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몸짓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지 않을까”
“작은 몸짓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지 않을까”
  • 강성훈
  • 승인 2022.10.04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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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 개관 1돌 맞은 에그갤러리 박성태 관장을 만나
국내 첫 한센인 다룬 사진전으로 인연...예술공동체로 자리매김
“도성마을, 평화와 인권의 성지로 그 정체성을 찾아갔으면...”
지역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에그갤러리의 박성태 관장.
지역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에그갤러리의 박성태 관장.

 

코로나19의 유행으로 모든 일상이 멈춰버린 듯하던 지난해 가을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더디기만 하던 율촌 도성마을에 작은 문화예술공간이 들어섰다.

수십여년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투명마을’로 까지 불리던 여수 한센인정착촌 도성마을에 처음으로 둥지를 튼 ‘에그갤러리’다.

에그갤러리는 첫 주인장으로 2014년 국내 최초로 도성마을을 통해 한센인의 삶을 조명한 ‘우리안의 한센인-100년만의 외출’을 공개하면서 도성마을과 인연을 맺은 박성태 사진작가를 맞았다.

주민들의 도움으로 도성마을에 둥지를 튼 ‘에그갤러리’는 지난 1년여간 지역 작가들의 특별전은 물론 미술인과 음악인들이 함께하는 문화축제, 여순사건을 주제로 한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쉼없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지난달 개관 첫 돌을 맞았다.

개관 당시 일년도 되지 않아 문을 닫을 것이라던 주위의 우려스런 전망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이제는 다양한 장르의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작품을 선보이는 갤러리 공간이자 연주공간으로 활용되는가 하면 연주가 펼쳐지는 동안 마을 주민들이 손수 생산한 특산품 판매장이 열리는 예술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당초 접근성이 우려됐지만, 오히려 인근에 위치한 근대문화자원인 애양교회와 역사박물관,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 애양병원 데크다리 등과 연계되면서 갤러리를 찾는 관람객들의 힐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에그갤러리’ 개관 1주년을 맞아 특별전을 기획한 박성태 관장을 만나 그간의 소회와 갤러리의 내일에 대해 들었다.

 

 

- 1주년을 맞아 색다른 기념전시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간략히 소개해 달라.

지난해 9월 15일 개관전을 했는데 벌써 1년이 돼 개관 1주년 초대전을 갖게 됐습니다. 초대작가는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듯이 대한민국 3대 구상조각가 중 한 명인 천재조각가 고 류인의 아내 이인혜 작가입니다.

이 작가는 지난 5월 여수 횡간도에서 이기정 목사를 만나 인생박물관 건립 계획을 듣고 주민 70명을 그려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요. 기증을 목적으로 작업한 작품을 에그갤러리에서 ‘빗간이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9월 17일부터 10월 8일까지 하게 됐습니다.

특히 전시 첫날에는 한센인정착촌 도성마을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장터를 마련해 일반인들과 소통하는 장을 마련해 성황을 이뤘습니다.

 

- 에그갤러리 1년의 성과를 간략히 정리한다면?

2014년 도성마을을 알리기 위해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하면서 첫 인연을 맺으면서 당시 도성교회 송찬석 전도사님이 10년간 우리 마을을 위해 함께 해 줄 수 있냐고 물어 “그러겠다”고 한 약속이 계기가 됐습니다. 10년간의 약속이 벌써 9년이 된 셈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에그갤러리는 첫째도 주민, 둘째도 주민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민과 일반인이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 속에서 이끌어 왔는데요, 1년 동안 약 5천여 명의 방문객이 다녀 간 게 성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민들이 갤러리에 나와 함께 전시를 관람하고, 음악을 듣고, 요리를 만들기도 하고, 자신들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쌓이다 보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성마을은 지금도 여전히 투명마을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수국가산단과 포스코제철에서 매일 뿜어져 나오는 각종 대기 오염에 노출되어 있고,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에 무방비로 노출돼 사람이 살 수 없는 마을입니다.

 

- 모든 전시에 쏟은 수고의 경중을 따진다는 의미가 없는 일일 것 같다. 그래도 그동안 가장 인상깊었던 전시는 무엇이었는가?

박동화 작가의 ‘도성영가’전을 꼽고 싶은데요, 아마도 국내 미술가 중 처음으로 한센인정착촌에 주목해 회화로 표현해 개인전을 한 것입니다. 한센인 시인으로 알려진 한하운의 ‘영가’에서 주제를 따 왔는데요, ‘꽃같이 아름답고 꽃같이 서러워라’는 그 시어의 느낌을 회화적으로 잘 풀어 주민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전시를 본 마을 주민 한 사람은 “보잘 것 없고, 미천해 보이는 것을 아름답게 표현해 우리가 공감할 수 있게 해줘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를 ‘도성미학’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 이색 전시회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해야 할텐데 에그갤러리는 접근성에서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실제 상황은 어떤가?

처음 갤러리 문을 열 때는 1년을 버티면 성공이다고 할 정도로 반신반의했는데 착각이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시민들이 열정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시고, 자발적으로 홍보도 해주셔서 전시 때마다 성황을 이뤘습니다.

오히려 방문객이 많아 주차장 마련이 가장 큰 고민이었는데 주민 한 분이 주차장 공간을 임대해 주고, 애양병원에서는 운동장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셔서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일부러 큰 맘을 먹어야 올 수 있는 곳이지만 다들 불편해 하지 않으시고 찾아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에그갤러리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리고,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만들어 갔다고 생각합니다.

 

- 왜 도성마을이었는가?

애양병원 제4대 원장이 스텐리 토플 원장입니다. 토플 원장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한글 선생님이 지어주신 한국 이름이 ‘도성래’였습니다. 거룩한 사람이 왔다는 뜻을 담고 있는 데요, 여기에서 도성이라는 마을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국내 최초 한센인치료병원인 애양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우들이 1976년 5월8일 도성마을 입주식을 갖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는 고령의 한센인회복자 60여 명과 일반인이 140여 명 등 2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 관장으로서 에그갤러리만의 색깔을 이야기한다면?

에그갤러리는 특수한 장소에 있는 대안공간입니다. 개관 1주년 오프닝 행사에서도 밝혔지만 첫째 주민과 함께 갤러리, 둘째 지역 언론과 함께 하는 갤러리, 셋째 작가를 키우는 갤러리, 넷째 컬렉터가 찾는 갤러리, 다섯째 자발적 후원으로 운영하는 갤러리입니다.

 

- 언론인으로서 사진작가로서 길을 걸어왔고, 지금은 미술관장으로 서 있다면? 각각의 이야기가 다를 것 같은데...

언론인만 제 의지로 시작한 일이었고, 사진작가와 갤러리 관장은 도성마을을 알게되면서 우연하게 된 것입니다. 2023년은 도성마을을 다닌 지 10년이 되는 해인데요, 그동안 사진 작업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도성마을 10년의 기록-말이 없는 노래’라는 사진집을 발간할 계획입니다.

사진작업은 갤러리 문을 연 뒤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갤러리 관장은 아무래도 다른 작가들을 무대에 세우는 감독같은 일을 하는 것인데, 이 곳에서 관장은 주민과의 소통 능력이 가장 우선시 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행이 주민들이 저를 믿어주시고 따뜻하게 맞아 주셔서 의미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에그갤러리 관장이자, 도성마을 주민으로 마을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궁금하다. 최근 도성마을은 다양한 현안들로 이슈의 중심에 자주 등장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양계,양돈을 주업으로 생활했던 1세대 한센인들이 고령으로 노동 능력을 상실하고 한센인 2세,3세들이 이제 마을을 이끌어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공장 유치도 해 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성사된 것은 없는 걸로 압니다. 또한 각종 환경 오염에 노출되어 있지만 이주도 않되고, 그렇다고 정주여건을 개선시켜 주는 것도 아니고, 막막한 상태입니다.

여수시와 전라남도가 그나마 경관개선사업이라고 해서 일부 폐축사 슬레이트 제거 작업을 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환경 개선이 쉽게 이뤄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도성마을은 전국의 한센인정착촌 중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개발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장소입니다.

근대문화유산만 해도 애양교회와 역사박물관(구 애양병원)이 있고, 아시아 최대 한센기념관과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있습니다. 따라서 도성마을은 평화와 인권의 성지로 그 정체성을 가져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최근에는 분뇨 배출 사건이 불거졌다. 원인이 무엇이라 보는가? 해결책을 제안한다면?

마을 원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축사는 양계장 한 곳과 양돈장 한 곳 등 두 곳만 남아 있고, 외지인이 들어 와 기업형으로 축사를 운영하면서 폐수처리장 용량을 초과하기도 하고, 몰래 버리기도 하고 이런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행정당국의 철저한 감시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까 끊임없이 민원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단순히 도성마을 것이 아니고, 여수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감시 기능을 강화해서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도성마을의 환경개선 사업이 본격 시작을 앞두고 있다, 방향성은 제안한다면?

폐수 문제는 아주 단순합니다. 행정당국과 사법당국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하다못해 적외선 CCTV만 요소요소에 설치해도 충분히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여수국가산단과의 문제는 예년에 비해 마을에 관심을 많이 갖고 지원하고 있지만 시혜성 선물보다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책이 강구되야 할 것 같습니다.

 

 

- 에그갤러리의 내일을 이야기 한다면?

저희는 5년 뒤 ‘도성 도큐멘타’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독일 카셀에서 열리는 가장 권위있는 미술축제인 ‘카셀 도큐멘타’와 같은 행사를 도성마을에서 개최하는 게 꿈입니다. 도성마을은 인간의 문제를 놓고 인류가 고민하고 해법을 제시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다양한 시각예술로 표현하고 담론을 정리해 내는 일을 세계의 작가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 끝으로 에그갤러리와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지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에그갤러리는 중심부와 주변부를 잇는 일종의 ‘다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온전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더 많은 다리가 필요합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모두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 즉 공존하기 위한 고민을 할 때 우리 사회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예술은 이런 점에서 가장 최전선에 설 수 있는 분야입니다. 기꺼이 다리가 되고자 하는 자세와 태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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