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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상상력과 디자인된 말의 힘
시적 상상력과 디자인된 말의 힘
  • 남해안신문
  • 승인 2021.08.0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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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66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시적 상상력은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사람을 알아갈 것인가를 살핀다.

인문학으로서의 시창작이다.

인문학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풀어내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고민하면서 우리 삶을 더 가치있게, 아름답게, 의미있게, 인간답게 풀어내는 화법의 문제다.

인문학은 내가 나답게 잘 살기 위해서, 인간관계, 스스로 행복한 삶을 위해서다.

사람의 에너지는 사람으로부터 얻는다.

시적 상상력은 인간에서 출발하여 인간을 향해 간다

사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일이고, 관계를 좌우하는 요소가 말, 즉 화법이다.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꽃>

 

아무런 관계가 없던 것들이 서로 만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에 서로의 존재가 인지된다.

관계한다는 의미는 너와 나,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로서의 관계, 서로의 빛깔과 향기를 풀어낸다는 의미다.

꽃을 꽃이라 할 때, 너를 너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너라고 할 때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서로에게 의미있는 진정한 관계가 맺어진다.

우리 삶은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는 여정이다.

결국 사람이다. 사람 안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시적 상상력의 출발점이 된다.

시는 그 출발점이 ‘사람에 대한 이해’‘자연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자연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좋은 시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적 상상력은 없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창조는 에디톨로지(Editology)다.

위대한 상상력은 천재성이 아니라 옛것을 통해 새 것을 아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이생진 <벌레먹은 나뭇잎> 전문

울림이 있는 공감화법이다. 재발견이다. 새롭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보는 눈이 필요하다. 관점, 유추, 연상, 동종교류와 이종교류 등의 접근법에 의한 사물의 속성에 대한 탐색이며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발견이다. 사소한 것들을 들여다보는 힘, 즉 세속적인 것들의 장엄함을 발견하는 일이다.자신만의 메타언어를 경험하는 일이다.

자신만의 고유명사를 만드는 일이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이형기 <낙화> 부분

디자인된 말은 다듬어진 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안겨있는 진솔한 말이다.

그 대상, 그 상황에 알맞은 삶의 본질을 노크하는 말이다.

시에서 디자인된 말은 그 대상과 상황에 알맞은 말이다. 그 말이 일상적이고 평범한 말일수록 더 큰 시적 감동을 갖는다.

관계, 관점의 화법이다.없는 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흔히 쓰는 일상어를 재해석하고 재탐색하는 일이다.

언젠가 함양 화림동 계곡으로 문학기행 갔다가 가져왔던 이끼가 파랗게 낀 노송 죽순에서 솔씨가 싹을 틔운 것이었다. 분명 ‘아침에 만난 기적’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뭐라고 한마디 해줘야 하는데 마땅한 말은 생각나지 않고 호흡 깊숙한 한음절의 감탄사만 튀어 나왔다.

그러면서 모든 풍경은 한 음절의 깊이라는 한 문장에 떠 올랐다.

 

아!

모든 풍경은 한음절의 깊이다

때 묻은 말도 욕스런 말도 함께 정화하는

저 불립문자

모든 풍경은 한음절의 울림이다 - 신병은 <풍경의 깊이>

 

내가 학교 근무할 때에 대책없는 말썽꾸러기가 한명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늘 말썽을 일으키는 트러블메이커였다. 이 녀석에 대한 한줄 평을 생활기록부 종합란에 뭐라고 기록할까를 고민한 적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싹수가 노리끼리함’ 이렇게 적고 싶은 녀석이었지만, 생활기록부는 평생을 따라 다니는 지문 같은 기록이기에 그렇게 쓸 수도 없었다.

고민 끝에 이렇게 쓴 기억이 난다

‘학교생활에 건강미가 철철 넘침’.

표면적으로는 참 멋진 학생이라는 표현이지만, 그 녀석은 숨겨진 진실(?)을 알 수 있는 디자인된 말이 아니었나 싶다.

디자인된 말은 그 대상, 그 상황에 딱 맞는 말이면서 서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교육장으로 발령받은 친구에게 축하전화를 했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나의 본 목소리를 감추면서 교육장 영전을 축하한다고 전하니 친구는 감사하다며 누구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 여수 병은이네‘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대뜸한다는 말이 “아이~ 염병하네”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한마디였다.

격의 없이 툭 내 뱉은 그 한마디를 듣는 나는 너야말로 정말 나의 찐 친구임을 확인하게 된다.

‘염병하네’

이 순간, 이 상황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디자인된 말이었다.

그 비속어를 아무 망설임없이 대뜸 나에게 할 수 있다는 것, 그 말에는 너는 나의 둘도 없는 친구라는 정겹고 격의 없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어느 이른 봄날이었다.

롯데시네마에서 한재 터널 방향 산비탈에 매화가 활짝 핀 것을 보았다. 그 중 그중 유달리 환하게 핀 매화가 있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웬걸 스티로폼 하얀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에 가슴에서 머리로 펄떡 뛰어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 분명 봄이구나

쓰레기도 꽃이 되는 봄이구나

이 생각이 곧 시가 되는 것이다. 봄의 이미지를 일상적 삶의 현장에서 발견한 디자인된 화법이리라.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말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익숙한 말들과 결별하고 익숙한 말들과의 재회다. 언어의 낯선조합 즉 이종교류다.

우리는 어디를 다녀와야 다시 봄이 될 수 있을까?<문정희의 아름다운 곳>를 생각해보고, 꽃이 떨어지는 순간을 보면서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고 반문해보는 것이다 <문정희의 늙은 꽃>

디자인된 말은 우선 늘 보는 모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보려는 것의 결과다.

이른 봄에 핀 제비꽃을 보며 ‘산사람도 넘기 힘든 얼음산을 맨발로 넘어 왔다’고 말하고, 나무에 매달린 매미의 허물을 바라보며 ‘이 생에서 잘한 일이 하나 있다면 고요한 견딤으로 기다릴 줄 알았던 것’이라 생각하고, ‘겨우살이’ 보며 ‘기대어 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풀꽃을 보면서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너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벼랑에 선 소나무를 보고 귀미테를 붙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씨나락이 발아하는 것을 보며 발끝을 세우고 지나가는 빗소리도 듣고, 일렁이는 파란색 바람도 보고 농부의 발목근처에서 무수히 떴다 가는 별들도 만나는 일이다.

시 창작은 뭐 이런 생각과 이런 말들을 기억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또 다른 낯선 말을 대입해보는 일이다. 참 부질없는 것 같지만 세상은 늘 보는대로 늘 하는대로 늘 생각하는대로 하는 것은 재미가 없다. 이렇게 새롭게 세계를 만나고 보고 생각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한 삶이 된다.

세상과 새롭게 접속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힘이다.

어떤 대상, 상황과 만나느냐에 따라 그동안 갖지 않았던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이것이 ‘언어부림’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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