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을 위한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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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안신문
  • 승인 2023.02.1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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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80
신병은 시인.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의 연재가 80회를 맞았다.

창작은 이론보다는 실제인데도 그동안 참으로 많은 쓸데없는 말을 한 것은 아닌지 반성과 함께 되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후배들에게 늘 시는 이론에 기대어 쓰는 것이 아니라, 시창작의 최선의 공부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를 많이 읽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많이 읽다보면 대상과 현상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스스로 깨치게 될 뿐만이 아니라, 시창작의 매력인 세상을 새롭게 만나고, 그동안 보지 못한 의미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

절 마당을 쓴다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산에 걸린 달도 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이성선 <백담사>

 

절마당을 쓸다보면 마당에 안겨있는 풍경들이 함께 쓸려나간다. 마당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며 산에 걸린 달도 함께 쓸려나간다. 정갈하게 쓸어놓은 마당에는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아지고 물소리도 더 많아진다고 분다.

백담사의 공간적 의미와 버리고 비우며 사는 의미를 되새겨주는 공감화법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몇 가지를 반복해서 주문하기도 했다.

 

1. 시 창작은 시를 쓰는 일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라고 의아해 할 것이다.

시를 쓰려면 창작법을 익히기 전에 먼저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론에 의지하려 하지 말고 세계를 만나는 일부터 시작하라는 뜻이다. 시를 공부하려는 분들에게 가장 먼저 주문하는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시 쓰기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한 둘이든 두 줄이든 눈치 보지 말고 무조건 써라는 뜻이다.

시 쓰는 일은 이론에 앞서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2. 시는 쓰지 말고 주워라.

시는 머리로 생각하는 관념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구상이고 다큐임을 기억하라고 주문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이, 달빛에 나부끼는 나뭇잎이 잠시 흔들리다 이내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선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시인이다.

아침 출근길에 시간에 쫓겨 자동차 문을 열려는데 빗방울 사이로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쥐손이풀꽃을 본다. 눈 마주치자 비 맞은 꽃은 환하게 웃고 있다. 그것도 보드블록 사이에서 피어난 작은 꽃이다.
그 순간에 이런 생각이 든다.

행복한 삶이란 저렇게 제자리에 순응하며 웃을 수 있는 삶이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이 시를 한편 줍는 순간이다.

제자리에서 순응하며 가만히 웃을 수 있다 – <쥐손이 풀꽃>

 

3. 새롭게 보려하지 말고 다르게 보려하라.

새로운 것을 보려하면 어렵지만, 다르게 보려하는 것은 쉽다. 다르게 보는 법이 새롭게 보는 법이 된다. 다르게 보기 위한 장치가 관점의 이동일 것이다.

관점을 달리해서 보라, 일상을 재발견하고 다르게 보는 방법은 관점을 달리해서 보는 일이다. 관점은 상상력을 확장하는 시간적 공간적 이동이면서 일상을 재해석하고 재탐색하는 일이다.

토요알의 햇살은 반쯤 누워 오는 것 같다

반공일처럼

반쯤 놀다 오는 것 같다

종달새한테도 반쯤 울어라 헤살 대는 것 같다 -고운기 <반쯤>

 

산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산다 - 버팀복

 

4. 유추하라.

유추는 숨겨진 닮음을 찾은 일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관련이 없는 것들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이것에서 저것을 보고, 저것에서 이것을 보는 통섭적 안목이다.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는 하나, 즉 온생명체이므로 통하지 않을 것이 없다는 뜻이다.

유추야말로 기존 지식에서 새로운 지식으로 도약하는 기반이 된다.

즉 사과를 땅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면 이는 하늘 위로 계속 뻗쳐나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달까지도 끌어당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유추다.

어떤 사물을 볼 때 ‘그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 될까’에 착안해야 한다. 그래야 사물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둘도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셋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강은교 <숲>

 

5. 일상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라.

문학은 언어예술이고 시의 언어는 그 대상과 그 현상에 딱 맞는 말을 찾는 언어부림이다. 그래서 그냥 내 곁에 있는 언어, 말을 재발견하는 일이다.

이것이 디자인된 말의 힘이다. 아울러 낯설게 하기 위해서는 경계를 지우고 서로 소통하는 이종교류가 필요하다. 그리고 꽃의 언어, 풀의 언어, 나무의 언어, 별의 언어, 바람의 언어, 남자의 언어, 여자의 언어, 어둠의 언어, 아침의 언어, 저녁의 언어 등등을 이해하는 일이다.

말의 맛을 아는 일이다.

여기에서 정서적 화법이 가능해진다

 

꽃 - 꽃은 식물이 성기다
벌레먹은 나뭇잎 -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겨울 산 - 능선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빈집 - 저녁은 조용히 대문만 만지다 그냥 가겠다

별 - 지금 어둠인 사람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6. 시청하지 말고 견문하라.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잘 들여다보고 그 안쪽에 안겨있는 의미를 깨닫는 일이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에서 ‘한 사람이 내게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며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대상과 현상에 안겨있는 보이지 않은 풍경을 보려면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견문할 때 가능한 일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도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에서

 

7.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과 통섭하라.

통섭은 저쪽에서 이쪽을 더 잘 볼 수 있다는 원리다. 세상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불이사상不二思想에서 출발한다. 즉 창조는 주위에 있는 것을 서로 만나게 하고 소통하게 함으로써 새로워진다. 없는 것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재편집하는 일이다. 몽타쥬(montage)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시 창작은 자연과학에서 인문과학을 밝혀내는 일이면서 자연과학에서 사회과학의 원리를 깨쳐내는 일이다.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5천만 마리다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수십억 마리 미생물이 밀어 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는 걸! - 정현종 <한 숟가락 흙 속에> ​

 

8. 뻔한 것을 질문하라.

시적 발아는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뻔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하나의 질문이 시 한편이 된다. 알고 있는 그 너머에 또 다른 무엇이 있겠다는 것을 궁금해하고 의심하는 질문에서 발상의 전환이 가능해진다.

시 창작은 끊임없는 타자와의 대화이자 소통의 방식이다.

소통의 시작은 발문이고, 좋은 시는 언제나 질 좋은 발문의 결과물이자 발문의 힘이다.

 

꽃의 뒤태? - 꽃은 진 다음까지가 꽃이다.

계곡물로 세수를 하면? - 햇살, 맑은 바람, 피라미들의 조잘대는 소리가 얼굴에 묻을까

기차는 왜 여수역에서 멈추는가? - 여수에서는 기차는 바다를 향해 달린다.

 

그리고 폭소노미와 온생명 사상, 그리고 통섭과 통찰, 비유와 연상, 독서와 딴짓하기, 그리고 이미지와 감정이입에 대해 목청을 높였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다양한 시창작의 키워드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창작은 서정적 화법으로 일상의 풍경에 안겨있는 삶의 풍경을 하나하나 새롭게 발견해내는 일이다.

시는 이래야만 한다.

풍경 속 풍경을 보는 통섭적 안목, 그 안목으로 새로운 의미를 재발견하여 언어적 공감으로 표현해 독자에게 안내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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