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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과 상상하는 힘
생각하는 힘과 상상하는 힘
  • 남해안신문
  • 승인 2019.08.06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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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47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다.

이 명제의 의미는 감각에 의해 생성된 정보는 믿을 수 없고, 이성적 추리에 의해 판단한 정보만이 확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생각의 주체가 곧 존재의 주체가 된다는 이론인데 그러면 생각이 본질적인 것이라면 상상은 뭘까?

생각과 상상은 둘 다 마음의 작용으로 머릿속으로 그린다는 의미다.

즉 생각은 헤아리고 판단하고 인식하는 것 따위의 정신 작용, 혹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물이나 일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일이다

마음속으로 헤아리거나 고려하거나 마음속으로 판단하거나 여기는 일이다

상상은 현재의 머릿속에 없는 표상을 만들어 내는 마음의 작용, 혹은 아지 일어나지 않은 일이나 존재하지 않은 대상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일이다.

오늘날 생각과 상상은 존재의 자존을 드러내는 가치요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고 보면 어떤 말을 들어도 좋지만 듣지 말아야 할 말 중의 하나가 ‘저 인간은 생각이 없다’는 말일 것 같다.

생각이 없다는 말은 곧 눈앞의 나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너 혹시 아니?

봄 앞에 서면

우리 모두 꽃이란 것을

너의 안쪽에 날아간 바람의 말이

너의 안쪽에 닿은 햇살의 말이

꽃이란 것을

내 안쪽에 날아온 바람의 말이

내 안쪽에 닿은 햇살의 말이

꽃이란 것을

너 혹시 아니?

너 앞에 서면

나도 꽃이란 것을 -신병은<개화>

 

개화는 ‘꽃이 피다’라는 뜻이다.

꽃이 피는 행위도 알고 보면 존재를 드러내는 꽃의 화법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제마다 생각이 있고 제마다의 화법이 있다. 꽃의 화법, 바람의 화법, 물의 화법, 어둠의 화법, 나무의 화법, 비의 화법, 그림자의 화법, 그늘의 화법, 햇살의 화법이 있다.

화법에 의해 존재가 규명되고 있다.

 

나 이제 가만히 있을래요

보지도 듣지도 않을래요

아무 것도 아닐래요

그간에 참 용케도 잘 살았어요

아니 잘 견뎠어요

옥상 빨랫줄에 매달려 펄럭였거나

혹은, 키 큰 나무처럼 무성하게 살랑거렸어요

한낱, 그깟, 이란 부사어는 쓰지 않을래요

누가 뭐래도 열심히 살았거든요

나, 이제 고요한 바람소리로 돌아갈래요

고요하게 떨릴래요

나, 이제 나를 지워갈래요

아무도 모르게 그늘 속 그늘 되어 살랑거릴래요

바람 속 바람 되어 펄럭일래요

어둠 속 어둠 되어 스며들래요

가만히 가만히 내 안부를 물을래요 -신병은 <안부를 묻다>

 

가만히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화법의 시다.

존재의 본래는 없는 것이었고 바람이었고 어둠이었다. 그동안 잘 열심히 살았고 또 열심히 잘 견뎠다.

그러고 보면 나의 시도 생태주의적 사유를 밑거름으로 하고 있다. 생태주의는 관계, 함께, 체계, 과정 등 위계적 질서를 설정하지 않은 평등한 사고의 관점이다.

얼마 전에 최진석의 노자 인문학을 접했다.

세계는 본질이나 중심이 아닌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노자사상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복원해야함을 강조한다. 생각하는 힘을 회복하는 길은 기존의 신념, 가치, 이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계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신념과 기준에서 벗어난 ‘나’로 돌아가야만 생각하는 힘, 즉 인문적 통찰력이 생긴다고 보았다.

이말은 자신이 일반명사에 함몰되지 않고 고유명사가 되는 것이다.

고유명사 즉 메타언어로 산다는 것은 자기 혁명을 뜻하면서 각자 ‘사는 맛’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본질보다 관계를 보라.....덕은 지식이 아니라 동력이다 ......도는 인간의 생각으로 닦은 길이다 ....생각의 틀을 버리는 것이 무소유다 .....아무것도 아닌 것의 위대함 ....자기표현이 안 되는 공부는 끊어라 ....살아있는 나무만이 흔들린다 ....나는 타인의 타인일 뿐이다 ... 물러서면 앞서고 숨으면 빛난다 ....보여지는 대로 보라 .....일반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존재하라 .....자기로부터의 혁명 .....표현이 되지 않는 공부를 끊어라 등 한구절 한구절을 되짚어 생각해보면 여기에 시창작의 키워드가 다 망라되어 있었다.

그동안의 나의 시창작 강의가 이 책에 고스란히 요약되어 있었다.

단번에 내 생각의 틀을 깨고 생각의 힘을 불러일으켜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모든 창작은 생각의 힘이면서 상상의 힘이다. 그 힘을 기르기 위한 수행의 과정이기도 하다.

생각의 힘으로 스스로를 비춘 후에야 품격있는 나의 존재를 헤아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고유명사로 살아야 한다.

쉽게 말하면 혼자서도 잘 놀아야 한다.

기존의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도 그렇지만 인간에게 필요한 게 뭔지 어떤 생각으로 살아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삶에 대한 이해다. 그것이 본질을 들여다 보게 되는 힘이 되고 미래를 보는 힘이 된다.

부엘은 네 종류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한다. 돌처럼 그냥 살아가는 인간, 식물처럼 살아가는 인간, 동물처럼 느끼는 인간, 그리고 학자처럼 이해하는 인간이 그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제대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인간이다.

제대로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해서는 관계의 의미망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관계속에서 존재가 규명되고 관계속에서 삶의 의미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관계의 의미망이 생각과 상상의 의미망이면서 존재의 의미망이다.

 

먹지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버리는 /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다 - 서안나 <모과>

어딘가 모르는 곳에 /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 / 나 한 사람으로 하여 / 세상은 다신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 나태주 멀리서 빈다

덤불 속 작게 작게 숨어있다고 없는 것이 아니야 / 보아 주지 않는다고 꽃 아닌 것이 아니야 / 너의 이름 너의 빛깔 너의 향기 눈감고도 볼 수 있어야 - 신병은 풀꽃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내용이 시의 내용이 된다.

조선의 실학자 박지원은 자연과의 단절에서 우울증을 겪었다고 한다. 자기이면서 자기가 아닌 실존적 조건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거리에 나와 신선이 되겠다는 바람의 사나이를 만나고, 분뇨장수를 만나고 건달을 만나고 민옹을 만나 우정의 정치학을 편다. 그 결과로 나온 작품들이 양반전, 호질, 민옹전, 신신선전, 예덕선생전이었다. 뭔가 새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본인의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글쓰기는 생각과 상상, 그리고 표현을 통해 자기자존을 확인하게 된다.

 

세 끼 밥도 못 챙겨먹던 때에

벌레랑 새들이랑 함께 먹고 살자고

고시래 고시래

까치도 묵고 살아아제

하나는 꼭 내비둬야 된다이

허공에 새긴 아버지의 착한 어법

까치밥 지었습니다  신병은 <까치밥>

글쓰는 사람의 자세는 인간중심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자연 합일적가치관을 가져야한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의 세포포써 자연 이법이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인지할 수있어야 한다.그 가운데서 생명의 흐름을 인지하는 순환의 윈리를 인지해야 한다. 즉 자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 관계성을 회복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생각해 낼 수가 있다.

생태주의적 사유 또한 자연의 상호 연관성를 중시하고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 조화를 믿는다.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시창작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모든 존재들이 인간과 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고, 자연에 따라 사는 사람이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람이 땅을 본받는다는 것은 땅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따르기 위해서’ ‘알아야 한다’

그래서 몸의 사유, 즉 감각적 사유에 의한 생각과 상상의 힘이 창작의 첫걸음이 된다

그래서 또 눈길 닿는 곳마다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읽는 생각의 힘을 키워가야겠다.

 

눈길은 참 좋은 길이죠

참으로 먼 길이면서 가까운 길이죠

가만히 내가 나를 따라 나서는 마음의 길이죠

눈의 길은 선이 되기도 하죠

그리움이죠

햇살의 언어로

바람의 언어로 속삭이는 길이죠

눈길 닿을 때마다

살그머니 체위를 바꿔 가슴에 올라서는

잔잔한 설렘

그 너머로까지 번져가는 순백의 파문이죠

닿기만해도 착하고 맑게 꽃이 피죠 -신병은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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