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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에서 깨달음을 얻다
사소한 것에서 깨달음을 얻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20.07.31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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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57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나 언제 꽃 피었던가

가물가물

봄날

한참을 걸었던가

한참을 날았던가

겨울 한복판에

석란이 딱 한송이 꽃을 피웠다

아,

한 음절이 향기로 번진

관계의 그 말, 끝에

나 잠시 나비되어 꽃 속에 든다

벙긋

살맛나는 거기, 한 시절이 꽃 핀다 - 신병은. 꽃 속에 들다

 

사소한 것들에서 깨달음을 찾다.

봄이 되면 풀과 나무와 꽃들은 한 순간에 새싹을 밀어올린다. 겨우내 죽은 듯 멈춰 있던 것들이 때를 정확히 알고 기척하며 꽃 피우고 잎은 낸다. 어디에 저렇듯 이쁜 잎들이 숨어있었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로 기적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기적이 아닌 게 없다. 모든 게 기적이다.

바람이 부는 것도,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지는 것도, 꽃이 피는 것도 사과가 빨갛게 익어가는 것도 이선희의 노랫말처럼 그 중에 그대를 만난 것도 기적이다.

생땍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그 또한 나를 좋아하는 것도 기적이라 했다.

정도전은 꽃이 피는 것으로 하늘의 뜻을 읽어낸다고 했다.

“창문을 열고 편히 앉아 주역을 읽노라니 가지 끝에 흰 것 하나 하늘의 뜻을 보이노라”

서양처럼 이게 무슨 꽃인지, 어떻게 흰색이 나오지, 이 색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 묻지를 않는다. 꽃이 왜 피는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짜져 묻지를 않는다.

무심히 가지 끝의 꽃눈 하나에서 하늘의 뜻을 읽어낸다.

통찰이다.

사소한 것에서 기적을 읽어낸다.

관찰이고 관점의 문제이고 통찰이고 통섭의 문제다.

바람도, 햇살도, 기다림도, 의지도, 견딤도 늘 보던 모습이 아니라 또 다른 모습도 읽어낼 수 있다. 늘 만나던 모습으로가 아니라 낯설게 만나는 일이 깨달음이다.

타인의 마음읽기고 마음 들여다보기다.

눈치가 없고 사람의 마음을 못 읽으면 어떤 일에서든 실패하기 십상이다.

관찰이 나의 눈으로 읽는 행위라면 관점은 세상의 모든 눈으로 읽는 일이다.

시 창작은 나의 눈이 아닌 세상의 눈으로 다시 들여다보고 읽어낸 내용들이다.

 

먼 산을 봅니다

아니 먼 산을 팝니다

더위가 한풀 꺾여

사람들이 바람의 경전 아래서 한숨 돌립니다

'한풀 꺾이다'와 '한숨 돌리다' 사이에서

나의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내일은 또 무슨 생각의 파문을 일으킬까를 생각하다

백지 그대로 다음 페이지도 그대로 접어둡니다

나는 하얗게 하루를 지내며

나를 향해 밤늦도록 나팔을 불었지요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한세상이 모두 경전이었지요

먼 산 파는 일은

나에게로 돌아오는 유일한 길의 경전입니다 -신병은<먼 산 보다>

 

어느 문사가 하루는 수레를 타고 가는 미인을 보았다.

문에 기대 넋을 놓고 바라보던 그는 문득 필묵을 찾아 두 구절 시를 적어 보낸다.

心逐紅粧去 身空獨倚門

“내 마음, 붉은 화장 따라 가버리고, 껍데기 몸만 덩그러니 문에 기대어 섰네”

그 미인은 수레를 세우고는 그 자리에서 답시를 지어 주었다.

驪嗔車載重 添却一人魂

“짐이 무겁다고 나귀가 성질을 부리는데, 사람하나가 더 올라타서 그랬구나”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읽기도 즐겁고 새롭다.

우리는 마음과 더불어 살고 있고, 마음을 쓰면서 살고 있다.

일상의 습관에 갇혀 살고, 한편으로는 언어의 덫에도 갇혀있다.

법정스님은 지식은 바깥의 것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지만 지혜는 안의 것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 했다. 기존의 정보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창작의 개념이다.

法古創新법고창신이고 溫故知新온고지신이다.

새것은 헌 것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창작은 있는 것을 다시보고 다르게 보는 것이다.

세상에 없는 것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재배치하고 다시 들여다본 결과다.

그래서 연암 박지원도 지성의 정수를 모아 터득한 진리가 ‘冥心’이라 했다.

이 모든 게 알고 보면 사소한 것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본 힘’의 결과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만한 음악이 없고, 바람소리만한 시도 없고, 자연만한 그림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실력으로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도 마음을 열고 들으면 물 떨어지는 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만한 음악이 없고, 여름에 보는 그 녹색과 자연만한 그림이 없다.

 

모든 길은 바다로 열려

반짝이는 아침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때맞춰 그대가 오셨군요

썰물의 발자국 밟으며 밀물로 오셨군요

밤새 다독인 그리움으로 오셨군요

별의 이름으로 오셨군요

청보라빛 꽃잎으로 오셨군요

아침 이슬로 오셨군요

바람길로 오셨군요

고요로 오셨군요

부부부

기상소리 앞세워 눈 맑은 아침으로 오셨군요 - 신병은<나팔꽃>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것이 없다(毋不敬).

기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신비롭고 경이로워 존경의 대상이다. 작은 풀꽃 한송이에도 우주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창작은 세상의 속을 다르게 들여다보는 행위와 방법의 문제다.

새로운 것을 보려면 새롭게 들여다보려 말고 다르게 보려하라.

 

시를 잘 쓰려면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주변의 일상을 잘 들여다보라.

일상의 흐름을 통찰하라.

사물, 자연을 제대로 들여다보자.

일상적 말의 변용을 들여다보고, '생각'을 다시 생각하면서, '무엇'보다는 '어떻게'로 접근하자.

수동적으로 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관찰하자. 그러면 직관(대상이나 현상을 보고 즉각적으로 느끼는 깨달음)이 통찰로 이어진다.

 

재발견한 일상의 가치들이 보인다,

이것이 관찰을 통해 깨닫는 것의 세속적인 장엄함이다. 원효대사가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견성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꽃이 떨어지는 것으로 하늘의 뜻을 읽어낸다.

마음으로 본다.

마음으로 볼 수 있을 때 시창작의 기반인 유추와 은유에 기댈수가 있다. 유추할 수 없다면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되어보라, 타인의 눈 활용하는 것이 감정이입의 본질이다.

 

너 혹시 아니?

봄 앞에 서면

우리 모두 꽃이란 것을

너의 안쪽에 날아간 바람의 말이

너의 안쪽에 닿은 햇살의 말이

꽃이란 것을

내 안쪽에 날아온 바람의 말이

내 안쪽에 닿은 햇살의 말이

꽃이란 것을

너 혹시 아니?

너 앞에 서면

나도 꽃이란 것을 -신병은 <개화>

 

풀꽃 한송이가 아무것도 아니면 나도 아무것도 아니다.

얼마만큼 제대로 들여다보는가가 통찰이고 모든 것을 존경하는 첫 걸음이다.

잘 들여다보라.

잘 들여다보면 사소함이 주는 깨달음을 만날 수가 있다.

스쳐지나는 바람 한올, 떨어지는 빗줄기 하나, 길가에 피어나는 작은 꽃 한송이, 기어 다니는 작은 개미,..

아무것도 아닌 양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잘 들여다보면 다 의미가 있다.

이것이 바로 존재론이고 관계론이다.

세계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은 이 세계의 극히 미세한 무엇인가 숨어있다

신병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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