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묵직한 감동
오랜만에 만난 묵직한 감동
  • 남해안신문
  • 승인 2022.01.14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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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 여수를 사랑한 요절한 천재 조작가 류인(1956~1999)전

 

류인과 이인혜
류인과 이인혜

 

여수와 류경채, 여수와 류인 그리고 류인과 이인혜의 관계성을 풀어가는 건강한 출발점이면서, 여수와 류인이라는 새로운 공간 설정을 위한 밑자리이자 그가 여수의 팔로우가 될 수 있을거라는 기분 좋은 예감의 자리

# 프롤로그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여수시민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부렸다.

한 점이라도 더 보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류인의 기획전 개막식에서 부인인 이인혜작가의 인사말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여수시민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는 말이 참 포근하게 다가왔다.

그 말 속에는 여수시민이 행복하면 좋겠다는 속내가 보여 참 선한 에너지를 직감 할 수 있었다.

이인혜 작가는 예술의 섬 장도 아뜰리에 단기입주 작가로서 작년부터 여수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66인의 여수시민 초상화에 여순사건 해원(解冤)의 마음을 담은 ‘애도 1948, 치유와 해원의 시작, 이인혜 展‘을 장도 전시실에서 개최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개막식이 끝나고 이인혜작가로부터 작품창제에 얽힌 에피소드를 비롯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고 이번 기획전의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입허
입허

 

포즈가 생각이다.

공간이 생각이다.

이 말은 오래 전 연암 박지원이 그의 <열하일기>에서 언급했던 말이다.

인간의 사고를 드러내는 것은 언어라는 기호이지만, 말하지 않고 말하는 법이 있다면 포즈다.

그리지 않고 그리는 법, 보이지 않고 보이게 하는 화법이다.

말이 필요 없는 정직한 화법.

류인작가의 인간포즈는 인간의 어떤 정황과 그 내면을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도구가 된다.

그래서 그의 아우라는 그의 일생과 천재성과 안목이 서로 얽혀져 짜인 교묘한 미로와 같다. 작품 속에 빠져들면 들수록 무한히 깊고 넓은 ‘류인’의 중저음의 진동으로 빠져들게 된다.

왜 그런지 그의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문득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 오브랩 되어 왔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류인은 10여년의 짧은 기간에 7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70여점의 작품은 그의 내밀한 혼과 정신, 한 치 빈틈없이 작업에 몰입한 그의 분신이다.

류인의 첫 메타조형을 예고한 작품은 <파란Ⅰ>이다, 사각의 입방체를 깨고 일어서는 형상의 파란破卵은 글자 그대로 ‘알을 깨고 나온다’는 뜻으로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조형적 안목을 갖게 되는 출발점이다.

입산Ⅱ

 

그 뒤를 이은 ‘입산’시리즈는 압축과 왜곡된 인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이때 관절이 선명한 마디 굵은 손의 조형을 통해 격렬한 삶의 감정을 드러낸다. 물론 이 때도 입방체를 통해 억압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뛰어넘는 조형어법을 마련한다. 그이 인체는 표현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수단으로 자리함으로써 인체를 조형적으로 물질화하여 그의 의식과 에너지를 분출한다.

류인의 인체포즈의 특징은 ‘카리스마적 남성상’에 있다.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왜소하고 마른 몸으로 상체를 약간 뒤로 젖힌 채 두 발을 벌리어 선 자존, 왜소함과 다리 벌려 선 당당함은 그 어떤 아픔과 고통도 이겨내려는 강한정신의 함수를 상징하는 류인의 조형어법으로 자리하게 된다.

아,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이 있구나.

독자는 그 함수관계에서 일종의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 뒤 급행열차(시대의 변)에 이르러 인간생존의 위협을 알리는 충격적인 언어로 폭력적이고 억압된 사회 속의 인간군상을 짚어낸다.

 

# 과감한 생략과 건강한 왜곡

하산
하산

 

그의 인간성찰은 인체의 과감한 생략과 왜곡으로 드러난다.

그의 왜곡과 생략은 작가로서는 하나의 운명으로 최소한의 조형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고 싶은 구도 혹은, 작품을 대상물의 표현으로 보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정신을 담는 상관물로 보고자 한다. 오랜 길들임을 벗어나기 위한 자연스런 길 찾기. 구도찾기로써의 생략이자 왜곡이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고, 흩으려 보고 싶고, 질서에서 일탈하고 싶고, 벗어던지고 싶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고 싶고, 질주하고 싶은 몸짓에 다름아니다.

그것은 삶의 본질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고, 생략으로 더 넓고 깊은 담론을 확장시키려는 몸짓이다.

즉 인체의 왜곡과 생략으로 빚어내는 울림이고 통섭의 장이다.

인체의 한 부분을 과감하게 비웠다고 해서 사라진 어깨며 몸통이며 다리가 보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남겨진 부분과 사라진 부분이 서로 부딪혀 더 큰 울림을 주는 소통의 자리, 더 깊고 넓은 대화의 장을 열어주려는 조형적 장치가 된다.

이것이 일반적 관점에서 벗어난 류인의 메타언어방식이다.

여기에서 그의 인문학적 철학이 보이는데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곧 ‘위기’라는 말이다. 인간상실, 기계화된 인간의 문명, 맹목적인 폭주의 결과로서의 인간적 위기상황을 상징한다.오늘날의 상황을 미리 예견한 것 같은 예지력에 섬뜩해지기도 한다.

 

# 자존 그리고 들여다봄

급행열차 시대의 변
급행열차 시대의 변

 

‘본다’는 의미는 느낌으로 다가온 것, 그 중에서도 나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 진정으로 본 것이 된다. 그는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와 ‘어떻게 보여 질 것인가’를 사이에 두고 고민한다.

한 작품을 위해 오랫동안의 이렇게도 저렇게도 수없는 데생을 통해 인체의 차용법을 고민한다. 그것은 인체의 부분압축, 의도적 훼손, 상반식 절단, 인체조각을 흙 위에 던져놓는 등 다양한 실험으로 조형법을 확장시켰다.

그 고민의 끝은 결국 자신을 직시하는 건강한 눈이다.

그것은 그때부터 비로소 자신과 대면하고 자신을 당당히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쪽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는 작가 류인, 여기에서 그의 당당한 ‘자존’이 오브랩된다.

‘흙을 만지면서 인간의 본성을 생각했고, 내가 살아있는 기준을 마련했다. 거듭되는 오판 속에 지켜야할 자존심을 흙속에 묻어놓았다.’

흙은 만물의 본음本音으로써 시작이면서 끝이라는 동서양의 4원소론을 들추지 않더라도 훼손되지 않은 인간 그 자체로서의 자존을 포즈로 하고 있다.

흙은 처음이면서 끝, ‘돌아오다’와 ‘돌아가다’의 미학이자 때와 순환의 미학이다.

흙과 인체의 만남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울리게 함으로써 삶과 자연, 본질과 현상의 관계성을 제시하려는 작가의도를 만나게 된다.

이것은 나와 작가, 작가와 대상, 대상과 내가 서로를 향해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조용한 열림의 내통이다, 결국 작가의도에 끌려 생을 짊어지고 끌고 가는 상처와 상처의 행간을 들여다보는 내내 상식 밖의 세상을 기웃댈 수밖에 없다.

 

# 에필로그

하나비
하나비

 

그의 작품이 무한한 생명을 지닌다는 것은 공간과 시간에 따라 새롭게 태어나는 변용變容에 있다.

공간에 따라 상대적으로 작품의 외적 크기에 상관없이 작품이주는 파장과 울림이 확장되는 그의 작품성에 압도된다.

묵직한 기류가 공간의 기류를 타고 전해오는 중저음의 진동이 보는 이의 마음 구석구석을 건드리고 남을 듯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관객과의 만남이 운명적으로 변용되는 부활은 그의 작품이 갖는 진정한 생명일 것이다.

이번 전시도 여수라는 공간과 여수의 미술사적 시간성에 의해 또 다른 특별한 의미로 태어나고 있다. 그것은 ‘여수와 류인’이라는 새로운 공간 설정을 위한 밑자리이면서, ‘여수가 그의’ 혹은 ‘그가 여수의’ 팔로우가 될 수 있을까를 진단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류인은 살아있을 때 아버지의 고향 여수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의 부인 류인혜작가가 여수에 살고 싶어 여수와 특별한 인연을 확장해가고 있다.

특히 유작 70여점을 여수에 기증의사를 밝히고 있어 여수문화예술의 새로운 밑자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는 서양화 1세대의 한 축을 다시 자리매김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여수와 류경채,

그리고 여수와 류인, 여수와 이인혜의 관계성을 풀어가는 건강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신병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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