름답고 개성 있게 마을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이름들이 전해온다. 가장 북쪽의 행정마을은 본래의 이름이 살구정이었다. 마을 복판에 큰 살구나무가 있어서 살구정이라고 부르다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행정(杏亭)이 된 것이다.
이 마을의 뒷산 이름이 마치봉인데 마치봉을 한자음인 마천봉이라고 표기하여서 한때는 마을이름도 ‘마천’이라 하였다. 마치봉이란 작은 망치를 뜻하는 말로 산의 모양이 마치를 닮아서 불려지게 된 것 이란다.
마을 북쪽에는 옛날 순천으로 연결되던 고갯길이 있는데 이 고개를 ‘왕바위 재’라고 한다. ‘왕바위 재’는 '왕바구' 또는 '괸 돌' 이라 부르던 거대한 고인돌이 여러 기가 있어서 인데. 이 중 가장 큰 고인돌은 지금까지 알려진 고인돌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하며 그 길이가 8미터 62센티미터나 된다.
이 큰 바위를 움직일만한 세력을 가졌던 바위아래 매장자가 이름 그대로 왕이었던지 예사롭지 않았을 이 땅의 조상이 생각되는 곳이다. 왕바위 재 고인돌에서 가까운 산자락에는 토성이 남아있는데 산수리 토성이라고 부른다.
산수초등학교 울타리 옆 신대마을에도 원형으로 배치된 독특한 구조의 고인돌 등 30여기의 고인돌이 남아있는데 지금은 작은 마을인 이 마을이 청동기 시대에는 거대한 세력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라는 걸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신대 마을은 새터라고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고쳐 부르게 된 마을로 임진왜란 후에 새로 만들어진 마을로 생각되는 곳이다. 가장 오랜 기록으로 1789년의 호구총수에서 신대촌이라고 표기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대마을과 이어진 금산마을은 앵무산과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을이다. 율촌의 조산이라고 할 수 있는 앵무산은 본래의 이름이 꼬꼬산이었는데 꼬꼬산을 닭으로 하여 계산으로 하지않고 앵무산으로 하였다. 반대편 해룡 앵무산의 북쪽자락에는 계동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지금은 계수나무 계자로 쓰고있지만 예전에는 꼬꼬산을 닭으로 보아서 닭 계(鷄)로 나타낸 걸로 보인다.
어쨌든 앵무산은 꼬꼬산을 미화하여 지어진 이름인 것이다. 산수리의 마을들도 처음에는 지금보다 더 산 쪽에 가까이 있어서 밤나무가 많았던 밤고개 율등 마을과 대나무가 많았던 죽림마을이 있었지만 마을이 평야지대로 내려오면서 지금은 없어지고 지금은 산자락에 집터의 흔적들만 남아있다.
금산마을의 예전의 이름은 험산이었는데 집이 험한 산자락에 있어서 그렇게 불렸으나 마을 이름이 좋은 의미가 아니어서 금산(錦山)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앵무산의 골짜기에는 예전에 큰 절과 작은 절이 있어서 그 흔적들이 남아있으며 큰 절골과 작은 절골로 부르고 있다.
이 골짜기 입구에는 지와바구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바위주변에서 많은 기왓조각들이 발견되어서 지와바구라 부르게 되었다.평여마을은 죽림마을이 평야지대로 내려오게 되면서 신대마을과 수전마을 사이에 있다 하여 처음에는 ‘간데몰’이라 하여 ‘중여(中閭)’라 하다가 평여로 부르게 된 마을이름으로 마을이 들어서기 전 평평한 들의 뜻인 ‘번덕지’로 불렸던 지역 이름에서 마을이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평여마을과 이어진 수전마을의 우리말 이름은 논이 있는 들녘이 물이 많아 발이 깊이 빠지는 수렁이어서 '구렁들'이나 '구렁더리'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화 하여 ‘수전(水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수전 마을 곁의 후천마을은 마을 앞으로 개천이 지나가기 때문에 개천 뒤에 있는 마을 이라는 뜻으로 ‘후천’이라고 불려진 이름이다.
이 밖에 산수리 마을에 전해지는 땅이름들을 살펴보면 서당이 있었다는 ‘서당골’과 먹을 갈았다는 ‘베루못’, 절터 부근에 탑이 있었다는 ‘탑골’, 옷을 담아두는 농 모양을 닮은 ‘농바구’, 겨울에 따듯한 물이 솟아나는 ‘온수등’이 있고 앵무산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냈다는 ‘천제당’이라는 땅이름 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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