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리고 말 부림
말 그리고 말 부림
  • 남해안신문
  • 승인 2022.12.0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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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77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말은 사람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언어에도 온도, 맛. 향기가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말의 힘은 일상의 말, 다정한 말, 따뜻한 말의 힘이다.

다정한 말은 사람을 꽃 피운다.

예쁜 말이 쌓이면 좋은 내가 보인다.

김춘수 시인은 <꽃>에서 내가 꽃이라고 불러주니까 ‘인식된 존재인 나의 꽃’이 되었다고 했다.

말씨(말투), 솜씨, 글씨, 마음씨, 맵씨 등 말씨는 운명을 좌우하는 씨가 된다.

말은 사람의 품격을 측정하는 잣대이다.

공자도 입을 다스리는 것을 군자의 덕목으로 꼽았다.

군자의 군(君)을 보면 '다스릴 윤(尹)' 아래에 '입 구(口)'가 있는데 이는 입을 다스리는 것이 군자라는 뜻이다. 세 치 혀를 잘 간수하면 군자가 되지만, 잘못 놀리면 소인배로 추락한다.

또한 공자는 "더불어 말하여야 할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다. 더불어 말하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말하면 말을 잃는다"고 하였다.

논어의 마지막에도 不知言부지언이면 無以知人也무이지인야니라. 즉 '言(언)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말이 인간됨임을 강조하므로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면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言(말씀 언)은 辛 (매울 신)과 口(입 구)의 합자(合字)다.

말을 잘하면 화기애애해 질 것이고 말을 잘못하면 매운 맛을 보게 된다.

듣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말은 좋은 말이라 할 수 없다.

상대를 위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전했는데 상대가 불편하고 아파한다면 좋은 말이 아니다.

사람을 사랑하려면 사람을 알아야 하고, 사람을 알려면 말을 잘해야 하고, 말을 잘 하려면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잘 들어라.

남을 잘 웃기는 사람 곁에 열이 모인다면, 남의 말에 하하 잘 웃어 주는 사람 곁엔 백이 인다.

말이 적으면 근심이 적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

이렇게 볼 때 어떤 말을 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말하느냐의 화법(話法), 화술(話術)의 문제다.

진정한 화술은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다.

말은 마음의 소리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어떤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가 없다.

말은 현실이고 말은 인격이다.

그래서 긍정적인 화법, 상대를 배려하는 화법이 필요하다.

“봉투 드릴까요” “그럼 맨손에 들고 갈까요”

이렇게 배척하듯 툭 쏘아 붙이는 식의 화법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인간사회를 피곤하게 한다.

말을 걸 듯 말을 하라.

상대 혹은 독자와 동행하는 화법을 구사하라. 이러한 화법이 독자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는 공감화법이다.

언어는 공감을 무기로 말을 건네고 설득하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를 들었다.

인간성을 나타내느 에토스, 즉 말 속에 사람이 있다는 사람됨이 주는 신뢰감이 60%, 감성을 나타내는 파토스, 즉 남의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 30%, 논리성을 뜻하는 로고스, 즉 생각없이 말하지 않는 것 10%라 했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동네 몽땅 좆돼 버렸쇼잉 오탁법<폭설> 부분

 

사람 사는 세상의 사람냄새 나는 화법이 필요하다.

시의 말도 같다.

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사람이 쓰고 사람이 읽는 이야기다.

가장 재미있고 힘 있고 마음을 잘 움직일 수 있는 소재와 주제가 휴머니티다.

좋은 시는 사람에서 시작되고 사람을 향한다고 한다.

사람과 소통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사람이야기를 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고민과 사랑에서 출발해야 하고 느낌이 있는 느낄 수 있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언어 부림은 언어를 잘 고르는 일이다.

시적 진술도 생각하지 말고 찾아라고, 시를 만들지 말고 찾아라고 강조한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쓰는 말, 우리 곁에 놓인 말 중에서 지금 내가 표현하려는 것에 딱 맞는 말을 찾는 것이다.

시는 손이 아니라 눈으로 쓰는 것이다.

시인은 하루 종일 뭔가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하루 종일 뭔가를 찾는 사람이다.

주변에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그날의 그 분위기 또는 그 상황에 잘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특별하고 멋진 말이 아니라 우리가 늘 쓰던 일상적인 말 중에서 상황과 대상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을 찾아 연결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공감의 힘, 공명의 힘이다.

플로베르도 그 대상에 알맞은 말은 하나뿐이라며 ‘일물일어설’을 주장한 것도 같은 말일 것이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도종환 <산경>

 

‘아무 말도 안 했다’란 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산’에 연결되면 ‘산도 똑같이 아무 말도 안 했다’처럼 낯설면서 새로운 의미로 거듭나게 된다.

시의 언어를 낯설게 한다는 말은 새로운 말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늘 즐겨쓰던 말을 어떤 대상과 연결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어린 물새떼 발자국 안테나처럼 찍힌

해변가 모퉁이 외딴집 한 채

대문 푸른

그 집의 적막을 떠밀자

능소화 꽃잎마다 출렁 노을이 진다 -김영식<소라여인숙>부분

 

위시의 ‘적막을 떠밀다’도 마찬가지다. ‘적막’과 ‘떠밀다’란 말이 서로 만나는 순간 외롭고 고독한 정경을 드러낸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가난한 비가 내린다

어둠이 다시 눈을 뜰 때가 있다

진달래가 창백하다

흙에 가까워지는 시간이 왔다

봄이 길게 눕는다

그대 누울 자리에 목련꽃 이파리 서넛이 먼저 들어가 누었다

나무의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이처럼 시적상황도 단어의 낯선 조합으로 적절하게 그려낸다.

언어의 이종교류의 매력이다.

언젠가 포스코의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라는 기업광고가 인상적으로 다가온 때가 있었다. 철을 만드는 포스코의 기술의 차거운 이미지를 따뜻한 이미지로 전환하는데 성공한 광고로 기억된다. 즉 tech 브랜드에서 touch브랜드로 전환한 경우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힘이다.

어떤 대상, 상황과 만나느냐에 따라 그동안 갖지 않았던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이것이 ‘언어부림’의 실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이 한 잔의 커피’

‘오고가는 대화가 즐겁구나 이 한 잔의 커피’

 

커피 광고도 마찬가지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데, 대화가 즐겁다는데 마시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어부림은 언어의 의미체험을 위한 장치다.

그럼에도 우리가 즐겨 쓰는 언어는 의외로 불완전하고 빈약하다. 가령 음식의 맛을 드러내는 말을 보면 한결같이 ‘담백하다, 식감이 살아있다, 깔끔하다, 고소하다’ 등의 한정된 말 뿐이다. 아무리 잘 설명한다 해도 출연자가 직접 먹어본 맛의 경험을 산채로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천년간 말을 사용해 왔고 단어나 표현법이 계속 발전해 왔지만 표현의 한계에 부딪혀 왔다.

문제는 이러한 말의 빈약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것은 대상과 상황에 맞는 말, 즉 대상과 상황을 만나면서 구체화되고 짝지어지면서 그 문제를 해결해 간다.

 

나뭇잎 배 위에 바람 한 올 앉았다

가만히

물소리로 내려 앉아 물소리를 저어간다

가만히

가만히

한세상 너머 또 한세상으로 건너간다 -신병은<가만히>

시적상황과 언어의 만남,

우리가 늘 쓰는 말을 어떤 상황 혹은 대상과 연결하느냐에 따라 세계가 새롭게 인식된다.

시창작의 언어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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