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출판으로 모든 게 조금이나마 치유되었으면 하죠”
“자서전 출판으로 모든 게 조금이나마 치유되었으면 하죠”
  • 강성훈
  • 승인 2022.12.20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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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 정병진 어깨동무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소라면 가사리 어르신들의 삶 이야기, 한 권책으로 펴내
어르신들 들려준 역사와 문화...지역공동체 회복 첫 걸음 기대
정병진 이사장.
어깨동무사회적협동조합 정병진 이사장.

 

“지금같이 좋은 세상이 어디가 있다요. 뭐 나가 노력하면 돈이 귀헐까, 묵고 사는 게 힘들까, 그때는 먹는다는 건 저 짐치나 먹고....”

지난 11일 오후 소라면 큰가사리 마을회관에서 특별한 마을잔치가 열렸다.

여수 소라면 가사리 어르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구술자서전 ‘옛날에는 사는게 다 그래’ 출판을 기념해 열린 마을잔치다.

마을주민의 사회적 전기를 채록하는 구술자서전 사업은 여수어깨동무사회적협동조합이 ‘2022년 마을공동체 활동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해 맺은 결실이다.

가사마을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소중한 기억을 채록해 후세에 전승해 보고자 제안하면서 책 출판작업이 시작됐다.

지난 1월 첫 사업회의를 시작으로 선진지 답사와 구술 생애사 채록 교육, 구술자 선정, 면담과 채록, 편집 작업이 1년여 가까지 이어져 왔다.

이번에 책에서 다룬 이야기는 군산 출신으로 70년대 남해화학에 입사해 퇴직하고 현재 가사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강장원 어르신, 여천동 화산마을에서 태어나 20세에 가사마을로 시집 온 정옥자 어르신, 율촌면 출신으로 19세에 혼인해 줄곧 가사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지정자 어르신 등 네 분의 인생 이야기를 채록하고 책으로 펴냈다.

이들의 이야기는 가사 마을의 역사이자 지역사회의 문화와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소중한 전통 유산으로 기록됐다.

기획부터 출판까지 여수어깨동무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병진 목사(솔샘교회)가 주도했다.

수년전 가사마을로 이주한 정 목사는 주민 대다수가 70대 이상인 가사마을 어르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에 이번 사업의 첫발을 디뎠다.

책을 펴내기까지 작업은 쉽지 않았다. 구술자 선정, 어르신들과의 관계 형성, 잊혀진 기억 되살리기, 연대기 구성까지 숱한 어려움에 직면한 여정이기도 했다.

정병진 이사장을 만나 한권의 책을 펴내기까지의 여정에 대해 들어본다.

 

 

-. 먼저, 어깨동무사회적협동조합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협동조합은 지역아동센터 운영으로 지역사회 아동의 보호, 교육 및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고자 지난 2020년 7월에 설립한 단체입니다.

현재 솔샘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중이고, 올해 처음으로 전남도와 여수시가 공모사업으로 진행하는 마을공동체활성화 사업(‘씨앗’ 단계)에 참여하였습니다.

 

-. 이번에 펴낸 책, ‘옛날에는 사는 게 다 그래’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개인적인 제 경험이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가끔 부모님 댁을 방문하면 연로한 어머님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흘려듣다가,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살아오신 이야기를 채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간간히 녹취한 내용을 재작년에 구술 자서전(<아리랑 고개 너머>)으로 펴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소라면 가사마을 70세 이상인 어르신 몇 분을 선정해 구술 자서전을 펴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습니다. 이에 조합원들이 흔쾌히 호응하여 가사마을 주민의 사회적 전기(마을 어르신들 구술 자서전) 사업을 기획한 겁니다.

 

-. ‘옛날에는 사는 게 다 그래’가 어떤 책인지 소개한다면?

소라면 가사마을 어르신 네 분의 구술 자서전입니다. 고향 이야기, 어린 시절, 청소년기, 결혼한 뒤 생활을 중심으로 저희(면담자들)가 여쭤 보고 어르신들이 답변하신 내용을 풀어 책으로 엮은 겁니다.

거의 가감 없이 다루었고 어르신들의 사투리도 살려서 책에 담았습니다. 다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려운 사투리는 괄호 안에 그 뜻을 써 넣었습니다.

-. 네 분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구술로 기록했다. 네 분은 어떻게 선정했는지?

가사마을 주민 중에 70세 이상인 어르신을 기준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실 분들을 물색하는 동안 어르신 세 분에게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아직 관계 형성이 잘 안 된 상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선뜻 남에게 들려주신다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우리로서는 ‘이러다가 사업 자체가 무산되고 마는 거 아닌가’ 걱정스러웠습니다. 이즈음 큰가사마을 노인회장인 강장원 님이 적극 참여해 주셨고 다른 분들의 참여도 독려해 주심으로써 그때부터 채록 작업이 탄력을 받았습니다.

 

-. 이번에 발간한 책의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가사마을 어르신 네 분의 구술 자서전은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인생의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둘째, 구술자인 네 분은 가사마을에서 적어도 20년~70년 넘게 사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삶의 내력에는 마을의 생생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구술 자서전은 개인의 살아온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한 마을의 전통 문화와 역사를 기록으로 보존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구술자들이 자기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자기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르신 세대는 굴곡 많은 현대사를 헤쳐 나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나 응어리가 많습니다. 이번 구술 자서전 출판으로 그 모든 게 조금이나마 치유되었으면 합니다.

 

-. 책 출판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구술해 주실 어르신 선정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자신의 살아온 내력을 남들에게 드러내는 걸 쑥스러워하시거나 부질없다고 여기셔서 거절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또한 어르신들과 면담 날짜와 시간 약속을 잡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면담을 하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진행해야 하는데 어르신들이 농사로 바쁘셔서 잘 연락이 안 되거나 댁에 찾아갔다가 허탕을 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어르신의 이야기가 있다면?

정옥자 어르신 이야기였습니다. 두 오빠가 죽음의 골짜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작은 오빠는 여순사건 당시 그 유명한 서초등학교 학살 현장에 끌려 가셨다가 살아 돌아오셨고, 큰 오빠는 한국전쟁 때 군복무 중이었는데 인민군에게 붙잡혀 납북되었다가 삼 년 만에 포로 교환으로 돌아오셨답니다.

정옥자 어르신의 부친은 큰아들의 납북 이후 아들을 잃었다는 충격과 슬픔으로 눈이 실명 되어 평소 지팡이를 짚고 더듬거리며 다니셔야 했답니다. 집에서는 삼 년 동안 제사까지 지냈습니다.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 큰아들이 돌아오자 부친은 심청전 심 봉사가 눈을 뜨듯 눈을 떴고 그날 정옥자 님네 집에서는 큰 마을잔치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 책에 다 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면?

가사마을에서 가장 연로하셨던 김점심 어르신(92세)이 구술 작업을 마무리 하지 못하신 채 지난 7월 숙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게 가장 아쉽습니다. 김점심 어르신의 살아온 이야기는 처녀시절 때까지인 일제강점기와 여순사건 무렵까지만 채록하였을 뿐입니다.

 

-. 앞으로 또다른 사람들의 살아 온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여운을 남겼는데, 계획은?

내년에도 구술 자서전 사업을 계속해 보렵니다. 내년 마을공동체 활성화 사업에 채택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였으니 다시금 제안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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