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소리
청량한 소리
  • 남해안신문
  • 승인 2019.08.2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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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에세이] 임병식 수필가
임병식 작가.
임병식 작가.

 

여름이 중복허리를 넘어 팔월로 접어들면 노염은 절정에 이른다. 올여름도 다르지 않아서 오락가락하던 장마가 물러나니 마치 대기라도 한 듯이 뙤약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낮으로는 그야말로 찜통더위가 계속되고 밤으로는 열대야가 지속된다. 살아가면서 살을 에는 혹한도 견디기도 어렵지만 무더위도 결코 견뎌내기가 만만치 않다.

사람은 자연 앞에 무기력해진다. 추위는 물론 더위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무더위를 견디기가 어려우면 그 이름도 한증막, 땡볕더위, 가마솥더위, 불볕더위, 삼복더위, 폭서, 염천, 폭염 등 온갖 수사를 동원해서 일컫는다.

그 어휘 하나하나의 절댓값이 적어도 섭씨 30 몇 도를 쉬 넘기는 체감지수로 느껴진다.

더위 앞에서 피서를 생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바라는 소박한 꿈이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해수욕장이나, 녹음 우거진 계곡, 그 밖의 강을 가로지른 다리 밑을 차지하여 돗자리 들고 나가고픈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정자나무 아래서 배꼽을 드러내고 낮잠을 청한 사람이 많았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찬물에 발 담그고 수박을 먹거나 찬 물에 미숫가루를 타 마시며 부채를 부치면서 보내기도 했다.

호사를 누려보자고 작정한 건 아니지만 나도 올여름은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지내며 동서삼매경에 빠져 지내는데, 그 재미도 쏠쏠하다.

지금은 을유문화사에서 발행한 당시와 송시를 읽고 있는데, 여름날 전원의 풍경을 읊은 시정(詩情)이 여간한 별미가 아니다. 그 중에는 이런 시가 있다.

 

여름날 전원의 잡흥(夏日田園雜興)

 

누런 먼지 날리며 땀에 젖은 행객이

잠시 우리 집에 머물며 향기로운 우물물로 목을 축인다

문 앞의 반석을 자리로 빌려 드리는 것은

정오의 버드나무 그늘에 시원한 바람이 불기 때문이네.

黃塵行客汗如漿 少住儂家嗽井香

與門前盤石坐 柳陰享年正凉風

 

송나라 때 석호거사(石湖居士)라 불리던 범성대(范成大 1126-1193)가 어느 여름날을 노래한 시다.

좋은 시를 읽으며 오수에 빠져드는 맛이 그만이다. 이것 말고도 나는 때때로 시기적으로 이맘때, 어릴 적 보내던 여름날을 회상해 보기를 즐긴다.

여름 폭염을 견디는 꾀꼬리 가족의 모습이 정겹다.
여름 폭염을 견디는 꾀꼬리 가족의 모습이 정겹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더운 기운이 훅훅 끼얹은 때에 너른 산속 풀밭에서 풀무치와 여치를 잡던 일은 얼마나 즐거움이던가. 그 추억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당시 보면 배짱이나 메뚜기는 이른 여름부터도 모습을 보이지만 이놈들은 덩칫값을 하려는지 느지막이 폭염이 내리 쐬는 때라야 모습을 나타냈다.

아니, 모습은 철저히 숨기면서 여치가 ‘쓰루르르 쓰루르르’울면 풀무치는 그저‘푸드드득’ 하고 힘찬 날갯짓을 하며 한낮의 정적을 깨뜨렸다.

이놈들이 노래하고 나는 힘찬 날갯짓은 적막한 산천을 울려놓았다. 그 소리가 들리면 또래 아이들은 녀석들을 잡아보려고 날뛰었다. 하지만 잡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소리 나를 곳을 향해 다가서면 어느새 알아차리고 30,40미터는 족히 넘게 날아가 버려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끈질기게 추격하면 비월거리는 점점 짧아지고 내려앉은 것도 처음엔 다소 사뿐하게 자세를 취하지만 나중에는 기력을 잃고 처박혔다.

이때가 잡는 적기였다. 지쳐 있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하나 이놈을 잡고서도 문제는 있었다. 가둬 두려면 튼튼한 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보통 보릿대로 만든 연약한 여치 집으로는 어림도 없어서다.

그래서 놈을 가둘 때는 튼튼한 댓살이나 철사를 사용해야만 했다. 당시 나는 여름철만 되면 이놈들을 꼭 한두 마리씩 잡아와서는 손수 만든 조롱에 가두어 놓고 지켜보았다.

풀무치는 가둬놓으면 아예 소리를 내지 않지만, 여치는 그렇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도 며칠이 지나면 본성을 드러내어 두 다리로 날개를 비벼서 소리를 냈다. 이러한 여치소리를 들으며 장독대 옆 펌프 물로 목물을 하고나면 무더위는 거뜬히 물리칠 수 있었다.

한데, 예전에는 여름철만 되면 골목길 큰 나무에서 매미들이 귀청이 떨어져라 울고, 야산 초입에서는 풀무치나 여치가 합창을 하며 산속 정적을 깨뜨렸는데, 지금 도회지에서는 매미 소리는 여전하지만 여치소리는 들을 수가 없어서 여간 아쉽고 그리워지는 게 아니다.

어디서 그런 정겹고 우렁찬 소리를 들을 수는 없을까. ‘푸드덕’ 나는 소리와 ‘쓰루르르, 쓰루르르’ 하고 한낮의 정적을 깨던 그 소리를 만나볼 수 없을까.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발품 팔아 한번 찾아 나서고 싶다.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한창 기승을 부리는 이 삼복더위도 한결 수월하게 넘길 수 있을 텐데….그립기만 하다.

하지만 기승을 부리는 여름도 멀지 않아서 물러날 것이다. 해서 나는 더위도 얼마나 가랴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더운 바람 뿜어내는 선풍기를 끌어안고 옛날 많이 듣던 추억의 소리를 떠올리며 한여름을 난다.

 

임병식 작가는 1989년 한국수필에 ‘천생연분’으로 등단해, 그동안 10여권의 작품집을 펴냈다. 올해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임 작가의 작품이 수록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한국수필작가회장, 여수문인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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