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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씨가 된다
말이 씨가 된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9.03.07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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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43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주는 것 없이 괜히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나기만해도 기분 좋은 사람이 있다.

분노케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감을 주는 사람이 있다.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는 말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가 먼저 다가오게 만드는 호감형 말투도 있다.

물론 첫인상의 문제지만 그 첫인상을 좌우하는 첫 번 째도 말투다.

말투 하나가 일을 꼬이게 하는가 하면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이 의외로 잘 되기도 한다.

말투의 힘이다,

머릿속에 있는 관념어보다는 현장성이 있는 말이 힘 있는 말이다.

시어는 말투의 힘이 있는 말이어야 한다.

나 보다는 먼저 남을 생각하는 배려가 있는 말, 상대방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말, 청자로 하여금 스스로 여백을 만들 수 있는 말, 맺힌 관계를 술술 풀어지게 하는 말, 다정하고 솔직하고 정직한 내 심정의 말이 힘이 있는 말이면서 살아 있는 말이다.

그래서 시어의 온도는 36.5도의 체온이 담긴 따뜻한 말이다.

 

그려

동행이란 말보다

함께 더불어 라는 말보다

더 정겨운 말이 있지

정겹다 못해 뚝뚝 넘쳐흐르는,

항꾼에 어울려 항꾼에 춤을 추는

항꾼에 라는 그 말

어느 말이 이보다 더 따뜻하랴

어느 말이 이보다 더 넓으랴

어딜 가나 반갑고

어디에서도 곁이 될 수 있는 말

항꾼에 꿈을 꾸고

항꾼에 웃고

항꾼에 고요하고

햐, 이보다 더 신바람을 피울까

눈부시게 눈이 부시게

세상을 열어주는 질 좋은 그 말,

환하게 웃을 수 있겠다

환하게 꽃 필 수 있겠다

그리하여 사람이 꽃이 되는 세상

우리,

항꾼에 빛나요

항꾼에 환해요 -<항꾼에>

 

‘항꾼에’혹은 ‘항꾸내’란 말은 ‘함께, 더불어’라는 말의 방언이다.

그럼에도 이 말은 ‘함께, 더불어’라는 말보다는 더 정겹고 더 따스하고 더 친근한 말의 무늬가 있다.

말의 무늬가 사람의 가슴을 무늬지게 한다는 것이 시어가 지닌 말투의 힘이리라.

시의 화법은 세상을 바꾸는 말투, 나의 존재를 빛나게 하는 말투다.

그리고 말하지 않고 말하는 화법이다.

인문학이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인문적’으로 사고할 능력을 기르는 데 있어야 한다면 그 인문적 상상력으로 나아가게 하는 화법이다.

그래서 시의 화법은 지식의 표현이 아니라 선순환적 삶으로 동일화시키려는 동력이 된다.

좀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생각의 틀을 버린 데서 얻는 무소유의 자리에서 만나는 깨달음의 화법이다. 유위有爲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세계를 ‘봐야하는 대로’ 보는 것으로 과거에 묶여 있는 사람의 화법이라면, 무위無爲는 어떤 기준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세계를 ‘보여지는 대로’ 보는 것이다. 어느 것에도 묶여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화법으로 변화하는 진실과 접촉할 수 있는 화법이다.

자연어를 찾는 일이다.

‘지금 장난 하냐, 나이 값 좀 해라, 나가 죽어, 꼴값하네, 왜 사냐, 너 그렇게 살지 마라, 겨우 이게 다냐’와 같은 말과 말투는 듣는 사람의 기분을 더럽게 하는 말이면서 듣다보면 자존감도 깡거리 무너지게 한다.

시의 화법은 비난과 처벌의 힘이 가해지는 화법이 아닌, 협력의 힘과 건강한 힘을 발휘하는 화법이면서 삶의 선순환을 가져다주는 화법이다.

즉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화법이다,

시의 화법은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의 중심이 되게 하는 화법으로 자존감을 높여주게 된다.

대상의 주체성, 존재성, 존엄을 빛나게 해주는 말이다.

그래서 말의 각도가 중요하다.

대상의 어느 부분을 들춰 이야기해야 가장 빛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언 땅 풀리는 소리 앞세워

봄 햇살이 겨울 문턱을 넘어 떼 지어 달려오는 사이로

여기저기 금방이라도 고개 내밀 것 같은 맑고 고운 숨소리

민들레 노란 기지개 펴는 소리며

돌미나리 파란 함성이며

앞서 달려온 쑥들의 턱닿는 숨소리며

막다른 골목에서 갈팡질팡하는 겨울바람 소리며

더는 못 참고 속엣말 조잘대는 개나리 노란 옹알이며

개울가로 달려간 연초록 봄빛 소리,

지난 가을 마른 잎으로 떨어져

속 깊어져 돌아오는 저 환한 소리를,

따스한 생의 길목으로 열리는 소리를 엿들어보셔요 -<들어보셔요>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나는 풍경들을 봄의 정서에 맞게 따스한 어법으로 풀어본 시다.

햇살의 숨소리, 연초록 봄빛, 돌미나리 민들레의 기기재 등 생의 길목에서 만나는 봄의 시각을 청각으로 바꾸어 봄을 맞는 생명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형상화하여 겨우내 속 깊어져 다시 돌아오는 봄의 서정을 만나게 된다.

생의 따스한 길목으로 열리는 소리의 풍경들이다.

일상의 어법을 살짝 비틈으로써 시적 표현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정원이 자란다, 나는 내 가슴에 숨어 나를 훔쳐보곤 했다, 마음의 능선이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다, 너 떠난 발자국 소리 문득 문득 아프다, 사내 하나가 내 처마 밑에 서있다’ 등의 어법을 보면 분명 일상의 화법에서 살짝 벗어나 있지만, 기존의 틀에서 맛볼 수 없는 언어의 무늬를 만날 수가 있다. 시의 화법은 현실과 현실이 만나 현실을 뛰어넘은 새로운 화법을 생성해낸다.

가령 ‘꽃씨우체국’이란 말을 떠올려보자.

그 말 속에 어떤 의미가 어떤 화법으로 안겨있는지를 들여다보면 ‘두근거리는 그리움이 들어있고, 지축을 흔드는 심장소리가 들어 있고, 부풀어 오른 편지지가 들어있고, 꽃의 씨방을 닮은 어법이 들어있고, 꽃의 혀를 닮은 달콤한 언어들이 들어있다’ 등등 다양한 의미의 화법으로 확장되어가게 된다.

 

오늘도 햇살 속에 시린 맘을 내 걸었습니다

한겨울의 생각이 삐죽삐죽 고갤 내밀고

아지랑이처럼

그대 향한 그리움도 따뜻해지면 한달음에 달려가겠습니다

그 때는 서로 따뜻해져야죠 -<입춘>

 

시어는 기를 살려주는 언어다, 이런 언어를 우리는 둥근언어 혹은 완곡어법이라고 한다.

완곡어법 [euphemism]은 그리스어로 ‘좋은 표현법’이란 뜻이다.

우회적 표현은 듣는 사람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말을 쓰는 표현법이다.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단도직입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암시하거나 간접적으로 돌려서 나타내는 것을 우회적 표현이라 한다.

남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말을 부드럽고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수사법을 가리킨다. 예들들면 기업들이 ‘해고’ 대신에 ‘구조조정’이나 ‘기구축소’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거나, ‘길 비켜주세요’ 대신에 ‘실례합니다’로 표현한다거나, ‘시험에 떨어졌다’를 ‘명단에 없습니다’로 표현하는 것 등의 표현이다. 완곡어법은 예의를 지키거나 감정 자제를 위해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화법은 일상에서 널리 적용되면서 인간사회를 훨 따뜻하면서 정겨운 사회로 이끌어준다.

시어도 마찬가지다.

 

지지지 배배배 지지배배

지지배 지지배

젖살 오른 봄볕 속에 도란도란 꽃들의 수다들으면

초등학교 그 가시내가 생각 나,

그 가시내 바깥에 지천으로 피어나던 환한 웃음꽃이 생각나

오늘, 한나절은 지지배배 그 가시내 웃음을 만날란다 -<봄, 피다>

 

이 시도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봄의 서정을 있는 그대로 청각이미지로 풀어놓은 시다.

‘지지배 지지배배’는 봄의 들녘에서 만나는 종달새의 소리이면서, 어린 소녀를 뜻하는 중의적인 의미다. 봄이 되면 지천에서 피어나는 꽃과 초등학교 어린 소녀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오브랩시켜 봄의 서정이다.

지금은 옛 풍경이 되었지만 학교 교과 성적통지표에 과목성취도가 수, 우, 미, 양, 가로 표기되는 때가 있었다. 전 과목 ‘수’를 받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가’를 받는 학생이 있었다. 그러나 이 성취도의 의미를 보면 완곡어법의 극치를 엿보게 된다.

‘秀 -빼어나다, 優 -넉넉하다, 美 -아름답다, 良 -좋다, 可 -옳다’ 등 의미를 챙겨보면 하나같이 ‘잘 한다, 못 한다’는 이분법적인 의미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잘한 학생이나 못한 학생이나 두루두루 기를 살려주고 힘을 북돋아 주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시는 직설법이 아닌 함축적인 완곡어법을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좋은 시는 사람의 마음에 여백을 만들고 감동의 무늬를 지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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