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여수초오유원정대 등반기[4]
2003여수초오유원정대 등반기[4]
  • 김종철 기자
  • 승인 2004.04.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24 니알람에서 하루를 쉬다
새벽에야 전기가 들어 왔다. 그나마 희미하여 겨우 분간이 가능할 정도였다. 옆방에는 일본 트렉커들이 묵고 있어 가끔 일본말이 들려왔다. 머리가 아픈 동료가 있는 듯 했다. 이 곳은 고도가 3200m이기 때문에 고소장애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소장애가 오면 심한 두통에다 힘까지 빠져 무척 힘들게 한다. 아침에 여유가 있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 계곡 건너편과 뒤편으로 꽤 높은 산들이 있었으나 나무는 없었고 풀이 조금 나 있는 정도였다. 관공서가 있고 가로등과 공중전화를 놓고 있었다. 중국의 내부 문제인 동서간의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한 행정이 시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상설시장도 열리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우리는 이 곳에서 고소적응차 하루를 쉬기로 했기 때문에 뒷산으로 올라갔다. 제법 숨이 차고 힘이 들었다. 200m쯤 올랐을까, 멀리 원주민 집이 한 채 보였다. 가보니 아이들은 몇인지 알 수 없으나 부부가 일을 하고 있었다. 차를 만드는 듯 했다. 과자를 줄려고 아이들을 나오라고 했으나 쳐다만 보고 나오지 않다가 그들의 아버지가 손짓을 하자 나와서 과자와 콜라를 받았다. 격리된 생활을 하다보니 아이들이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려했다.
계속 올라가니 숨은 더 차고 흰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은 끝없이 이어져 있어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에베레스트와 시샤팡마, 초오유를 등반하려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곳을 올랐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려와서 쉬었으나 모두들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다.
8.25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고원지대를 달려 딩그리에 도착하다
검문소를 지나 조그만 강을 따라 계속 달렸다. 주변의 산군에서 흘러오는 빙하의 물이 모여서 흐르는 강이었으나 발원지가 어디인지 가늠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빙하가 흘러 내려오며 만들어진 선상지에서 보리농사를 짓고 있었고 조그만 마을도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는 5월이나 6월이 보리가 익는데 반해 이 곳은 8월인데 익어가기 직전이었으며 1년에 한번만 농사를 짓는다.
#그림1중앙#워낙 넓은 지역이라 특정한 지형지물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평탄한 고원을 계속 달려 12시 5050m의 라룽라 고개에 도착하니 진눈깨비가 내리며 바닥에는 눈이 보였다. 13시 50분 4300m의 딩그리에 도착했다.
막 도착하여 들어가니 폐쇄적인 구조의 가옥에서 관리인 가족들이 있었다. 가운데에는 난로가 있고 가에는 의자가 있었는데 그 의자에서 이를 잡아주고 있었다. 차를 받았으나 도저히 못마셨다. 숙소를 안내 받아 가니 조그만 창고 정도의 방에 침대만 있었다. 식사는 좋았는데 주방장이 정장 차림으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딩그리는 물이 많은 곳이었는데 비포장 도로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네팔로 가는 트럭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서 초오유와 에베레스트로 가는 방향이 나뉜다.
8.26 Driver's BC 에 도착하다
가다가 우회전을 했다. 드디어 초오유를 향해 가는 것이다. 길이라고 해야 아무 곳이나 가면 되는데 많이 다닌 자국을 따라 가는 것이었다. 1시간 30분 후 드디어 4900m의 Driver's BC에 도착했다. 자동차로의 이동은 여기까지이고 다음은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멀리 초오유 산군이 보이고 옆에는 우윳빛의 빙하가 흐르고 있었다. 정부연락관이 머무르는 캠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역시 산꾼들은 산에 들어 와야 좋으나보다. 마음이 편해지고 한가해졌다. 짐을 내려서 정리하고 캠프를 설치했다. 도로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현지인들이 와서 약을 달라고 했다. 전문적이 지식이 없는 터라 진통제를 한 알씩 주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