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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보는 것은 어떻게 다르게 보는 것이다
새롭게 보는 것은 어떻게 다르게 보는 것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22.05.20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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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줍는 법, 시 먹는 법 71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올 봄에는

저 새 같은 놈

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봄비가 내리고

먼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꽃 같은 놈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 정호승 <벗에게 부탁함>

 

욕의 새로운 미학이 안겨있는 시다.

같은 값이면 이런 욕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새가 되고 나무가 되고 봄비가 되고 꽃이 될 것 같다.

창작은 있는 것에서 이전에는 보고 듣지 못한 새로운 풍경을 발견해내는 일이다.

그런데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고 알고 보면 모두가 온고지신이고 법고창신이다. 그래서 새롭게 본다는 것은 다르게 본다는 의미고 다름의 틈새에 웅크려 있는 낯선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창조다.

즉 일상의 재발견이어야 한다.

사물의 속성에 대한 탐색이면서 이미 예고된 의미와 포즈, 이미지를 피해 대상과 현상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일이다.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발견이다.

이것이 행복한 소통의 커뮤니데아다.

다르게 보는 일이 시적상상력을 확장시켜가는 방법이다.

지식인이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잘 엮어내는 사람’ 탁소노미라면, 창조인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남들과는 전혀 다를 방식으로 엮어내는 사람’ 즉 폭소노미다.

창조인인 폭소모미에 기대면 세상은 통하지 못할 것이 없다.

폭소노미는 원숭이 엉덩이가 기차가 될 수 있다. 즉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달아, 단 것은 설탕, 설탕은 희다, 흰것츤 토끼, 토끼는 빠르다, 빠른 것은 기차...이렇게 보면 ‘원숭이 엉덩이는 기차다’라는 유추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시적 상상력의 확장원리는 관점, 유추, 연상, 언어의 이종교류 등의 창작원리에 닿아있다.

이 원리가 바로 시창작원리의 전부라 해도 과연이 아니다. 이 네가지 원리도 서로 독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유기적인 관계임을 알게 된다.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한평생을 같이 한 부부지만 알고보면 모르는 사이로 만나서 차츰 알아가며 살다, 결국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관계라는 다른 의미를 발견해낸 유추이며 폭소노미다. 그래서 ‘우린 너무 먼데서 살았습니다’라는 의미에 닿을 수가 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려는 안목이다.

함민복 시인의 <만찬>도 상다리가 부러지게 진수성찬을 차려놓은 저녁상이 아니라, 혼자사는 것이 안쓰러워 강건너온 김치 한사발로 저녁은 먹는 조촐한 저녁상이지만, 진정한 만찬은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임을 재발견하고 있다.

복효근 시인의 <버팀목>도 나무를 심어 옆에 세워둔 지주목을 보면서 그 이전의 의미와는 전혀다는 ‘산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어어 섰습니다’라고 새롭게 읽어낸다. 이 시를 만나면 알고보면 살아있는 우리 모두가 기대지 않은 삶이 없고, 돌아가신 부모님에 기대어 살고, 돌아가신 스승님께 기대어 살고, 공자에 기대어 살고 김수영시인에게 기대어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수태고지>는 가브리엘천사가 성모마리아에게 예수회임을 알리는 상황을 그린 그림이지만, 오른팔이 왼팔보다 길게 그려져 있다며 300년 동안 원근법이 잘못되었다고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 논란을 잠재운 다빈치의 안목이 ‘누가 그림을 정면에서만 보라고 했나’는 관점에서 그림은 정면에서 봐야 한다는 문화적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그림을 그릴 때 ‘소실점’이란 게 있다, 그것은 ‘평행한 두 직선이 멀리 가서 한 점에서 만난 것처럼 보이는 점’ 즉 무한원점이라고도 한다.

이 소실점이 각자의 주관적인 안목에서 하나의 객관적인 입장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공간상의 객관적 기준 즉 1인칭 시점을 3인칭 시점으로 만들어 폭넓은 ‘공감대’를 만들어준다

마찬가지로 시도 나름의 소실점을 갖는다.

그 소실점이 바로 관점과 유추, 연상과 언어의 이종교류에 의해 가능해진다. 이 네가지 원리에 의해 시적 상상력은 무한대로 확장되기 마련이다.

이 중에서 ‘관점’에 의하면 세상을 단 한순간도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나팔꽃이 피었습니다’ 이 단조로운 문장, 나팔꽃이 핀 현상도 시시각각, 장소와 시간, 누가 보느냐에 따라, 또한 누구와 함께 보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의미는 다 다르기 마련이다.

관점이야말로 시적상상력을 확장해가는 비법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의 유추는 숨겨져 있는 닮음을 찾아 소통하는 일이다. 서로 관계없는 것들, 서로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떨어지다, 배우, 먼지’라는 3개의 제시어를 보고 ‘별’이라는 연결어를 찾는 일이다. 이중에서 먼지는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대기중의 먼지가 있어 별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는 원리에 닿아있다.

 

창가에 놓인 움미나리 추스르고 일어선다

목을 버린지 사흘, 다시 목을 꽂는다피맺힌 자리 푸릇푸릇 피가 돈다

한 움큼의 뿌리가 거뜬히 중심을 들어 올린다한 잎의 귀를 열고 두근대는 움미나리

사발에 발을 묻고 빠끔, 귀가 돋는다호기 한사발 파랗게 돋는다

쪽쪽 물 마시는 소리 사발이 마르기 전 실컷 물배를 채우는 미나리는 물소리를 따라 발을 뻗는 가장 목마른 식물에구, 요 귀여운 것, 지나가던 봄햇살이 미나리 귀를 살짝 잡아당긴다어린 것들의 목이 쭈욱 늘어난다

-마경덕 <미나리는 숨겨둔 목이 많다>

 

누가나 한번쯤 경험한 풍경이다. 미나리 움트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누구나 한번쯤 어릴 때 동네 어른들이 귀엽다며 귀를 당겼을 것이다. 이 두가지 경험의 관계성을 연결하여 쓰여진 시다.

그 두가지 경험은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관련 없어 보이지만 이렇게 연결하고 보니 공감의 폭이 큰 창의적 유추가 된다.유추는 ‘하나를 듣고 열을 안다’는 원리에 기대어 있어 기존의 것에서 새로운 것은 인지해 가는 힘이 된다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재론 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

- 반칠환 <봄>

 

이 시는 어떤가. 겨울 지나 온 생명체가 파릇하게 태동하는 봄의 풍경을 이렇게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그것은 요리사가 요리를 하기위해 냉장고 신선실에서 갓 꺼낸 싱싱한 재료에 유추하고 있기 때문이다.

봄날의 아릿한 아지랑이 조차 놓치치 않고 기대어 두었다.

이렇듯 우리가 태어나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것들이 유추의 소중한 자료가 된다. 유추에 사용되는 경험을 경험해 보지 못한 유추는 소통의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시적 유추는 일상의 재발견이어야 한다.

인생도 그렇지만 경험은 생각의 나비효과를 일으켜 상상을 확장시켜주기 때문이다.

모근 경험들이 서로 상관없는 것 같아보여도 다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탁소노미taxnomy를 뛰어넘어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남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는 폭소노미forksonomy가 시적상상력을 확장해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몽타주motage 기법이고 ‘낯설게 하기’로 독자들의 시적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가 된다.

몽타주motage는 따로 독립되어 있는 대상과 현상을 편집을 통해 새로운 장면이나 내용을 만드는 편집기법으로 독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장치다.

예를 들면 얼굴은 똑 같은데 그 장면 뒤에 무엇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얼굴의 이미지가 달라진다.

사람의 배경으로 ‘수프’두면 그 사람은 배고프게 보이고, 요염한 여자를 배경으로 하면 음탕한 사람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창조적 관찰자는 다양한 관점의 의미와 다양한 경험을 동원하여 유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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