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하기와 통섭統攝
낯설게 하기와 통섭統攝
  • 남해안신문
  • 승인 2023.02.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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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81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한편의 시는 시인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 의해 완성된다.

한편의 시에 담긴 내용은 생산과 수용의 관점에 따라 이해의 폭이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산자인 시인의 인생이 반영되지만, 수용자인 독자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에 따라 제 각각 다르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처럼 시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그 속에 고스란히 안겨 있기 때문이다.
시는 우리가 늘 만나는 일상적인 삶의 풍경에 안겨있는 풍경 속 풍경을 보여주어야 하고, 우리 모두가 아는 것들을 새롭게 보여주는 힘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자기 말을 하되 뻔한 말을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뻔한 말만 하는 꼰대의 언어가 아니라, 젊은 언어이어야 한다.

언어가 젊다는 것은 언어부림이 젊다는 말로 융합과 통섭에 의한 언어의 직조력이 있어야 한다.

융합과 통섭은 인문과학, 자연과학, 사회과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관점의 이동을 통해 새로운 말을 찾는 과정이다. 아는 것들을 어떻게 새로운 관점에서 연결하고 교섭할 것인가를 찾는 과정이 융합이고 통섭이다.

‘횡단적 사고, 사선으로 보기, 가로지름’을 통해 구현되는 ‘낯설게 하기’와 통한다.

낯설게 하기는 낯익은 기존의 관념을 깨뜨려 새로운 경험의 세계를 인식케 하는 시적장치다.

 

한 송이 꽃은 한 송이가 아니었어

이슬 머금은 햇살의 꽃

햇살 머금은 바람의 꽃

어둠 머금은 아침의 꽃

찌릿찌릿한 오르가즘의 꽃

꽃술 사이로

꽃잎 사이로

피어나는 생각의 꽃

가만히 가만히 나를 밀어 넣었어

쿵쿵쿵 심장이 뛰었어

내밀한 호흡으로 관계하지 않는

아무것도 없어

우리 모두 꽃이었어

그래 그래 우리 모두 피는 거였어

꽃송이가

꽃 한 송이가 - 신병은 <꽃 한 송이>

 

문득 생각해보니 ‘한 송이 꽃’은 꽃 한 송이가 아니라 한 송이 꽃이 피기까지 과정에 동참한 모든 것들이 다 꽃임을 알 수 있다. 이슬의 꽃, 햇살의 꽃, 바람의 꽃, 어둠의 꽃, 아침의 꽃, 저녁의 꽃, 비의 꽃과 끝내는 오르가즘의 꽃까지 안겨있다는 사실과 ‘꽃이 피다’는 현상에 기대어 우리 모두도 일생을 통해 피어가는 꽃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의 현상을 펼쳐 보면 다른 복합적인 현상이 함께 관여하는 하나 속의 여럿이다. 즉 융합체, 융합의 삶이다.

이미 우리는 융합의 세계에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세상은 그 자체로 전부가 아니다. ‘그렇다’고 믿는 관념을 깨뜨려 인식의 한계를 건너는 방법이 융합이고 통섭이다.

 

개심사 청벚나무 가지에 연둣빛 꽃이 눈을 떴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던 것일까

가지 하나 길게 내밀어 법당에 닿을 듯하다

꽃이 맑다

매화나무는 목탁 두드릴 때마다

꽃잎으로 법구를 읊고,

청매화는 동안거 끝에 심욕의 수피를 찢어

꽃망울 터트린다

저토록 신심(信心)을 다져왔기에

봄이 일주문에 들어설 수 있다

가지마다 허공으로 낸 구도의 길

제각각 가부좌 틀고 참선의 꽃들을 왼다

전각에서 내리치는 죽비소리

제 몸 쳐대며 가람으로 흩어지는 풍경소리

합장하듯 꽃잎들 맞이하고 있다

법당은 꽃들의 백팔배로 난분분하다

부처가 내민 손바닥에

청벚꽃잎 한 장 합장하듯 내려앉는다 -이수진 <청빛보살>

 

2023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올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작품 중 한편이다.

“이제 어렴풋이 나만의 시 짓게 됐다” 당선자의 말 속에는

시적주체인 ‘청벚나무’의 “꽃피다”라는 보편적인 현상을 시인의 새로운 언어부림으로 인식해내고 있다. “가지 하나 길게 내밀어 법당에 닿을 듯하다/ 꽃이 맑다”는 시적 주체의 깨달음에 대한 그리움과 맑은 선심을 간절하게 표현하면서, 봄이 일주문에 들어서고, 가지마다 허공으로 구도의 길을 내고, 꽃잎으로 법구를 읽고, 법당은 꽃들의 백팔배로 난분분하다.

“부처가 내민 손바닥에 청벚꽃잎 한 장 합장하듯 내려앉는다”는 표현에서도 시적주체의 귀의와 구도의 마음결을 만난다.

이처럼 새로운 인식이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새로운 언어에 의해 새로운 세계를 인지해갈 수 있다.

 

구 일째 울진 산불이 타고 있다

한 할머니가 우사 문을 열고

다 타 죽는다 퍼뜩 도망가거래이 퍼뜩 내빼거라 꼭 살거라

필사적으로 소들을 우사 밖으로 내몰고 있다

불길이 내려오는 화면을 바라보며

밀쳐놓은 와이셔츠를 당겨 다린다

발등에 내려앉은 석양처럼 당신은 다가오려 했고

나는 배 발등을 찍어 당신이 집 나간 지도

구 일째

주름진 당신의 얼굴이 떠올라 매매 반듯하게 다리고 있다

똑 똑

똑똑 똑똑

똑똑똑 똑똑똑

빗소리다


쏟아지는 빗소리가 진화를 몰고 와

우산을 쓰고 돌아온 당신 속으로 질주하는 나는 맨발

날 밝아

체육관으로 피했던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다 타버린 우사 앞에서 할머니를 가다리는 소들의 모습이 비쳤다 -황정희 <구 일째>

2023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시다.

이 시는 강원도에 난 큰 산불과 시적화자의 개인적 일상에 관한 일화다. 두개의 일상을 감정을 숨긴 채 담담하게 바라보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 일상속의 이면에 안겨있는 아픔을 새롭게 성찰해낸다. 화자는 강원도 산불을 뉴스를 시청하면서 집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리는 두 현실이 절묘하게 오브랩된다.

“똑 똑 / 똑똑 똑똑 / 똑똑똑 똑똑똑” 빗소리의 교점을 통해 “쏟아지는 빗소리가 진화를 몰고 와 / 우산을 쓰고 돌아온 당신 속으로 질주하는 나는 맨발” 결구를 통해 두 개의 화소가 가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면서 시상을 마무리한다.

일상적인 비극을 또 다른 낯선 비극으로 승화하는데 성공한 통섭적 안목이다.

통섭은 사유의 방법이다.

 

나의 봄은

봄이 와서 봄이 아니라

너가 와서 봄이었어

혹여

바람에 날아가 버릴까봐

새들이 콕콕 삼켜 버릴까봐

아래로 흘러내릴까봐

가만히 간직해온 봄빛 하나

꼭꼭 눌러 심었는데

착한 손길로 다독였는데

글쎄

봄이라고 다 봄은 아니었어

새잎 새싹만 피는 건 더더욱 아니었어

모든 게 바람 속 바람일 뿐이었어

우리의 봄은

꽃이 피어서가 아니라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너가 와서 봄이었어

그립고 그리운 너가 와서 봄이었어 -신병은<봄, 피다 37>

겨우내 웅크려 있던 모든 존재가 일시에 고갤 내밀고 우르르 몰려나오는 봄날의 풍경을 보면서 또 다른 풍경을 더듬어 낸다. 시인에게 봄의 마당은 ‘그리움’이라는 한 단어로 포스팅한 인문학적 만찬이 될 수밖에 없다. 시적 화자는 꽃이 피어서가 아니라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너가 와서, 그립고 그리운 너가 와서” 봄이라 인삭한다.

누구나 만나는 봄이지만, 그 속에 안겨있는 통섭의 안목으로 공감의 자리를 마련해둔다.
통섭統攝의 한자어를 보면 統은 큰 줄기라는 뜻이지만, 攝은 ‘당기다, 거느리다’의 뜻으로 ‘손 수手와 귀 이耳 세 개’로 된 구성된 글자다. 그만큼 귀를 기울여 듣고 보아야 새로운 것을 듣고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고도 잘 들리지 않으면 귀에 손을 대고 잘 듣는 일이 통섭이다.

이 통섭이 바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이 되게 하는’ 원리다.

또 어떤 언어로 나를 깨우고 세상을 깨울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원리다.

 

신병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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