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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하기와 사고의 일탈에 의한 세계와의 접속법
딴짓하기와 사고의 일탈에 의한 세계와의 접속법
  • 남해안신문
  • 승인 2021.01.15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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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61

며느리도 봤응께 욕 좀 그만 해야

정히 거시기 해불면 거시기 대신에 꽃을 써야

그 까짓 거 뭐 어렵다고, 그랴그랴

아침 묵다 말고 마누라랑 약속을 했잖여

이런 꽃 같은!

이런 꽃나!

꽃까!

꽃 꽃 꽃

반나절도 안 돼서 뭔 꽃들이 그리도 피는지

봐야

사는 게 참 꽃 같아야 -박제영 <사는 게 참 꽃 같아야>

 

세상을 조금만 비틀면 험한 세상도 아름답게 험한 말도 아름답게 거듭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시고 이것이 창작의 즐거움이다.

시 창작은 세계를 어떻게 접속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문과학, 자연과학, 사회과학의 통합적 안목이 필요하다. 그래서 시 창작은 통섭적 사고를 통해 갖는 삶에 대한 끝없는 속성을 탐색한다.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융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연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성찰을 어떻게 해갈 것인지에 대해, 문화를 창출하는 인간의 속성을 어떻게 탐색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렇게까지는 몰랐다는 사실을 발견해야하고, 서로 다른 세계의 교류를 통해 그동안 알지 못한 메타세계, 메타언어를 경험하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세계의 이종교류가 가능한가?

메타세계는 시인이 발견해낸 새로운 세계다, 신비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늘 만나는 일상의 또다른 풍경이다. 메타세계는 자기만의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면서 자신만의 맛, 무늬, 향기로 경험적 무늬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것은 대상과 현상의 내면, 은폐된 세계를 발견하기 위한 장치로 상상으로 나아가고 상상에서 다시 상상상, 혹은 상상상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마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을 먹는다

사과나무 집 딸이 바라보던 하늘을 먹는다

사과에 수액을 공급하던 사과나무 가지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세월, 사과나무 나이테를 먹는다 - 함민복 <사과를 먹는다>

 

사과를 먹는 일상적 행위속에 안겨있는 또 다른 의미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발견된 세계가 메타세계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소통, 즉 다른 두 세계의 이종교류를 통해 가능한 발견이다. 사과 한입을 베어먹는 행위는 사과나무 일부를 먹는 일이고, 햇살을 먹는 일이고, 소슬바람을 먹는 일이고, 장마비를 먹는 일이고 벌레의 기억을 먹고 사과가 살아온 세월을 먹는 등의 상상의 확장이 가능해 진다.

시적상상력은 ‘딴짓 하기’와 ‘사고의 일탈’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딴짓 하지 마라, 딴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래서 상상력과 창의력이 자라지 못했는지 모른다.

‘딴 생각과 딴 짓’의 즐거움을 모르고서는 좋은 창작을 할 수 없다.

계곡물에 세수를 하면 맑은 바람소리가 들릴 것 같고 피라미 조잘대는 소리가 들리고 바위를 거치며 닳고 닳아 참으로 매끄러울 것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딴짓, 딴 생각하는 일이다.

딴 생각하기에 의해 ‘의지 위에 가부좌를 튼 햇살, 누군가를 밑줄 치다, 꽃이 악수를 청한다’ 등의 표현이 가능해 지고, ‘햇살이 돌맹이를 가지고 한참을 놀다가, 또 꽃잎을 만져보다가, 개울에 손을 슬쩍 넣었다가, 발을 담가보다가, 바람의 등에 업히기도 하다가, 다른 햇살을 꼭 안아주기도 하다가...‘ 등의 상상의 확장도 가능해지는 장치가 된다. ‘봄이 뻘밭 구석이거나 물웅덩이 같은데를 기웃거리다 한눈 팔고 싸움도 한판한다’는(이성부 봄) 딴생각이 가능해진다.

앙리 마티스는 의도적으로 딴짓을 해보라며넛 난생 처음 보는 것처럼 보라며 긴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왼손으로 그려보라고 권한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반역에서처럼 파이프 그림을 그리고 제목으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라고 붙여 의도적으로 딴짓하기를 권한다.

내가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보고,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를 관찰해 보는 일이다

길을 가다 개미를 밟은 일

나비가 되려고 나무를 향해 기어가던 애벌레를

밟아 몸을 터지게 한 일

풀잎을 꺾은 일 꽃을 딴 일

돌멩이를 함부로 옮긴 일

도랑을 막아 물길을 틀어버린 일

나뭇가지가 악수를 청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피해서 다닌 일

날아가는 새의 깃털을 세지 못한 일

그늘을 공짜로 사용한 일

곤충들의 행동을 무시한 일

풀잎 문장을 읽지 못한 일 꽃의 마음을 모른 일

돌과 같이 뒹굴며 놀지 못한 일 나뭇가지에 앉은 눈이

겨울꽃인 줄도 모르고 함부로 털어버린 일

물의 속도와 새의 방향과 그늘의 평수를 계산하지 못한 일

그중에 가장 나쁜 것은

저들의 이름을 시에 함부로 도용한 일

사람의 일에 사용한 일 - 공광규 <나쁜 짓들의 목록>

 

가만히 앉아 딴생각을 해보면 참으로 난감해지는 일도 많고 혼자 가만히 조용해지는 일도 많다.

딴생각 딴짓이야말로 메타세계를 경험하는 길이리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참 나쁜짓을 많이 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세계와의 접속법을 통해 세계를 재발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말보다는 이미지다.

시창작도 그렇지만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도 ‘어떤 말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말하느냐’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이다.

시는 언어의 경제원칙에 따른다.

꼭 할 말만 하는 것이고, 말하지 않고 말하는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결국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말을 버릴 줄 모르는 사람은 결국 좋은 시를 쓸 수 없다.

침묵의 언어가 갖은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잘 버려야 잘 쓴다.

장자가 말한 ‘불언의 말’이다.

장자의 ‘완전함’은 채우고 채워서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상태가 완성이 아니고, 비우고 비워서 더 비울 것이 없는 상태를 이른다,

 

엄만 내가 왜 좋아?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그냥 - 문삼석 <그냥>

 

말은 마음의 소리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마디 푸른 한마디면 족하다고 했다. 꼭 할 말만으로도 그 뜻을 전달 할 수 있다면 굳이 많은 말을 할 이유가 없다.

이 시에서처럼 ‘그냥’은 그저 그런 뜻의 ‘그냥’이 아니라, 참으로 다양하면서도 포근함을 껴안은 말이 된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속마음까지 전달되는 것이다.

시적 표현은 여기에 근거를 둔다.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정끝별 <밀물>

긴 말이 필요 없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풍경이 그려지면서 인간적 삶으로 번져간다. 딱 할 말만으로 그려낸 이미지다. 평범한 소재를 싱싱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그려낸 이것이 묘사의 힘이다.

그 상황에 알맞은 적확한 언어로 숨겨져 있는 또 다른 모습을 어떻게 선명한 이미지로 그려낼 것인가가 시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신병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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