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조심해! 평화로운 정치가 그립다.
말조심해! 평화로운 정치가 그립다.
  • 이상율 기자
  • 승인 2023.02.24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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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이상율 주필
이상율 주필
이상율 주필

 

큰 전쟁이 멈추었던 일이 있었다. 독일 작가 미하엘 유르크스의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나오는 이야기다. 이는 실화다.

19141224일 저녁, 벨기에의 이프로지역 전선에서 영국 대륙 원정군과 독일 제1군이

100m도 안 되는 거리에서 대치 중이었고 지루한 참호전이 계속됐다. 잠시 전선이 소강상태일 때 뜻밖에 독일군 참호에서 병사의 크리스마스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들려왔다. 노래는 전선으로 퍼져나갔고 영국군 쪽에서도 가지고 있던 악기를 연주하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잠시 후 양쪽 병사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손을 마주 잡고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넸다. 결국, 쌍방은 잠시간의 휴전을 다짐하고 시체를 수습하여 무덤을 만들고 십자가를 세웠다. 빈터에서는 병사들이 편을 나누어 축구 경기를 벌였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서로 기념사진도 찍으며, 깊은 대화를 나누기까지 했다. 작은 평화였다.

그러나 이 평화는 짧았다. 양국의 상부 지휘관들은 깜짝 놀라 전투명령을 내렸고 결국 제1차 세계전쟁은 연합국 500만 명의 전사자를 포함하여 2,200만 명의 사상자를 동맹국은 330만 명의 전사자, 1,500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냈다. 그리고 굶주림이나 헐벗음, 질병, 또는 대량 학살로 민간인 약 1,300만 명도 목숨을 잃었다. 이 작품은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귀중함을 절절하게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 전쟁 중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영토전쟁이 한창이고 한때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던 남과 북은 다시 대치 국면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북은 무인 드론으로 영공을 침투하고 공해상에 미사일을 쏘아대며 군사력 위용을 과시하는 등 평화 분위기를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실시하고 있는 항공기 출격, ·미 군사훈련에 대해서도 맹비난하고 위협적인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정부는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절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9.19 합의 위반이라며 맹공했다. 남북 군사합의 효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 정치도 전쟁 중이다.

2022510일 윤석열이 제2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국회는 더불어민주당 169, 국민의힘 115석 정의당 6, 기본소득당 1, 시대 전환 1, 무소속 7, 모두 299석이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는 국내외 엄중한 시기임에도 정치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야 간의 정책 경쟁은 멀리하고 원색적인 막말 전쟁이 앞서고 수위는 이미 선을 넘고 있다. 돌에 새긴 글자는 세월이 가면 점차 사라지지만 가슴에 새긴 말 한마디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말에 순수성을 잃고 가시가 있으면 상대에게 생채기를 남기게 되고 그로 인한 미움과 증오는 타협을 멀리하고 인간과 국가, 세계를 불행하게 한다. 언중유골이란 말이 있다. 말에 뼈가 있다는 말이다. 공경하지 않고 함부로 뱉는 언어는 정치인의 금기어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 주시경 등이 1910년 무렵 조선광문회에서 편찬하다 끝내지 못하였던 말모이 사전이 있다. 말모이란 말(언어)을 모아서 만든 것이란 뜻이다. 영화로도 소개되기도 했다. 개화기 이후 국한문 또는 국문 중심의 문자 생활이 이루어지면서 국문의 정리에 관심이 깊어졌고 언어생활의 규범이 될 만한 사전을 편찬해야 한다는 요구가 증대되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주시경·김두봉·이규영·권덕규 등의 4인이 참여하여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1911년부터 말모이의 편찬에 착수했다고 한다.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을 모으기 위하여 표준어뿐만 아니라 사투리까지 도시 지역의 벽도 허물고 집대성했다 한다. 일제가 우리말을 말살시키려고 하는 데도 이렇게 사투하면서 만들었던 말 교본이다. 물론 말모이 사전에도 팔도의 바른말뿐만 아니라 욕설도 함께 다 모았다. 그런데도 애써 생채기 내는 말을 하는 것은, 말모이 정신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아보리진족이 사용하는 도구에 부메랑이 있다. 동물 뼈 등으로 만들어 새를 잡을 때 사용한 것으로, 던지면 다시 돌아오는 도구다. 다른 부족과 전투를 벌일 때도 사용되었다 한다. 그런데 부메랑이 목표물에 맞지 않고 되돌아오면, 자신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위험 신호다. 이 상황과 같이 함부로 말하는 것은 의도를 벗어나 오히려 위협적인 결과로 다가오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부메랑이 판치는 정치 정말 보기 싫다. 아니 혐오한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선정했다. 과이불개는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교수는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정형화된 언행을 이 말이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며 "자성과 갱신이 현명한 사람의 길인 반면, 자기 정당화로 잘못을 덮으려 하는 것이 소인배의 길"이라고 비판했다. 정쟁도 전쟁이다. 작은 전쟁을 멈추고 큰 평화를 주는 정치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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