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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상상력과 낯설게 하기
시적 상상력과 낯설게 하기
  • 남해안신문
  • 승인 2019.12.2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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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52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시적 상상력은 사물의 속성에 대한 탐색이며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비결이다. 그것은 또

단순히 아는 것의 차원이 아니라 깨달음의 차원이다.

고정관념을 깨고 나온 깨달음이 상상력이다.

그 방법적인 문제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다르게 보는 것, 이미 경험한 것들의 통섭을 통해 다르게 생각하는 문제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해내는 문제가 바로 시창작의 ‘낯설게 하기’다.

조삼모사朝三暮四란 말은 《열자(列子)》의 <황제편(黃帝篇)>에 나오는 고사로써 중국송(宋)나라의 저공(狙公)이 자신이 키우는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아침에는 세개, 저녁에는 네 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화를 내므로, 아침에 네개, 저녁에는 세 개를 주겠다고 바꾸어 말하니 기뻐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알고보면 같은 이야기인데 원숭이는 그 뜻을 모르고 화를 낸다면서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원숭이가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요즘처럼 아침저녁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는 먼저 네 개를 챙기는 것이 현명한 일이기에 원숭이의 지혜로움이 안겨있음을 새삼 알게 된다.

이처럼 늘 그렇다고 믿어버리고 안주해버리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일이 창작의 첫걸음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의미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면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가 안겨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시창작은 있는 것들을 어떻게 다르게 볼 것인가의 문제다.

 

가야산 산길 걸어 해인사 가는 길목

앙상하게 잎이 진 굴참나무 가지에

때 아닌 푸른 잎이 한 무더기 나 있기에

나무가 미쳐서 때도 모르고

겨울에도 새 잎이 돋았다고 말했더니

같이 가던 누군가가 말을 가로채

한겨울에 새 잎이 날 리는 만무하고

숙주식물의 껍질을 파고들어

못난 듯 얹혀사는 식물이지만

겨우살이라고 하는 귀한 약재로써

거저 살다 가는 것은 결코 아니란다

얹혀서 산다는 것,

언뜻 생각하면 못난 일 같지만

얹혀살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바람 위에 구름이 얹혀서 살고

꽃 속에 벌 나비가 얹혀서 살고

사람 속에 우리 또한 얹혀 살아가느니

겨우살이처럼 살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못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김광규 <겨우살이>

 

다르게 바라보는 힘이 시적 진실에 이르게 된다.

‘겨우살이’ - 얹혀사는 삶 -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시적 진실은 대상에 담겨있는 삶의 의미를 어떻게 잘 포착해 내는가가 관건이다.

나뭇잎의 벌레먹은 부분을 보면서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으로 리라이팅하고, ‘어머니의 골다공증’을 ‘어머니가 하늘나라 먼 길을 몸 가볍게 날기 위해 몸을 비우는 것’이라고풀어낸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의미를 단지 나이가 많다는 개념이 아닌 ‘책임을 진다, 나를 비우고 너를 받아들일 여백이 있다. 하늘의 뜻을 헤아린다.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 어떤 일을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의미확장을 하게된다.

그래서 공자는 지천명知天命을 지나 이순耳順과 종심從心으로 간다고 했다. 종심從心은 나이 70이 되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지만, 그 속 의미는 나이 지천명과 이순을 지나 70이 되면 법도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시창작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그 자체로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진리도 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시창작은 늘 강조해 왔듯이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다. 결국 관점의 문제다.

 

토요일의 햇살은 반쯤 누워 오는 것 같다

반공일처럼

반쯤 놀다 오는 것 같다

종달새한테도 반쯤 울어라 헤살대는 것 같다

반쯤 오다 머문 데

나는 거기부터 햇살을 지고 나르자

반쯤은 내가 채우러 갈 토요일 오후의 외출 -고운기 <반쯤>

 

예전에는 토요일을 반공일이라 했다. 오전에는 일하고 오후에는 놀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공일 반쯤이라는 발상에서 햇살도 반쯤 놀다 오고 종달새도 그럴 거라는 유추에서 출발한 시다.

 

이가 깨져 대문 밖에 버려진 종지에

키 작은 풀 한 포기 들어앉았습니다

들일 게 바람뿐인 독신(獨身),

차고도 넉넉하게 흔들립니다

때론,

흠집도 집이 될 때가 있습니다 -박후기 <흠집>

 

흠집이 나 버려진 종기 속에 풀 한포기 자라듯, 누구에게나 있는 흠집은 오히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여유와 여백이 아닐까 하는 역발상이 이 시의 출발이다. 너무 완벽을 추구하게 되면 스스로도 피곤하고 주변까지도 피곤하게 할 수 있다는 발상이 오히려 건강하게 다가온다.

똑 같은 하나의 현상도 상황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또 어떤 이웃을 만나느냐에 따라 존재의미가 달라지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시적 상상의 출발이 된다.

우리는 위급한 상황에 놓일때면 ‘사람 살려’라고 외치지만, 서양 사람은 ‘헬프 미’라고 외친다.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그 속에 인간이 있고 없고의 발화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헬프 미’는 지극히 개인의 문제지만 ‘사람 살려’에는 폭넓은 휴머니즘이 밑자리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정호승 <미안하다>

 

이 시에는 한편의 드라마가 안겨있다.

전개를 유추해보면 두 선남선녀가 서로 어렵게 어렵게 사랑을 했고 결혼을 앞두고는 설상가상으로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고.... 그래서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고,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고, 그곳에 너가 있었고,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는 너가 있었고, 그래서 나는 미안하고, 너를 너무 사랑해서 미안하고....

짧은 시속에 장편의 드라마가 숨겨져 있다.

이 시를 통해 ‘미안하다’는 포용적 의미를 읽게 된다.

 

늦겨울 눈 오는 날

날은 푸근하고 눈은 부드러워

새살인 듯 덮인 숲 속으로

남녀 발자국 한 쌍이 올라가더니

골짜기에 온통 입김을 풀어놓으며

밤나무에 기대어 그 짓을 하는 바람에

예년보다 빨리 온 올 봄 그 밤나무는

여러 날 피울 꽃을 얼떨결에

한나절에 다 피워놓고 서 있습니다 -정현종 <좋은 풍경>전문

입가로 미소가 번져오는 ‘낯설게 하기’의 교과서적인 시다.

이처럼 시심은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새롭게 들여다보면서 삶의 새로움을 예견해내는 마음이다.

새로운 깨달음은 ‘내속에는 너무도 많은 내가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결국은 내속의 어떤 나를 만날 것인가의 문제다.

 

신병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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