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볼품없는 ‘전관(前官)’ 향나무
참 볼품없는 ‘전관(前官)’ 향나무
  • 이상율 기자
  • 승인 2021.01.20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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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좀 합시다]
한재로터리에 위치한 가지가 모두 잘려나간 향나무
한재로터리에 위치한 가지가 모두 잘려나간 향나무

 

한재 터널 로터리 한가운데 향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 있다. 마치 바지를 벗은 사람 모양 아랫도리가 휑하다. 참 볼품없다.

둘레에 철쭉과 꽝꽝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어도 발가벗은 향나무의 존재는 도리어 경관을 망친다.

늘 지나는 길에 이 모습을 보는 것도, 고역이다.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어버렸을까.

짐작컨대 아마도 이곳을 지나던 어느 운전자가 나무의 잎이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가 날 우려가 있으니 베었으면 한다는 민원에 담당 공무원이 윗사람의 지시를 받고 고민도 없이 민원 우선주의를 실천하느라 막일꾼 시켜서 마구잡이로 가지를 베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이 발동해 나무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향나무가 서있는 현장엘 가봤다. 내 짐작이 맞은 것 같았다. 가지가 열아홉(19)이나 되는 제법 기품 있는 향나무였다.

이 중 열여섯(16) 가지를 톱으로 벤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다. 맨 밑동의 가지만 해도 나이테가 제법이다.

밑동에서부터 위로 차근차근 가지를 잘라버려 겨우 세 가지만 잎이 촘촘해 위는 둥근 모습으로 남아있고 아래는 바지 벗은 맹숭맹숭한 모습으로 변했다. 나무 아래는 베어낸 가지와 잎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소문에 듣기로는 이 향나무에는 에피소드가 있다. 약 5~6년 전인 전관 시절 철쭉과 꽝꽝나무로 뒤덮인 모습이 너무 밋밋해 보이니 한가운데 품격 있는 나무나 한 그루 서 있으면 더 어울리겠다는 주변 권고에 전관 시장의 특명으로 품위와 위용이 훌륭한 향나무 한 그루를 타지에까지 가서 구해와 심은 것이라는데, 이 모양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사람 바뀌면 나무도 바뀌나 보다. 이것 참 큰일 났다. 불경이다(?)

도시 곳곳에 서 있는 나무도 도시의 품격을 나타낸다. 풍경이고 예술이고 삶이다. 마을 입구의 고색창연한 당산나무 한 그루에 그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읽는다.

얼마 전 가로수 정비 사업에서 나무를 아무렇게나 싹둑싹둑 마구잡이로 자르다가 이 광경을 보고 분노한 어느 뜻있는 시민의 외침이 박수를 받았던 일을 우리는 기억한다.

서울시가 덕수궁 돌담 옆에서 50년 넘게 시민들의 옆을 지켜온 버즘나무들을 광화문광장 개선에 맞춰 새로 조경을 진행하는 사업을 추진하자 전문가와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시민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고, 도시 열섬 현상과 미세먼지를 줄여주는 기능까지 갖춘 버즘나무를 제거하는 사업을 중지하라고 발끈했다.

결국, 시 당국은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공론화를 거쳐 재추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가로수 하나에도 전문가 그룹이 고민하고 미리 설계하여 심고 가꾸고 버릴 때는 다시 살 자리를 찾아 주는 것이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것임을 인식했으면 한다.

여수도 나무 은행이 있는 데 말이다.

여수를 해양 관광, 문화 예술의 도시라며, COP28 총회를 유치하겠다는 도시의 나무가 도시를 아름답게 채색하고 경관을 만들어내고 청정한 환경을 만드는 것임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한 번 죽은 나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아는 것이 힘이다. 모르면 물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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