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10-20 13:25 (화)
“유족들이 감당해 내고 있는 세월의 무게, 더 무거워 져”
“유족들이 감당해 내고 있는 세월의 무게, 더 무거워 져”
  • 강성훈
  • 승인 2020.10.15 1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순사건 72주기를 앞두고 만난 사람] 송은정 작가
“밑에서 부터의 공감의 힘이 제도적인 변화까지 이어지게 해야”
“단독 특별법 제정해 총체적이고, 종합적이고 신속한 치유 이뤄야”

방송작가에서 여순사건 연구원으로 변화를 꾀한 지 20여년. 외형은 변화였지만, 여전히 연장 선상에 서 있었다.

방송작가 시절 특집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 만난 ‘여순사건’. 2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여순사건’의 유가족들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기록물을 만들어가고 있는 연구원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여순사건 72주기를 앞두고 순천대 여순연구소 연구원이자 문학박사인 송은정 작가를 만나 ‘여순사건’의 현재와 과제에 대해 들었다.

 

- 여순사건 72주기를 앞두고 있다. 개인적으로 어떤 준비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를 통해 세 권의 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먼저 구례군의 용역 사업으로 지난 4월부터 구술채록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유족 60여 명의 구술을 담은 『여순10·19 구례군 구술채록 조사보고서』가 나온다. 또 매년 발간하는 잡지『시선 10·19』를 통해 구례 구술채록 사업의 성과와 문제점 등을 다뤘다.

세 번째 출간되는 책은 여수작가회의의와 순천작가회의 작가, 유족과 여순연구소 연구원이 참여한 추념 창작집인 『해원의 노래』이다. 『빨치산의 딸』의 저자인 정지아 작가를 비롯해 37명의 필진이 참여했고, 난 이곳에 분량이 좀 긴 소설 「텅 빈 이름」을 실었다.

 

- 최근 지역사회의 움직임이 너무 조용하다는 점에서 쓴소리도 했는데, 어떤 견해일까?

지역사회 전체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도 우리 여수에는 여순10·19의 역사를 바로 알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많다.

내가 지적한 부분은 행정 관서에서 아직도 이분법적 이데올로기로 역사를 바라보면서 취하는 행동들에 관한 문제였다.

또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여순10·19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특별법’을 공동 발의했으니 잡음이 생기지 않게 조용히 기다리자는 조심스러움이 옳은가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여순10·19의 역사를 논하고, 그 진실을 규명하려는 공론화가 마치 갈등을 초래하거나 이견들이 부딪히는 시끄러운 자리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난 2006년부터 시작해 2010년 마무리된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역사 조사와 결정문을 통해 여순10·19에 대한 진실규명이 한차례 이뤄졌다.

진화위의 결정문에는 “군경의 가해는 자의적인 성격이 강했으며, 군경이 작전 과정에서 민간인을 살해, 처형한 것은 계엄령에서 비롯되었지만, 그에 따른 군의 ‘즉결처분권’은 법의 일반적 요건이나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 “군경당국은 법적 통제를 받지 않고 작전의 편의성이나 효율성만을 고려하여 ‘즉결처분’을 남용해 많은 민간인이 혐의만으로 재판 절차 없이, 사실상 학살되었다”고 결정 통고했다. 

설령 그 당시 우리끼리,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혹은 경찰들과 좌익 사상을 가진 이들이 좌·우로 나뉘어 서로를 죽였고, 그래서 원수라 해도 지금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볼 만한 시간과 거리가 생겼다. 인간은 세상과 자신에 대해 거리를 두며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적대감이나 분노, 증오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어렵다.

72년이 지난 역사를 마주하며 지금 우리는 우리 시대의 화두와 문제점들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의 비전과 연결해 말을 걸어야 한다. 현재의 해석이 필요한 것이고, 그를 통해 추구하는 가치를 구체화 해보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래야 케케묵은 다 지난 것들이 가치 있는 역사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서로의 생각과 행위가 다르다고 증오하게 하고, 죽여도 된다는 적으로 삼게 했던 시국, 부당한 국가의 폭력에 대해 논할 때이다. 왜 그 시대에는 그런 종교적인 초월적 반공사상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에 대해 국민은 어떻게 행동했고, 그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지금에 와서까지 그때 서로를 향했던 적대적인 감정을 부각해 대립하려는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부당한 권력과 폭력에 사로잡혀 있다는 반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여순10·19라는 역사를 공론화하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지역민끼리 편이 갈렸었다면, 그래서 그 앙금이 남아 있다면 더욱더 말해 져야 한다. 말해지지 못한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로지 순전한 폭력만이 말을 금한다. ‘반란’이라 이름 붙여져 함묵과 금기로 굳어진 것들을 깨고 말해야 한다.

더 정확히는 부당한 권력과 가해자들이 부여한 말을 버리고, 박탈당한 언어를 되찾아 새롭고 정확한 의미를 구성해내야 한다. 그런 후 폭력의 주체였던 국가가 용서를 구해왔을 때 피해자들도 용서라는 어려운 과제를 풀어갈 마음이 드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진정한 화해와 상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런 작업이 없다는 것은, 72년 동안 말 못 할 아픔들을 품고 살아오신 분들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몇 집 건너 여순10·19의 아픈 사연들이 있었고, 이맘때면 제수용 생선값이 치솟을 만큼 우리 지역의 많은 사람이 죽음으로 몰렸었다. 즉 그것은 조금만 연결 지어 생각하면 그 아픔들은 우리 지역민 누구에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72년이 지났으니 그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 대부분은 고령이다. 조심스럽게 특별법 제정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을 일이 아니다. 서둘러야 할 일이다.

 

- 여순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KBS여수방송국에서 일하면서 특집 방송들을 준비하며 유족들도 만나고, 관련자분들도 많이 만났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1998년 50주년이 되는 해에는 <우리에겐 어떤 날개도 없다네>라는 제목의 희곡을 창작했다.

좌익, 우익 어떤 날개도 없었던 이들의 아픈 사연을 풀어나간 음악극으로 제16회 전남연극제에 무대에 올려졌다. 창작 음악도 여러 곡 작곡되었고, 지역의 무용가, 미술인 등이 적극 참여한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알았다. 경찰들이 늘 뒷자리에서 보고 갔고, 대본의 특정 부분을 고치라는 압력이 들어왔고, 경찰서에 불려가기도 하는 등 감찰 대상이었다는 것을. 설상가상 연극제 심사위원은 해방 이후 북에서 쫓기다시피 도망쳐온, 사상에 의한 피해가 골수에 사무친 분이었다고 한다.

그 심사위원은 술을 마시고 호통을 쳤단다. 너희가 뭘 아느냐고? 심사 결과는 철저한 외면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세상이 바뀌었는데 아직도? 하면서 이해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구술채록을 하면서 들은 내용은 연극에서 다룬 것보다 더 처참하고, 잔혹했다. 어쩌면 그래서, 그분은 그 고통의 한가운데에 놓여봤기 때문에 그런 거론 자체가 견디기 어려웠겠구나 싶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한 것은 70주년이 된 2018년도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가 발족하면서부터이다. 공포와 증오를 앞세운 거대한 폭력이 대다수 민중을 압살하고, 침묵하게 했던 점이 문제로 다가왔다. 생각의 다양성이 용납되지 않는, 국민이라는 획일화된 정체성만을 요구하는 권력과 폭력의 구조에 대해 더 연구해 보고 싶어 계속하고 있다.

 

유족들을 만나 구술 채록하고 있는 송 작가.
유족들을 만나 구술 채록하고 있는 송 작가.

 

- 많은 유가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책 이야기가 궁금하다. 간략히 소개해 달라.

유족들의 구술채록을 바탕으로 한 공저에는 『나 죄 없응께 괜찮을 거네』와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그리운 이름, 아버지』가 있다. 순천과 구례의 구술채록 등도 보고서 형태로 엮였다.

『나 죄 없응께 괜찮을 거네』에는 여수유족회 회장이셨던 황순경 씨와 최연장자였던 92세의 박동수 씨, 유은례 씨의 이야기를 다뤘다. 질의응답 형식의 다른 글들과 달리 소설처럼 재구성해서 가독성을 높였다.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그리운 이름, 아버지』에는 올 1월 재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철도공무원 장환봉 씨의 딸 장경자 씨와 그 어머니 사연 등 아버지를 잃은 이들의 구술을 재구성했다.

이번에 출간될 여순 추념 창작집은 여수와 순천작가회의 작가들에게 이 두 증언록을 참고해서 시와 소설 등으로 창작해 주시라 요청했다. 많은 분이 내가 정리한 유족들 이야기를 글감 삼아 감동적인 시로 창작해서 가슴이 벅찼다. 어서 그분들께 당신들이 주인공이 된 작품들을 보여드리고 싶다.

 

- 많은 만남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다면?

구술 그대로가 소설 한 편처럼 극적인 분들이 많았다.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지난해 비가 내리던 여름 찾아뵈었던 순천시 서면 죽평리의 72세 임 씨 어르신이다. 둘째 작은아버지가 좌익 쪽의 사상자였고, 그 형제라는 것만으로도 닥칠 위험이 두려워 아버지와 또 다른 작은아버지까지 세 형제가 한꺼번에 사라졌다고 한다. 장손인 아버지가 건사한 집안에는 팔순의 늙은 할아버지와 부모님, 19살에 시집온 부인과 그 부인이 낳은 11대 종손인 아들, 바로 구술자 임 씨 어르신이 태어나 있었다. 어머니는 결혼한 지 2년 만에 혼자 되셨고, 종부로서 어른들을 모시며 아들 하나 보고 평생 수절하고 사셨단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분의 서러운 눈물 때문이다. 많은 분이 구술 중 눈물을 보이시지만, 이분의 울음은 그쳐지지 않았다. 절절한 사모곡이자, 병든 몸으로 돌아본 자기 삶에 대한 깊은 연민의 눈물이었다. 그 흘린 눈물 따라, 아버지 없이 연좌제에 시달리며, 어머니의 외로움을 지켜보며 켜켜이 쌓였을 아픔들도 같이 흘러가 버렸으면 싶었다.

 

- 72주기를 앞두고 있다. 많은 변화를 느끼고 있을 텐데 가장 큰 변화라면 무엇일까? 또, 아쉬움이라면?

그분들이 더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족분들이 감당해내고 있는 세월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섬진강과 지리산.
섬진강과 지리산.

 

- 지역에서는 특별법 제정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또, 제정을 위해 지역사회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국가가 자행한 불법적인 폭력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지역민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법이다.

그 과정들에서 반목과 분열을 종식하고, 국민화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궁극적 목적이 있다. 그리고 당장의 고령의 유가족들이 한을 풀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기반하고 있다.

현재 상정된 특별법안이 행안위 통과를 위해 소위원회에서 심의되고 있는데, 행안위 자체 검토보고서에서, 미리 걱정했던 문제가 제기되었다 한다. 지난 20대 국회 말에 통과된 과거사법만으로도 여순10·19의 진상규명이 가능하다는 논지이다.

그러나 지난 1차 진실화해위원회 때도 경험했듯이 여러 과거 사안과 함께 진행된 조사에서 여순 10·19는 조사 기간과 조사 인력 부족, 자료의 제한, 조사방법의 한계 등으로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 다시 그런 일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

또 과거사법만으로는 특별법과 달리 위령 사업이나 여러 사업을 수행할 재단설립,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지원 등에 대해 법적 보장이 되지 않는다. 여순10·19의 역사적 의의를 좀 더 직시해서, 단독 특별법을 제정해 총체적이고, 종합적으로, 무엇보다 고령의 유족들을 위해 신속하게 진행되었으면 한다.

산재한 문제들이 특별법으로 다 해결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순특별법이어야만 가능한 것들이 많다. 특별법이 제정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적 공감을 얻어야 한다. 앞서 50주년의 연극 무대를 언급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 후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역사 인식의 장은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 70주년 때의 청와대 청원에 동참한 사람 수가 그처럼 기대에 미치지 못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었다. 올해 구례에서 만난 유족분들도 습관처럼 ‘반란사건’이라고 말한다. 언어가 바뀌지 않음은 생각 역시 그대로라는 뜻이다. 그래서 가시적으로 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의 사과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오랫동안 굳어진 ‘반란’이란 오명을 깨트릴 결정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것만을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바르게 세워진 역사로 지역의 정체성의 결을 풍부하게 하고, 나아가 분단된 한반도의 오래된 매듭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역 자생적인 공동체 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추모공원이나 기념관이 세워지고, 보상이 이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우리가 먼저 그 역사를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주인의식을 갖고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란다. 사실 특별법 제정을 기대하면서도 현실적인 우려의 심경을 감추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제주4·3이나 광주5·18과는 다르게 여순10·19는 여수·순천·광양 등 여러 지역이 연관되어 있다. 그로 인해 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지역 분할이나 각 단체의 기여도 따지기, 명분 주장하기로 대립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의 말이 오간다. 제정된 법에 따라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추진되고, 그를 행할 거대한 기관이나 권력 기구가 생겨나 실적만을 가시화하는 데 그칠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일이어야 한다. 우리 곁의 유족들과 야물고 똑똑한 가장과 자식을 잃고 오랫동안 연좌제에 묶이고, 반란의 지역이란 낙인찍힘으로 인해 날개를 펼치지 못했던 우리 지역, 우리의 아픔이다. 우리가 문제의식을 느끼고, 명예를 회복하는 주체임을 분명히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지역별, 단체별, 개인별로 고유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여순을 풀어나갈 수 있도록 지지되어야 한다. 성과와 결과물들을 조급하게 요구하는 사업 중심이 아니라, 지역과 국가의 새로운 정체성의 한 결로 자리 잡아가도록 저변으로 확산되게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밑에서부터의 공감의 힘이 제도적인 변화까지 이어지게 했으면 한다.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얼마 전 여순10·19를 다룬 장막극 희곡 초고를 마치고 묵히고 있다. 곧 다시 꺼내 퇴고할 작정이다.

경주에서 열리는 제6회 세계 인문학 포럼의 발표자로 선정되어 발표 준비 중이다. 오는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이 포럼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인문학자들이 참여해 논문을 발표한다. 이곳에서 여순10·19에서 여성이 겪은 폭력과 그 회복을 위한 노력에 대해 발표하게 된다. 여순10·19의 한 면을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순과 역설로 이어질 수 있겠지만……, 각자에게 닥친 상황의 축은 다르고, 각각의 아픔이 있다. 서로의 방식을 인정하며 감싸 안으려는 마음으로 우리 앞의 역사를 바라보았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