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근육을 키워라
상상력의 근육을 키워라
  • 남해안신문
  • 승인 2021.10.22 1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68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이선희의 <알 수없어요>는 조선시대 황진이의 7언율시 <我不可知>를 개사한 노래다.

簫蓼月夜思何事소요월야사하사 소슬한 달밤이면 무슨 생각 하오신지

寢宵轉轉夢似樣침소전전몽사양 뒤척이는 잠자리는 꿈인 듯 생시인 듯

問君有時錄妾言문군유시녹망언 님이시여 때로는 제가 드린 말도 적어보시는지

此世緣分果信良차세연분과신랑 이승에서 맺은 연분 진정 믿어도 좋을지요

悠悠憶君疑未盡 유유억군의미진 멀리 계신 님 생각, 끝없어도 모자란 듯

日日念我幾許量 일일염아기허량 하루하루 이 몸을 얼마나 그리워는 하시나요

忙中要顧煩惑喜 망중요고번혹희 바쁜 중 돌이켜 생각함이라 괴로움일까 즐거움일까

喧喧如雀情如常 훤훤여작정여상 참새처럼 떠들어도 제게 향하신 정은 여전하온지요

- 황진이 <알 수 없어요(我不可知)>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그대 생각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마큼 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내가 많이 어여쁜가요 진정 날 사랑하나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주세요

-이선희 <알 수 없어요>

 

황진이의 시는 소확행의 질문에 대한 이야기다.

그대는 오늘처럼 소슬한 달밤이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가끔은 나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지를 묻는다.

이렇게 물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시적 상상력은 질문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질문 하나가 시의 승패를 좌우한다.

발문의 힘이다. 시를 쓰는 일은 대상과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그래서 대상과 인터뷰를 하라고 권한다.

나무와 풀과 바람이 꽃이 내게 전해주는 말귀를 알아듣고 생각을 읽을 수 있을 때 시적 상상력이 시작된다.

시는 질문에서 시작되어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을 답을 슬쩍 제시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궁금해 할 수 있는 걸 물어야 하고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답해줄 수 있어야 한다.

시 쓰기는 끊임없는 자문자답의 과정이다.

질문 하나면 시가 한편이 된다.

배움도 질문에서 시작된다. 수업은 동기유발을 위한 발문 하나가 수업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 가는 이유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고, 시를 쓰는 일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세상을 사는 일은 모르는 것들을 하나 둘 알아가는 일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인 ‘수작부리다’는 무슨 의미일까?

수작(酬酌)은 본래 술잔을 서로 주고받는다는 뜻인데,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음모가 싹트고 비리가 생기면서 나쁜 뜻으로 변했다. 즉, 남의 말이나 행동을 업신여기거나 비하하기 위해 쓰는 말로 굳어진 것이라 한다.

그 첫 질문에서 시작하여 그럼 꽃들의 수작은 어떤 모습일까로 상상력이 확장되는 것이다.

‘사이가 좋다’란 말의 뜻은 어떤 의미일까?

어느 때에서 다른 한때까지의 동안, 어떤 일에 들이는 시간적 여유나 겨를, 한 곳에서 다른 곳까지의 공간을 뜻하지만, ‘사이’라는 단어에는 소통의 의미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이가 좋은 사이일까? 또 얼마큼의 거리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틈, 감정을 나눈다, 정답다’란 의미로 확장되면서 꽃들의 사이, 나무들의 사이. 바람과 나무의 사이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생각을 확장하면 의견, 느낌, 의문, 기억, 관심, 상상, 비유, 대조, 분류, 구분, 유추, 연상, 회상, 감상, 가정, 전제 등으로 확장된다.

 

씨감자의 눈빛이 푸르다

사람의 눈을 많이 닮았다

동그라니 동심을 닮은 맑고 초롱한 눈매다

고요한 명상도 있다

쌍꺼풀이 있는가 하면

오직 봄을 열어가는 집념도 있다

햇살의 구김도 펴고

구름의 알리바이를 기웃거리고

바람의 화법을 눈여겨 본다

날마다 물소리 바람소리를 산란한다

마음만 먹으면 눈 아닌 곳이 없다

스스로를 정직하게 여는,

세상을 정독하는 오목한 눈이다

오랜 때를 기다렸던 새싹들의 부화

오늘이 줄탁이다

찬란의 순간, 눈빛들이 조잘댄다 - 신병은 <눈이 생기다>

위시도 ‘눈이 생기다’란 의미는 뭘까 하는 질문에서 쓰여졌다.

눈은 물론 사물의 좋고 나쁨 또는 진위나 가치를 분별하는 능력으로 안목, 통찰력, 예지력과 동의어가 되기도 하는 이 말의 덮게 살짝 들춰보면 ‘씨감자의 눈빛이 푸르다’ ‘사람의 눈을 많이 닮았다’ ‘동그라니 동심을 닮은 맑고 초롱한 눈매다’란 말로 번져온다. 그러면서 고요한 명상의 눈, 쌍꺼풀이 있는가 하면, 오직 봄을 열어가는 집념도 있다. 그래서 햇살의 구김도 펴고 구름의 알리바이를 기웃거리고 바람의 화법을 눈여겨본다.

엃게 모든 시는 대상에 대한 질문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눈은 또 세계를 이해하는 관찰의 힘을 뜻한다

눈이 좋아야 한다.

질 좋은 상상력은 주목이 아닌 관찰에서 나온다.

주목이 남이 보라거나 봐야하는 데를 보는 것, 주목의 끝은 남이 보라는 대상을 이해하고 분석해서 그 지점에 이르는 것으로 한눈을 팔면 안 된다.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고 남이 가리키는 곳에 도달할 뿐이다.

학교 공부는 주목하기의 경쟁이었다. 그에 비해 관찰은 내가 보고 싶은 데를 보는 것, 보고 싶은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기웃거릴 때 자신도 모르게 몰입한다.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아는 길은 관찰뿐이다.

시 쓰기는 관찰한 내용을 묘사해 보는 부단한 연습을 요구한다.

길들지 않은 자신이 날것을 글로 써보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보고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자세히 봐야 한다. 그래야 전체를 이해하게 되고 묘사도 잘 할 수 있다, 남의 삶을 잘 들여다보면 서사에 능통하게 된다.

낯설게 보면 직관이, 헤아려보면 감성이, 자기 자신을 보면 성찰이 된다고 한다.

 

별일 없는 게지

간 밤 꿈에 너가 보여 혹시나 해서 전화했어

이제 우리도 곧 칠순이잖아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켜 봐

거봐,

허공에도 봄은 오잖아 -신병은 <아름다운 파문波紋>

칠순(七旬)은 공자언어로 종심(從心)이다.

종심은 마음에 따라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는 그 나이면 법도에 어긋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칠순이 되면 삶과 죽음도 초월할 수 있는 나이다.

봄이 되어 친구 안부를 묻는 모습, 그 나이쯤이면 내년 봄을 기약할 수 없는 나이에 해마다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기분을 이렇게 가져보는 것이다.

‘허공에도 봄은 오잖아’ 이 한마디의 자답 속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가 안겨있는 것이다.

질문을 하기 위해 적당한 거리에서 여기저기 마구 기웃거려 볼일이다.

질문은 마음이 통할 때 가능한 소통법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공감법이다.

공감은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나온다.

인간은 감정이입과 역지사지의 공감회로를 갖고 태어난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역지사지의 능력이 소통의 필수조건이다.

공감은 동감의 원리로 시의 완성은 독자의 공감으로 이루어진다.

공감능력은 곧 창의력이기도 하다.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사람에게 관심과 애정이 없는 사람은 공감거리를 만들지 못한다.

공감능력은 소통능력이다.

공감능력을 키워라, 공감화법을 익혀라,

시는 독자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어야 한다.

 

이리오세요

여기한번 들여다봐요

꽃의 실핏줄 좀 봐요

남산제비꽃이에요

큰괭이밥이에요

산자고에요

대낮에도 별이 보이죠

개별꽃이에요

우산 쓴 삿갓나물이에요

여기도 좀 보세요

바람처럼 피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봄 한철 꿩의바람꽃이에요

저 얼레지는 까질대로 까져

보랏빛 속을 내보이며 유혹해요

다소곳한 흰제비꽃도 피었어요

너 누구냐고

뭐라 한마디 해 보라고 조용히 다그쳐요

꽃 꽃 꽃이에요

모든 꽃은 햇살의 은유에요

햇살의 유혹이에요

꽃말 들려요

물오른 연두빛 말들

우리 모두 다시 봄이에요 -신병은 <봄꽃을 만나다>

나무와 풀, 꽃과 바람이 건네는 말을 알아듣고 또 말을 건네는 소통의 힘을 믿는다.

시를 쓰다보면 살아오면서 내가 외면해 왔던 감정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게 된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감정을 표현하고 감정을 구체적으로 써봐야 한다.

이것이 상상력의 근육을 단련하는 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