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하기
낯설게 하기
  • 남해안신문
  • 승인 2022.10.2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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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75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나는 그동안 오랜 창작 강의와 시창작의 실재로 내가 터득한 창작의 키워드로 세 가지를 강조한다.

1) 시 창작은 시를 쓰는 일이다.

2) 시는 쓰지 말고 주워라.

3) 시를 잘 쓰려면 잘 쓰려고 하지마라.

선문답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시창작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고, 쓰는 일이 중요하다. ‘다독, 다상량, 다작‘를 말하지 않더라도 시공부의 출발은 시를 쓰는 것 부터여야 한다.

그리고 억지로 쓸려고 하지 말고 일상 속에서 늘 만나는 풍경의 다른 모습과 의미, 혹은 시간과 공간의 다른 느낌을 놓치지 마라는 것이다. 다르게 보려하면 늘 똑 같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봄꽃 한송이가 피었다고 하자. 문득 가만히 생각하면 봄꽃 한 송이는 한 송이가 아니라, 이슬머금은 햇살의 꽃, 햇살 머금은 바람의 꽃, 꽃잎 사이로 얼비친 내 생각의 꽃 등 많은 꽃이 거기 있음을 보게 된다.

일상의 일탈이면서 일상의 낯설게 하기다.

그리고 처음부터 불후의 명시를 쓰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즉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일상속에서 다르게 다가온 감정과 느낌, 의미를 그림을 그리듯 그려두면 된다.

풀과 나무와 바람과 수다를 떠는 내용을 그림일기 쓰듯 옮기면 된다.

늘 알고 있던 의미가 아닌 다른 관계된 의미를 헤아려 보면 된다.

‘담그다’란 어휘의 사전적 의미는 ‘술·김치·장·젓갈 등을 만드는 재료를 버무리거나 물을 부어, 익거나 삭도록 그릇에 넣다’란 뜻이지만 그 말에 안겨있는 또 다른 의미를 살펴보면,

1) 피곤이 풀릴 것 같다

2) 짠내가 날 것 같다

3) 절여진 아픔, 슬픔, 시간도 생각난다

4) 이 말의 가장자리에 장꽃이 피어 있을 것 같다

‘푹’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아주 깊이 잠이 들거나 느긋하게 쉬는 모양’ ‘힘 있게 깊이 찌르는 모양’ ‘빈틈없이 덮거나 싸는 모양’ 등의 의미지만 그 말의 가장자리에 있는 또다른 의미를 보면,

1) 융숭깊고 넓고 모나지 않아 부딫히지 않는다

2) 잘 익은 말, 묵은지 냄새가 담을 넘어갈 것 같다.

3) 부분이 아니라 온몸으로, 혹은 전심으로 빠져 들 것 같다.

이렇듯 우리가 알고 있는 어휘에도 상황과 배경 분위기와 맞물려 또 다른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된다. 뿐만아니라 일상에서 느끼는 다른 생각도 마찬가지다. 일기예보를 보면서 나의 내일을 예보해 볼 수도 있고, 오늘 하루동안 들은 내 귓속에 담긴 말의 분량은 얼마일까를 생각하고, 떡잎은 또 처음에 어떤 첫 말은 걸어올까를 생각하고, 나팔꽃이 허공을 향해 오르는 풍경에서 ‘꽃피우고 싶은 마음 하나로 허공에 길을 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득, 나에게 다가온 새로운 생각, 낯선 사색이 시의 출발점이 된다.

생각과 사색은 이미 내 안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어떤 계기로 다시 한 번 상기하는 일이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 이유다.

인지발달심리학자 피아제(Piaget)는 생각의 본질을 ‘표상(representation)’이라 정의한다.

​presentation, 즉 ‘ 반복적으로 보여주다’의 의미로 ‘다시 보여주다’라는 뜻이다.

​어디서 본적이 있었던 것을 그림처럼 머릿속에 다시 한번 떠올리는 것이 생각이다.

우리의 생각은 그림인가, 아니면 문장인가. 심리학의 아주 오랜 질문이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고향에 가 당일로 돌아오는 내게 늘 하시던 말씀이 ‘조심해라, 쉬어가며 해라’ 고 하시던 낯익은 말씀이 요즘 들어 참 낯설게 다가온다. 그 말의 의미를 새기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르침이고 가장 따뜻한 사랑이 안겨있는 말임을 알게 된다.

늘 만나던 풍경이 문득 새로운 의미로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이때가 바로 시의 순간이 된다. 이런 사소한 생각이 귀한 시의 자리가 되었고 그 자리에서 시가 탄생한다.

 

주인 내외는 어디 일 나갔나?

사립문은 열려 있고 / 기울어진 울타리 위에는

호박덩굴이 마음껏 달릴 듯하더니 / 잠시, 멈춰 하늘을 만지고 있고

마당에는 쉬고 있는 경운기 한 대 / 삽 두 자루, 빈 경유통 하나

툇마루 끝에는 걸레가 하얗게 말라가고 있고

나는 좀 기다릴 요량으로 뒤뜰로 가본다

오동나무 그늘 아래 / 낯선 객이 왔는데도 짖지 않는 잠든 똥개 한 마리

햇살이 그 주변에서 아차, 하고 짐짓 뒤로 물러서는 것이 보이고

이 집은 저 혼자 산다 / 이럴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도 이렇게 한번쯤은 나를 비우고 / 누가 나를 두드리면 소리가 나도록

텅텅,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 안도현 <혼자 사는 집>

 

집이 혼자 살아? ‘혼자 사는 집’ 제목부터 낯설다,

빈 집의 풍경과 비운다는 의미가 잘 버무러져 한가한 삶의 풍경을 연출하는데 손색이 없다. 살다 가끔 이럴 때도 있어야 한다는 것, 한번쯤은 나를 비우고 텅텅 소리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빈집과 유추된다.

‘낯설게 하기’는 러시아 형식주의자 슈클로프스키에 의해 처음 사용된 말로 일상화되어 친숙하거나 반복되어 참신하지 않은 사물이나 관념을 특수화하고 낯설게 하여 새로운 느낌을 갖도록 표현하는 것을 이른다. 우리의 인식의 틀을 깨고, 인지된 인과관계를 차단하고 몽타쥬나 콜라쥬 기법에 의해 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물을 의도적으로 처음보는 것처럼 본다든지, ‘이것은 침대가 아닙니다’처럼 기존의 것을 부정한다든지, 낯선 시각에서 기존의 것을 바라보는 역발상, 역설법에 의해 가능한 시적기법이다.

친숙한 사물에 주목하지 않고 세상의 상식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유치환 <깃발>

해안선을 집어넣고 끓이는 라면집,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 김영남<정동진역>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 – 서정주 <광화문>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김광균 <추일서정>

나는 해저문 벌판에서 도러가는 길을 일코 헤매는/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詩를 쓴다 – 한용운<군말>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 눈 내리는 겨울바다, 거기 하나의 암호처럼 서 있습니다 –이승훈 <암호>

 

세상은 새로운 것은 없고 새로운 관점만 있다고 한다. 생전 듣고 보지도 못한 것, 상상도 못하는 새로운 것은 없다. 있는 것을 조금만 다르게 보려하고, 다르게 편집하고, 다르게 해석하는 일이다.

그렇게 보면 세상의 모든 시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한 것들이다.

그래서 창조적 삶을 위한 키워드로 ‘관찰, 모방(유추), 몰입, 실행, 함께’를 강조한다.

관찰 즉 통찰은 호기심을 갖고 일상을 낯설게 바라볼 줄 아는 삶, 보는 법을 아는 것이라면, 모방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빌려와 연결하는 능력이다. 즉 남이 보지 못하는 유사성을 어떻게 찾아내고 연결하느냐의 문제다. 그리고 ‘함께’는 나의 가치를 사회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공유와 협력, 공감하는 생각도구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올라 담장을 오르는 풍경이 그려진다. 우리들이 벽이라고 생각하고 멈칫거릴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우리들이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도 담쟁이는 꼭 여럿이 함께 손잡고 묵묵히 길을 오른다. 잎 하나가 수천개의 잎을 이끌고 그 벽을 넘는 의미 풍경을 새롭게 들여다 본 결과다. ‘담쟁이, 벽, 절망, 오른다, 넘는다’는 키워드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다. 그러면서 공유와 공감의 네트워크에도 기여하고 있다.

시는 인문학의 꽃이라고 말한다.

객관적 상관물을 확보하고 삶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확장해야하고 무엇보다 진정성과 순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 언어에 힘이 실리고, 변화와 추구를 향한 시적 공감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처음에는 네 발로 걷고, 다음에는 두 발로 걷고, 마지막으로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 젊어서는 푸른 주머니에 은전이 들어있고, 늙어서는 붉은 주머니에 금전이 들어있는 것은?처럼 이런 수수께기의 원리가 바로 낯설게 하기의 가장 대표적 은유적 표현이다.

시에서 낯설게 하기는 비유, 리듬, 어휘, 음성, 통사, 해체, 맥락 바꾸기 등의 원리에 의해 가능하다.

비 오는 날의 부삼 스타벅스에서 내려다보는 거리풍경을 관찰해보자

비 내리는 소리, 우산펴는 소리, 낙수물 소리, 간판에 빗물듣는 소리, 주차장쪽에서 자동차시동을 거는 소리, 택시를 부르는 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와이퍼소리, 브레이크소리, 가게 문 여닫는 소리,

비릿한 비냄새, 비젖은 땅 냄새, 배기가스냄새, 흙먼지 냄새, 커피냄새, 헤즐넛냄새,

커피의 쓰고 고소한 맛, 눅눅함, 빗방울의 차가움, 질겅거리는 신발, 옷의 축축함, 무거운 공기....

이렇게 적다보면 내가 그 환경에 놓여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다양한 틈새의 생각들이 대단하지 않고 특별하게 인식하지 않은 감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새로운 세계, 신비의 세계가 될 수 있다.

늘 보던 대상과 현상에 대해 한번쯤 의심해 보자. 그러면 일상의 새로운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감나무 잎에 내리는 햇살은 감나무 잎사귀만하고요

조릿대 잎에 내리는 햇살은 조릿대 잎사귀만하고요

장닭 볏을 만지는 햇살은 장닭 볏만큼 붉고요

염소 수염을 만지는 햇살은 염소 수염만큼 희고요

여치 날개에 닿으면 햇살은 차르륵 소리를 내고요

잉어 꼬리에 닿으면 햇살은 첨버덩 소리를 내고요

거름더미에 뒹구는 햇살은 거름 냄새가 나고요

오줌통에 빠진 햇살은 오줌 냄새가 나고요

겨울에 햇살은 건들건들 놀다 가고요

여름에 햇살은 쌔빠지게 일하다 가고요 -햇살의 분별력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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