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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피어나는 시의 봄이다
꽃처럼 피어나는 시의 봄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9.04.18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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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44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를 줍는 사람이다.

시인은 일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늘 만나는 대상을 다르게 생각different thinking 하는 사람이다.

다르게 본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보는 동의어다.

새롭게 보려면 어렵지만 다르게 보는 것은 쉽다.

파블로 피카소도 스티브잡스도 아인슈타인도 에디슨도 있는 것을 그대로 보지 않고 상식을 깨고 다르게 보는 힘을 지닌 분들이었다. 불가능에 도전하고 상상한 것을 실현시키려는 사람이다.

하늘에 있는 구름의 길이를 재어본다든지, 하늘 가장자리에 자신의 사인을 한다든지, 먀셀 뒤상 처럼 소변기를 미술관으로 옮겨 본다든지, 달걀을 품어본다든지, 시간을 공간적인 개념으로 바꾸어 본다든지, 미술관에서 잠을 잔다든지, 물위를 걷는 기적의 체험을 하게 한다든지 한결같이 상식을 깨뜨리며 이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창조해낸다.

공자는 오십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하여 하늘을 뜻을 헤아렸고, 육십이 되어서는 이순耳順이라하여 남의 뜻에 순종할 줄 알면서 세계의 뜻을 헤아렸다고 했다.

그렇게 보면 시를 쓰는 마음은 知天命이면서 耳順의 마음일 것이다.

하늘의 마음을 헤아리고 꽃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무와 풀, 햇살과 바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결국은 나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이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내 마음에 따라 행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칠십의 나이 從心으로 나아가게 된다.

공자의 마음이 시의 마음이다.

시 쓰기는 삶의 지혜를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그 깨달음은 주변의 삶과 현상을 통해서 발견하는 일이다. 즉 재발견이다.

 

봄이다.

꽃 멀미, 꽃비린내가 나는 봄이다.

지천에 꽃이다.

봄이면 나의 시도 봄이 피듯 꽃이 피듯 피어난다.

그래서 ‘봄, 피다’‘라는 연작시도 50여편에 이른다.

봄의 시는 봄을 잘 들여다보고 발견한 삶의 풍경들이다. 거기에 묘사의 힘이 곁들여졌다. 묘사는 창의적 글쓰기를 위한 사고확장의 기법이기 때문이다.

나의 <봄, 피다>의 시편들은 서경적 시점에서 서정적 시점으로 옮겨가는 길목에서 만난 시들이다.

여기에 망원경의 시점과 현미경이 시점이 동원된다.

로버트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에서 생각을 독특하게 하는 도구로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등 13개의 도구를 소개하고 있다.

이 도구 중에 가장 첫 번째로 ‘관찰’을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동적인 보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보기며 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는 것이라 했다.

이를 통해 ‘일상적인 것의 장엄함’을 이야기한다.

나의 <봄, 피다>는 해마다 봄이 되면 ‘겨울봄비’를 맞고 피어난 일상적인 것들의 장엄함일 수 있다.

 

한 잎의 생각은 비 젖어 무성한데

아직 떠나지 못한 것들

한 올의 바람이라든지

한 잎의 그리움이라든지

견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순간이었을까를 생각하는데

따뜻한 겨울봄비 내려 마음의 끈 느슨히 풀고

겸손하게 무릎 적셔 제자리를 잡는

저 겨울나무의 기다림은

푸른 잎과 꽃에 대한 기억을 다지려는

허공의 겨울나기가 아닌가요

떠나지 못한 것들이 뿌리내린 그리움이 아닌가요

아주 가끔은 눈송이 섞여 날리는

겨울봄비,

하얀 허공에 매달린 초록의 꿈이 아니던가요 ('겨울 봄비')

 

겨울봄비란 어휘는 다분히 역설적이다. 그러나 그 속에 봄비보다는 더 깊고 새록한 시적 의미를 안겨둘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어휘다.

겨울비도 아니고 봄비도 아닌 겨울봄비다.

푸른잎과 꽃에 대한 기억을 다지려는 허공의 겨울나기면서, 그리움이다. 그래서 겨울봄비는 허공에 매달린 초록의 꿈이 된다.

겨울봄비가 내리면 곧장 <입춘>이 온다. <입춘>은 봄이 온다는 절기중의 하나지만 내가 생각하는 ‘입춘’은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이 서로 따뜻해지는 날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떤 상황에서 소통하는 다른 상황을 보는 눈이 ‘유추’다. ‘유추’는 언어의 이종교류에서 가능한 다른 생각을 탄생시키는 원리가 된다.

 

오늘도 햇살 속에 시린 맘을 내 걸었습니다

한겨울의 생각이 삐죽삐죽 고갤 내밀고

아지랑이처럼 그대 향한 그리움도 따뜻해지면 한달음에 달려가겠습니다

그 때는 서로 따뜻해져야죠 (봄, 피다 -입춘)

 

입춘은 24절기의 첫 번째로 봄에 접어든다는 절후다. 입춘이 봄을 맞을 채비를 하는 날이지만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사이가 따뜻해져야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정겨운 세상의 봄이 오는 소릴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입춘이 지나면서 언 땅이 풀리고 민들레 노란 기지개 켜는 소리며 돌미나리 파란 함성이며 연초록 봄빛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봄의 신명이다.

 

언 땅 풀리는 소리 앞세워

봄 햇살이 겨울 문턱을 넘어 떼 지어 달려오는 사이로

여기저기 금방이라도 고개 내밀 것 같은 맑고 고운 숨소리

민들레 노란 기지개 펴는 소리며

돌미나리 파란 함성이며

앞서 달려온 쑥들의 턱닿는 숨소리며

막다른 골목에서 갈팡질팡하는 겨울바람 소리며

더는 못 참고 속엣말 조잘대는 개나리 노란 옹알이며

개울가로 달려간 연초록 봄빛 소리,

지난 가을 마른 잎으로 떨어져

속 깊어져 돌아오는 저 환한 소리를,

따스한 생의 길목으로 열리는 소리를 엿들어보셔요 (들어보셔요)

 

봄이 되면 땅도 고슬고슬해지면서 흙내음도 달라진다.

꽃들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맑아지고 밝아지는 계절이다.

이맘 때면 초등학교 그 가시내가 생각나는 것은 종달새의 울음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지천에 피어는 웃음꽃, 그 가시내의 웃음꽃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지천에서 피어난 봄꽃들의 웃음소리다.

 

지지지 배배배 지지배배

지지배 지지배

젖살 오른 봄볕 속에 도란도란 꽃들의 수다들으면

초등학교 그 가시내가 생각 나,

그 가시내 바깥에 지천으로 피어나던 환한 웃음꽃이 생각나

오늘, 하루 한나절은 지지배배 그 가시내 웃음을 만날란다 (봄, 피다)

 

봄이 되면 너도 꽃이 되고 나도 꽃이 된다.

한때 어두워졌던 사랑도 꽃이 되어 환하게 밝히는 봄이다.

한때 저물었던 사랑도 다시 피고 어두워져 뭉개진 사랑도 피어난다.

모두가 기적처럼 다가오고 그래서 여기 저기 온통 감탄사가 연발한다. 의자 위 가부좌를 햇살의 숨소리도 새롭고 새로운 봄바람을 데리고 새로운 물소리를 데리고 새 잎과 함께 새 봄이 온다.

긴 겨울 묵언의 힘으로 잎이 피고 꽃이 핀다. 그래서 쓰레기도 꽃이 되는 봄이다.

 

롯데시네마에서 한재 터널 방향 산비탈에 매화가 활짝 피었다

그중 유달리 환하게 핀 매화가 있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웬걸 스티로폼 하얀 조각들이 저도 꽃이라고 피어있다

 

아, 분명 봄이었어

쓰레기도 꽃이 되는 봄이었어 (봄, 피다)

 

봄날 아침에 한재터널을 지나며 교통사고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이 걸렸다. 그것 보면서 살짝 단어 두 개를 비틀어 봄맞이 시를 한편 주웠다. 일상을 잘 들여다보면 모든 현상과 대상 속에 새로운 삶의 모습이 안겨있다. 이 또한 언어의 이종교류에 의한 낯선 생각을 탄생시키는 출발점이 된다.

다음의 시를 보면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줍는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한재를 돌아 해양수산청 방향으로 가던 꽃샘바람과 여서동 쌈밥골목을 돌아 나온 매화꽃눈이 충돌한 현장을 본 복격자를 찾습니다. (봄, 피다)

 

봄의 전령사는 꽃이지만 그보다 먼저 햇살이다. 체온을 데운 햇살이 나뭇잎에 앉으면 나무는 햇살의 무게로 잠든 저를 깨운다. 뿌리에 내려둔 초록의 기억을 피워 올린다.

그때 나무는 잎이 피고 꽃이 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핀다’는 의미는 또 너로부터 나에게로 닿는 것이어서, 속 뭉클한 떨림이어서 가만히 서로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래서 봄 햇살을 받은 사람의 얼굴도 발갛게 달아올라 꽃피는 것이다.

나에게 봄은 시를 줍지 않고, 먹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는 신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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