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관계학의 공감화법이다
시는 관계학의 공감화법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22.10.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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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74
신병은 시인.

 

인문학의 출발은 ‘사람의 에너지는 사람으로부터 얻는다’ 그리고 ‘사람 안에는 사람이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인문학은 나란히 함께 가는 삶, 사람을 알아가는 일,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세기적인 통섭적 인물이자 창조와 관계학의 대가인 공자도 인仁을 강조하는 측면과 같다. 인仁은 사람 인人과 두 이二를 합쳐서 된 글자로 ‘두 사람이 하나 되는 것’, ‘나 아닌 남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일’이라 했다.

시는 인문학의 중심에서 관계학의 공감화법을 구사한다.

시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풀어내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통섭적 안목으로 바라보며, 우리 삶을 더 가치있게, 의미있게, 인간답게 풀어내는 일이다.

논어에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도 세계를 탐색하고 알아가는 가슴 떨림에 대한 이야기다.

평범한 현상과 일상 속에 안겨있는 새로운 삶의 이해를 만났을 때 가슴이 떨린다.

 

‘꽃은 진 다음까지가 꽃이다’

‘생도 사랑도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다’ (복효근 ‘꽃을 보는 법’ 중)

꽃을 떠올리면 으레 피어서 질 때까지의 꽃을 생각한다. 그런데 복효근 시인은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라고 새롭게 이해했다. 사람의 일생은 그 사람이 죽고 난 다음까지가 그 사람의 생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사후에 오히려 제대로 평가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겉으로는 단순한 의미 같지만 그 말속에 안겨있는 내포적 의미는 넓고 큰 삶에 대한 이해가 안겨 있다.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장석남 ‘번지다’ 중)

장석남 시인의 ‘번지다’란 시의 한 부분이다. 이 시에 기대어 생각해 보면 세상의 이렇게 인과에 의하든 대등에 의하든 알고 보면 번지고 번지는 관계일 것 같다.

아름다운 세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잘 번져야 된다는, 그래서 내가 너가 되고 내가 너가 되어 소통해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런 관계성이 바로 공자의 인仁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는 꽃이고 누군가에게는 잡초다’(신병은)

잡초에 대한 시의 한 구절이다. 우리가 흔히 잡초라 매도하는 들꽃들도 누구에게는 잡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꽃이 된다. 세상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무의미한 존재는 없다. 김춘수시인 또한 그의 꽃에서 이름있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이라며 서로의 이름 불러 주기를 시사한 바가 있다.

이처럼 새로운 삶의 이해는 있는 것에 대한 또 다른 관점, 또 다른 해석이다. 그래서 창조는 조금만 다르게 보려는 곳에서 출발한다. 세상의 모든 시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한 것들이다. 그래서 관점의 문제가 대두된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고 다른 관점만 있다고 말한다.

이쪽을 통해 저쪽을 보거나, 이것을 저것에 대입해 보거나, 확대해서 살펴보거나 하게 된다.

즉 유추類推다.

 

‘마음을 놓다’

가령 우리가 흔히 ‘마음을 놓는다’고 한다. 마음을 어디에 어떻게 놓아야할까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렇다. 힘들고 지친 마음을 놓는다면 느티나무 그늘 아래, 하늬바람 곁에, 거실 소파 위에,너의 품안에, 급기야는 낮잠 속에 풀어둘 수 있겠다.

이런 생각에 이르면 마음을 놓는다는 말이 낯설고 새로워진다. 뻔한 사실에 다시 한 번 딴지를 걸어보거나 궁금해보거나 의심해 보면 그동안 알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보고 만나게 된다.

그것이 시의 출발점이 된다.

우리가 늘 만난 대상과 현상에 마주칠 때 순간 떠오르는 한마디가 시가 된다.

가령 나의 현재의 삶이 고달프고 생각도 굳어 답답할 때 소주나 한잔하려 슈퍼에 들러 꼬챙이에 꿰어져 있는 북어를 보는 순간 나도 저 북어와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 순간 북어가 입을 쩍 벌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걸 것 같다.

 

‘거봐, 너도 북어지 북어지’(최승호 ‘북어’)

이런 첫 생각이 시가 된다.

시를 잘 쓰는 비결은 이런 생각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시를 잘 쓰려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만나는 정경과 순간순간 새롭게 닿아온 느낌과 화두가 시의 풍경이다.

 

한재를 돌아 해양수산청 방향으로 가던 꽃샘바람과 여서동 쌈밥골목을

돌아 나온 매화꽃눈이 충돌한 현장을 본 목격자를 찾습니다 -신병은 <봄, 피다>

여서동 한재 터널 로타리에 걸린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을 보면서 봄의 서정을 단어 두어군데 바꾸어 놓은 시다. ‘흰색 승합차’ 대신에 ‘꽃샘바람’으로 ‘현대 소나타’를 ‘매화꽃눈’으로 바꾸어 봄의 서정을 표현한 시다. 날것 그대로 주운 시다.

가령 ‘안부’를 제목으로 하는 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를 쓰게 된 배경은 원양어선을 타던 옆집 아저씨가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골목길을 올라가며 담장 너머로 고갤 내밀고 이웃을 향해 “그간 별고 없수”라고 안부를 묻는 상황이다. 이 상황을 단어 몇 군데 살짝 바꾸었다.

 

바다를 건너 / 수수밭을 건너온 턱수염 까칠한 바람이 / 담장 위 고갤 밀어 섰다

“그간 별고 없수”

‘수수밭을 돌아온 아저씨’를 ‘턱수염 까칠한 바람’으로 바꾸어 안부의 정경을 이미지선명하게 그렸다. 시는 순간순간에 만나는 삶의 이해다, 그리고 주변에 일어나는 사회상황에 대한 가치관이자 안목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풍경과 정경, 대상과 현상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자.

한 골짜기에 피어있는 양지꽃과 제비꽃이
한 소년을 좋아했습니다
어느날 아침,

 

소년이 양지꽃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 내가 좋아하는 노랑제비꽃‘
양지꽃은 온 종일 섭섭했습니다
노랑제비꽃도 온 종일 섭섭했습니다
- 윤제림 <누가 더 섭섭했을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실수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 상황을 꽃에 기대어 우리 삶의 풍경을 그렸다. 사람의 풍경이 꽃의 풍경에 기대는 순간 새로워진다.

세상의 모든 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일이면서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일이다.

갈릴레오는 ‘인류에게 두 가지 성경이 있는데 자연과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였다.

자연 즉 나무 꽃 풀잎, 바람, 구름, 바다, 하늘 ..... 이 속에 창조주의 뜻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그 속에 담겨있는 그 분의 뜻과 사랑을 살펴보는 일이다.

그래서 자연이다.

 

한산사 은행나무에 까치가 집을 짓는다

허공에 터를 잡고 한올 한 올 바람을 물어 와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리고 용마루까지 올린다

못질 한 번 없이 부리 하나로

한 올 한 올 햇살로 감아 틈새를 엮는다

수십 번을 끼우고 맞추면서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허공을 깁는다

은행나무 마구 흔들리는 바람 부는 날이다

태풍에도 견딜 수 있는 새들의 집,

햇살과 바람으로 집을 짓는다

햇살의 집을 짓는다

바람의 집을 짓는다

부처보다 더 맑은 새들의 명리가

하늘 품안에 바람의 절간을 짓는다 -신병은 <까치집 짓다>

자연을 잘 들여다보면 그곳에 삶의 지혜가 안겨있음을 알게 된다. 까치가 집을 지을 때 바람부는 날을 택한다. 그래서 바람도 까치집의 소중한 자재가 된다.

까치가 지은 햇살의 집, 바람의 집은 아무리 센 태풍이 불어도 부서지지 않고 단단한 집이 된다. 본드 같은 접착제나 묶을 줄 하나 없이 저렇듯 완벽한 집을 지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인간인 우리로서는 경이롭기 까지 한 것이다.

 

고향에서 감자 한 상자를 보내왔다

감자꽃에 앉았던 땡볕도 테이프에 끈적끈적 묻어왔다

호미에 딸려 나온 하지의 낮달과 밭고랑을 지나던 바람도 따라왔다

끼니마다 밥상에 고향의 안부가 올라왔다

어느날 상자 안을 들여다 보니 몇 개 남은 감자들이 허공을 향해 하얀 발을 뻗고 있었다

먼저 나가려고 발들이 서로 엉켰다

흙이 그리운 감자들을 화분에 묻어주었다 -김우진 <보랏빛 그 꽃잎 사이>

고향에서 보내온 감자 한 상자를 잘 살펴보면 고향의 땡볕도 묻혀왔고, 하지의 낮달과 밭고랑 지나던 바람도 따라왔을 것 같다. 끼니마다 고향생각이 났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하나의 이루어짐 속에는 수많은 배려가 있었고, 또 세상은 제 혼자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식빵처럼 부풀어 오른 노을처럼

그의 저녁이 수수러지는 치마를 한손으로 덮는다

아, 무사해서 다행이야 천진하게 웃는다

이때다 싶게 숨겨진 기척들이 마구 부풀어 오른다

마침내 기지개를 켜는 어둠에 기댄 꽃들의 시간이다

달의 꽃

별의 꽃

그의 꽃이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핀다

캄캄했던 꽃들이 선명하다

착한 그의 얼굴에도 꽃들이 하나 둘 날아든다

꽃잎의 무게로 그리움을 편다

모르는 사이에 꽃이 피고 지듯

모르는 사이에 그가 열리고 닫힌다

수만 송이 그리움 숨기며 꽃으로 부풀어 오른다

세상의 그리운 얼굴들은

아름답게 멀어져간 그 순간에 꽃이 핀다

그가 꽃무늬 진다 -신병은 <그의 얼굴>

인문학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풀어내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고민하면서 우리 삶을 더 가치있게, 아름답게, 의미있게, 인간답게 풀어내는 삶의 문제다.

시 창작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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