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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가 구국성지 흥국사의 중흥을 고민해야 할 때”
“지역사회가 구국성지 흥국사의 중흥을 고민해야 할 때”
  • 이상율 기자
  • 승인 2019.11.27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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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흥국사 명선스님을 만나]
첫 발길 머문 지 30년 대찰로 변모...신도 감소에 위기 직면도
“호국성지이자 전통문화의 전당이 사라질지도” 우려
호국성지로 일컬어지고 있는 흥국사.
호국성지로 일컬어지고 있는 흥국사.

 

흥국사(興國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로 여수시 중흥동 영취산 산자락 넓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

1195년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사찰로 824년 역사의 고찰이다. 나라가 흥하면 이 절도 흥할 것이라는 흥국의 염원을 담고 있는 비보사찰로 흥국사라 하였다고 한다. 즉, 변방의 국찰(國刹)로, 나라의 안정과 융성을 기원했던 기도처로, 불법 그 자체보다는 호국을 우선으로 한 사찰로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기암대사가 300여 명의 승병 수군을 이끌고 이순신 장군의 성전에 참전하여 왜적을 무찌르는 데 공을 세웠으나 사찰은 전화로 전소했다.

지금은 보물 제396호 대웅전을 비롯하여 영산회상도(보물 제578호), 괘불탱화(보물 제1331호), 원통전 관음 탱화(보물 제1332호) 홍교(虹橋) (보물 제563호) 등 5개의 보물과 많은 지방 문화재는 지역민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호와 미의식을 함양하는 등 지역의 문화 역량을 제고하는 데도 이바지하고 있다.

명선 스님이 주지로 부임했던 1986년 흥국사는 대웅전 법당에 물이 샐 정도로 낡은 건물 12채가 전부였다.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조선 시대 다시 세웠으나 임란에 요사가 모두 불타버려 1624년(인조 2년) 계륵선사가 다시 지었으나 많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명선 스님은 재임 33년에 걸쳐 법당을 보수하고 박물관, 유물관, 수장고 등 15채의 건물을 신축 모두 27채의 건물이 있는 명실상부한 대찰로 변모시켰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각종 종교의 신도들이 줄어드는 현상이 일면서 흥국사도 예외는 아니다. 이대로 간다면 호국 성지이며 향토의 전통문화 의식의 전당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지면서 새로운 중흥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명선 주지를 사찰에서 만나 그간의 경위와 향후 계획을 들어 보았다.

 

30여년째 흥국사를 이끌고 있는 명선스님.
30여년째 흥국사를 이끌고 있는 명선스님.

 

-흥국사의 번영을 위해 재임 중 많은 불사(佛事)를 해왔다. 대웅전의 보수는 물론 박물관, 유물관, 수장고 등을 신축하기도 했다. 양적으로도 많은 팽창을 이룬 것이다.

흥국사 사적기(事蹟記)에 보면 “불법(佛法)이 크게 일어날 도량(度量)이 될 것이니 절을 짓고 흥국사라 하라. 이 절이 잘되면 나라가 잘되고 나라가 잘되면 이 절도 잘될 것이다.”라고 했다. 국가와 절이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종전엔 기존의 유물을 전시하는 데 그치고 있었으며 보존 할 수 있는 공간 하나 마련되지 않아 안타까웠다. 따라서 불도의 정신을 이어받고 문화와 역사적 견문을 넓히고 참다운 도량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다 보니 12동이 27동으로 확장됐다.

 

-흥국사는 여수 순천 광양 등지의 평안과 해탈을 구하는 귀의처로 자리 잡고 있다. 전 종교계의 고민이기도 하지만 신도가 줄어들고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흥국사가 융성할 때는 여수, 순천, 광양까지 3,000명이 넘는 신도와 30여 명의 승려가 찾는 대찰이었다. 신도 외에도 전국에서 모여드는 관광객으로 분주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신도가 대폭 줄었고 찾는 중생도 함께 줄었다. 여수 국가 산단 조성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사찰의 아랫마을 중흥동은 150여 세대에 세입자를 합하면 약 300세대의 인구가 여수국가산단의 확장에 따른 이전으로 마을이 통째 없어졌다.

산단의 잦은 안전사고와 공기 오염도가 원인 중에 하나다. 그리고 물질 만능시대의 도래가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급변하고 있는 과학 문명의 발달 영향으로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하는 해탈의 인고를 멀리하는 이유일 것 같다,

 

- 흔히 속세의 말로 양적 팽창에만 몰두하고 운영 방법이 서툴 때 ‘하드만 있고 소프트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찰로 유인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는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가 열리기 전, 당시 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강동석 위원장을 만나 박람회를 찾을 외국인을 위해 흥국사에 템플스테이를 개설하겠다고 제안하고 외국 손님의 유치를 당부했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템플스테이는 색다른 경험으로 인기가 많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휴식 형, 국궁체험, 영취산 진달래 축제 체험, 무각 스님의 종횡무진 선치유(힐링명상) 등이다.

최근 여수를 방문한 독일 베를린의 유캔트 청소년 40여명도 이 프로그램을 경험했고 주변 경관은 물론 산채 음식에도 매료되어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여수의 향토문화제인 거북선축제에도 흥국사를 비롯한 인근 석천사, 한산사 승려들도 참가하여 시민과 함께하고 있다.

 

흥국사 돌탑이 꽃무릇과 어우러져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흥국사 돌탑이 꽃무릇과 어우러져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꽃무릇이 예쁜 108 돌탑이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조성하게 된 배경은?

꽃무릇은 가을을 알리는 꽃으로 불화, 탱화, 경전의 제본을 할 때 꽃무릇의 뿌리를 찧어 바르면 좀이 슬거나 벌레가 꾀지 않아 사찰 주변에 많이 심는다.

잎이 없을 때 꽃이 피고 입이 나오면 꽃이 떨어진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상사화(相思花)라고도 불린다. 꽃말은 슬픈 사랑, 환생이라는 의미가 있다.

108 돌탑은 108번뇌의 상징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과거 현재, 미래의 번뇌를 씻자는 의미이다. 불심이 깊은 신도의 정성으로 조성된 것이다. 대신기공 김철희 사장이 공양했다.

여수국가산단 건설을 위해 일하다 희생된 영혼을 달래고 시민의 평안과 국가 산단의 모든 기업의 무사고 안전을 기원하는 뜻으로 한 것이다.

 

- 2015년 몽골의 불교 총본산인 간덴 사원과 자매결연을 맺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교류 사업 중에 소개할 만한 것이 있다면...

불교계는 승려를 지망하는 중생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인재난에 봉착하고 있다. 2015년 몽골의 불교 총본산인 간덴 사원과 자매결연을 맺고 이 문제의 해법으로 몽골의 참신한 청년들을 선발하여 우리나라로 불러들여 종단 교육기관에 위탁 교육을 하고 각 사찰에 배치하고 있다.

2017년 3명을 이수 시켜 구례 화엄사, 본사 등에 배치하였고 지금 12명이 교육 중이다. 인재난에 따른 고육지책이다. 월 30만 원의 활동비를 지급하고 있으며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도 모두 자비로 충당하고 있다.

 

- 흥국사는 호국 사찰이다. 단순한 사찰이 아니고 지역 문화와 역사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중흥을 바라는 시민이 많다. 향후 진로를 위한 방안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흥국사는 국가가 임란 위기에 처했을 때 여느 사찰과 달리 승병 수군이 사지에 뛰어들어 승리를 쟁취했던 호국의 얼이 새겨진 사찰이다. 대웅전, 홍교, 이순신 장군의 친필 공북루(拱北樓) 등 보물과 문화재가 있고 애국의 사상이 면면히 이어져 온 사찰이다.

따라서 이 사찰의 중흥은 매우 엄중한 과제이다. 그러나 기존의 유물을 전시하는 데 그치고 있으며 보존 할 수 있는 공간 하나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찰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시, 도 등 행정 기관에서도 관심을 갖고 시민과 함께 구국 성지 흥국사의 중흥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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