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힘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통섭이다
인식의 힘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통섭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9.10.2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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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올해로 한글날 제573돌을 맞는다.

한글은 1443년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이 백성을 널리 깨우치는 바른 소리라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여 1446년에 반포한 우리민족의 고유문자다.

훈민정음 체계는 본문에 해당하는 ‘예의’, 5해1례로 구성된 ‘해례’, 제작경위를 적은 ‘정인지 서’ 등 3부분 33장으로 되어있다.

그 당시에 첫소리(자음, 닿소리) 17자와 가운데소리(모음, 홀소리) 11자를 합하여 새로 28자를 만들었다. 한글은 세계 언어 중에서도 가장 과학적이고 창의적이면서 합리적인 문자로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문자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서 글자를 만든 원리를 보면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소통이 근간이 되어 있다.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인식, 즉 통섭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어려운 창제다.즉 첫소리를 만든 원리는 상형과 가획, 가운데 소리를 만든 원리는 성리학과 지사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특히 실제 소리를 관장하는 음성기관의 모양을 상형하고, 당시 정신사적 근저가 되는 성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배경으로 하였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사소하고 평범한 삶을 새롭게 들여다본 결과였다.

새롭게 인식한다는 것은 사상적으로든 세계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힘이다.

이점에서 보면 훈민정음 창제 원리나 시 창작원리도 같을 수밖에 없다.

자연과학적인 측면과 인문과학의 측면에서 보는 관점이 서로 소통할 때 비로소 새롭게 볼 수 있는 힘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인식의 힘이다.

그것은 대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의미를 벗겨 깊이와 넓이를 보듬어 내는 감각이면서 삶의 어떤 면을 파헤치고 존재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촉수다.

일상의 나른하고 심드렁한 풍경 속에서 미세한 새로운 풍경을 발견해내는 힘이다.

삶의 진정성에 대한 깨달음이자 재발견이다.

시적 인식, 즉 새로운 진실(리얼리티)의 발견이며 사물을 보는 새로운 눈의 발견이면서 시적 양심이다.

현실 속에서 온몸으로 부딪혀 발견한 자신만의 톡특한 삶의 가치가 된다.

발견은 연륜의 깊이다.

“일본의 100세 시인 ‘시바타도요’(1911년생)할머니는 90세에 아들의 권유로 시를 공부하여 99세에《약해지지 마》(2010) 시집을 내고, 다음해에 《100세 살아있는 힘》(2011)을 또 펴냈다.

지금 함께 하고있는 전남대 평생교육원 시창작과정에도 20대에서 80대까지 넓은 연령분포를 갖는다. 20대의 눈과 80대의 안목이 소통하는 현장이다.

추사 김정희(金正喜)는 당파 싸움에 휘말려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귀양 가서 환갑의 나이에 ‘세한도’(歲寒圖)를 그렸다. 짧기만 한 인생, 그의 예술작품은 신이 허락한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한 결과다.“

세종대왕도 그렇고 김정희도 그랬듯이 새로운 발견의 발화법은 일상을 새롭게 들여다보기, 사소하고 지나쳐온 것들의 자리를 재확인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무심한 일상 속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각마다 사건이 득실거린다’

내재된 의미의 봉인을 해제시켜야 한다.

세상의 모든 창작은 소통과 통섭의 힘이다.

그래서 세상은 본질에 앞서 관계성이다. 모든 대상의 너에 대한 나, 나에 대한 너의 관계성이다.

세상은 관계로 이루어져 관계에 의해 전개되고 진행된다.

관계에 의해 그동안 헤아리지 못한 본질을 규명하게 되고 보지 못한 모습을 재발견하게 된다.

어제는 문득, 내가 죽기 전에 남길 유언을 생각했다. 뭐라고 한마디를 남기고 가긴해야겠는데 도데체 나의 조문객들을 설레게 하고 감동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또 문득 저 나무는, 바람은, 풀은, 꽃은 어떤 유언을 남길까. 어떤 유서를 썼을까를 생각했다.

참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성찰이라는 삶의 한 단면을 내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된다.

또 떡잎의 발설에 대해서 생각했다.

미나리 씨앗을 컵에 담았고 작은 씨앗에서 콩나물처럼 떡잎이 나왔다. 신기했다. 문득 첫 떡잎들이 입을 열 때 무슨 말을 했을까를 생각했다.

뒤뜰에 대해 생각했다

혼자 사는 빈 집 .... 비어서 더 넉넉한 .....흙벽에 걸린 녹슨 낫, 호미 .... 버려진 것들의 휴식 .... 손길 닿지 않아 더 빛나는 .... 제멋대로 피었다가 지는 꽃들 ....햇살도 혼자 슬몃 담을 넘어오고 ..... 감나무 그림자도 혼자 놀다 가고....오래 오래 맑아진 굴뚝 .... 돌아오지 않을 손닿을 듯한 거리 .... 기쁨보다 슬픔이 오들오들 떨며 숨어있는 곳 .... 유년의 술래가 있는 카페 ,,,. 상큼한 화법들이 톡톡 튀고 있는 곳 ....문득 오래오래 방치해둔 나의 뒤뜰이 궁금하다

겨울 햇살 좋은 담장밑을 생각했다.

부러진 햇볕들의 쌓인 곳 .... 햇볕은 직선으로 내려온다.... 굴절은 있지만 곡선으로 달리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돌아갈 줄 모르기에 늘 부딫히고 깨어질 것 같다.... 부러진 햇볕들이 쌓인 곳이 참 따뜻할 것 같다,... 낙엽처럼 옹기종기 서로를 껴안고 모여있을 것만 같다.....

새벽 말의 겉면에 이슬이 맺혔다 – 아침 일찍 일어나 보면 새벽에 이미 미화부아저씨들이 거리를 쓸고 있다. 만나면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 인사를 주고받는데 그때 그 인사말에는 아침이슬이 맺혀있어 참 맑고 곱게 전해온다

빗방울 무늬에 대해 생각했다.

가지 끝에 있는 빗방울 ....잎을 거느리고 강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허공을 향해 흐르는 강물 소리도

잎사귀 사운대는 소리도 .... 빗방울의 호흡이라고.... 바위틈에 자라난 돌꽃도 산자락에 피어난 물안개도.... 빗방울의 무늬라고 .... 그 무늬를 먹고 자란 나무도 풀도 바람도 ....허공에다 꽃을 피운다고 ....

우리도 그 무늬로 호흡하고 있다고 .... 동그랗게 몸을 말아 물꽃을 피운다고 ...

쭉정이에 대해 생각했다.

베란다에 둔 마늘이 까맣게 오그라들었다 ... 그늘과 어둠이 쪼아 먹은 후 남긴 똥이라고 생각했다 ....

모든 것이 때가 있다고 .... 때를 놓치면 가진 것 몽땅 똥이 된다고 어머니, 지청구를 하신다 ....그렇지만 나는 햇살도 바람도 기억 속에서 살아있다고 .... 끝내 놓지 않은 당신의 속 깊은 초롱한 눈빛이 ....

이렇게 파릇한 생의 습성으로 남아 있어 ..... 스스로를 비워 그늘을 앉히고 어둠을 앉히는 거라고 ....

햇살과 바람의 기억이 연초록 봄빛으로 자라는 거라고 .... 나의 오래된 몸이 달그락거렸다고....

청개구리가 4차선 아스팔트 길을 횡단하는 풍경을 만났다.

청개구리한 마리가 폭짝 폴짝 4차선 아스팔트 길을 건넌다.... 고라니와 노루와 달리 너무 작아 더 위험한 청개구리는 ..... 세 번 뛰었다가 한 번 쉬고 두 번 뛰었다가 또 한 번 쉬고 ....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해도 중앙선을 넘지 못한다 .... 한 순간에 정지되어 버릴 것 같은 숨죽인 풍경,....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넌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인 것을..... 납작하게 엎드렸다 발바닥 땀나게 뛰어도 .... 길 건너 저쪽 청개구리 울음소리 아직 멀다 .... 길 건너서 닿아야만 하는 너의 사랑을 아프게 읽는다

언젠가 쓴 시 「길 위의 경전」이다

청개구리 한 마리가 보여준 시적 풍경이다. 나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서서 개구리를 응원한다. 다행히 차들의 왕래가 적어 개구리는 무사히 건넜지만 시간이 꽤 흘렀다. 세상을 건너는 일이 가끔 이처럼 위태로울 때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 시다. 우리 삶이 늘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는 일이다. 해가 바뀌는 것도 그렇고 아침에서 저녁으로 가는 것도 그렇고 입학하고 졸업하는 일도, 입사도 모두가 건너는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늘도 참으로 많은 건너기를 했다.

시는 내가 세상에 전하는 삶의 메시지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나 가치있는 의미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모두가 알고 보면 모두 소통의 결과물이다.

봄날 봄꽃을 보면서 문득 초등학교 짝꿍이 생각났다.

지지지 배배배 지지배배 지지배 지지배 .... 젖살오른 봄볕속에 도란도란 꽃들의 수다 들으면

.... 초등학교 그 가시내가 생각나 .... 그 가시내 바깥에 지천으로 피어나던 환환 웃음꽃이 생각나

.... 오늘, 한나절은 지지배배 그 가시내 웃음을 만날란다

쇠똥구리가 사라진 이유가 터랙터 때문이라면 이해가 쉽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말은 소 대신 터랙터를 쓰게 되고 그러면 일하는 소가 사라지고 ...그러면 또 쇠똥이 사라지고 그러면 또 보금자리가 없는 쇠똥구리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나비효과란 말도 그렇다. 1961년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주장한 것으로,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그렇듯 세상의 이치는 작은 원인이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아무 것도 아닌 사건이 점점 증폭 되면 예기치 못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통섭은 관계다.

관계를 눈여겨보는 일이 대상과 현상의 본질을 발견하는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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