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고 말하는 시적 표현법
말하지 않고 말하는 시적 표현법
  • 남해안신문
  • 승인 2019.01.1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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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42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인형은 주인공 노라를 뜻한다. 노라는 자기 삶의 정체성을 모른 채 살다가 남편의 위선적인 인간성에 실망을 한 나머지 제 삶을 찾아 독립하기로 결심한다. 즉 남의 삶을 위한 수사적인 삶에서 벗어나 제 삶의 정체성을 찾아 살겠다고 다짐을 한다.

이 희곡의 키 워드가 바로 인형이다.

그만큼 시든 소설이든 키워드의 상징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지훈의 <승무>의 키 워드는 두말 할 필요없이 <승무>다. 승무는 출가한 스님이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 때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추는 불교의 의식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의 키워드 <승무>는 ‘인간 고뇌의 종교적 승화’라는 상징의미를 갖게 된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아.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싶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이렇게 볼 때 상징의미는 작가 또는 시인이 그 대상을 새롭게 읽어낸 의미다.

창작은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읽은 의미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시는 상징이다.

시를 비롯해 모든 문학작품은 내용이 첫 번째이고 표현은 그 다음인데 특히 시의 내용은 상징이며 그 상징을 이해하는 것이 시를 이해하는 관건이 된다.

상징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숨겨두는 것이라면, 비유는 시인과 대상의 두 개 이야기를 나란히 전개하는 것이다.

둘 다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일 것이다.

문제는 언어예술임에도 언어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느낌을 제대로 풀어낼 수 없을 만큼 언어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이쁘다, 밉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달다, 맵다, 슬프다, 곱다, 담백하다, 짜다..... 등 지극히 제한적인 언어로 표현하므로써 오히려 현장에서 받은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언어적 표현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이미지다.

이미지가 바로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이다.

시인은 시 속에서 벌써 다 말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이런 사실을 내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시 속에는 감춰진 그림이 많다. 읽는 이에게 생각하는 힘을 주게 되며 시인이 말하지 않은 느낌과 의미를 생생하게 전해 주게 된다.

시에서 하나하나 모두 설명하거나 직접 말해 버린다면 그것은 시라고 할 수 없다.

좋은 시는 직접 말하는 대신 읽는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발목 베인 벼들의 파란 함성..... 추수 끝난 빈 들녘에 때 아닌 생명이 출렁댄다..... 곧 불어 닥칠 찬바람에 끝내 주저앉아 버릴 운명....애초부터 기약 없는 출발이란 것도 잘 알지만..... 가진 것 깡거리 내어준 하찮은 것들도 딱 한 번 아름다운 마침을 위해 몸을 정갈히 한다

제 한 철을 알기라도 한 듯 벼는 파랗게 죽는 법을 알아....... 마지막 몸을 열어 늦가을 황량한 들녘에 부활의 꽃을 보시한다 -<가을 들녘에서>

 

추수 끝난 이맘 때의 가사리 들녘에 가보면 알 수 있다. 벼 벤 그루터기 마다 파랗게 벼의 어린 싹을 볼 수 있다. 꼭 다른 농작물을 심어놓은 듯 온 들녘이 푸르다. 그 풍경속에 안겨있는 떠나는 것들의 마지막 모습, 가진 것 깡거리 내어주고도 주저앉는 일 없이 아름다운 생의 마침을 준비하는 ‘죽는 법’을 보여준다.

시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을 데려와 사물이 대신 말하게 한다. 즉 시인은 이미지(형상)를 통해서 말한다. 한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과 같다.

이미지에 대한 관심은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치던 사물을 찬찬히 살피게 해 준다.

평소에 비축해둔 이런 경험이 시창작시 적재적소에 나도 모르게 출력이 되는 것이다.

이점에서 대상에 대한 솔직하고 진실한 관심이 한편의 시가 된다.

현실이야말로 그 사람의 가장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요즘 시가 지겹다고 하는 것도 시에 현실감과 생동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시는 그 시인의 현실이 반영되어있어야 한다.

바로 현실의 자기경험이 시의 자산이다.

 

아, 여기 뭔가 착한 냄새가 나!

교무실 삐긋이 고갤 내밀어 선 남학생의 한마디에 순간 환해진 후레지아 노란 꽃송이, 그 말 한마디에 이내 교무실이 환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딘가에 숨어있던 후레지아 환한 말들이 한순간에 달려나온 거다.

그늘 깊은 세상도 햇살 같은 말 한마디에 너도 나도 이내 환해지는 기억의 고요한 화법, 오래토록 접고 접어 간직한 착한 화법이 팔랑대며 날아오른 거죠 -<착한 화법>

 

마늘을 깐다.

반 이상이 쭉정이가 되어버린 마늘을 골라 까면서 무릇 모든 것이 때가 있는가 보다고, 햇살도 바람도 기억 속에서 저렇듯 파랗게 살아있다고, 썩어가면서 속 깊숙이 살아있는 초롱한 눈빛을 보면서 이렇듯 속 파릇한 생의 습성이 있어 아픔을 다스리고 스스로를 견딘다는 것, 주름지고 접혀있던 햇살과 바람의 흔적이 연초록 봄빛으로 나오는 것임을 알았다 -<기억의 힘>

 

시인은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노래한다. 그런데 그 속에 시인의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이 아름다워도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겉꾸밈이 아니라 참된 마음이 깃든 시를 써야한다. 눈앞의 사물이 바로 진짜시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가짜시가 된다

대상에서 다양한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은 관점을 달리하는 것이다.

하나의 사물도 보는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사물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어떤 사물 위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공감과 공명의 폭을 넓혀줄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사물이 나를 가르친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사물 위에 마음을 얹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시를 읽다보면 시는 사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밥물 넘는 소리 : 그것은 나의 공복을 달래는 따뜻한 소리, 넘치는 사랑의 서술어다

동백꽃 : 놓아버린 순간에 저를 한 번 더 피웁니다

툭툭툭 저를 버리고 세상 편하게 드러누운 저 꽃들의 고요한 웃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이 지는 것을 다시 꽃 피웁니다.

 

좋은 시는 남들이 생각한 대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쓰인다. 시인은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 그래서 사물을 한 번 더 살펴보게 해 준다. 어느 날 그것들을 주의 깊게 살펴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면, 사물들은 마음속에 담아 둔 이야기들을 시인에게 건네 오기 시작한다. 시는 사물이 시인에게 속삭여 주는 그 이야기를 받아 적은 것이다.

넓은 마당에 고슬고슬한 바람 한 짐 부려두었어요

채송화 접시꽃 봉숭아 꽈리꽃 살랑대며 자라는 토담 아래로 푸른 등지느러미 세워 흐르는 개울에는 맑은 동심이 아직 물을 닮아있어요. 텃밭에서 차려낸 저녁 배불리 먹고 침상에 누우면 머리에서 발끝으로 맑은 물소리가 들렸어요. 피라미들 유영하는 개울은 하늘에도 흘렀어요. 종이배를 접어 띄울 즈음, 오래오래 정박했던 내 이름도 닻을 올려 싱싱한 지느러미 세워 푸른 여름밤을 싸돌아 다녔어요

닫혔던 나를 열어주는 물젖은 기억들, 이제사 바람은 제 자릴 잡는 법을 일러주었어요

-<계전리>

 

시는 시인과 같다.

그림 속에 그 작가가 보여야하고 시 속에는 시인이 보여야 한다.

내 시 속에는 내가 보일까 안 보일까? 누가 봐도 나의 시 같다는 생각을 할까? 안 할까?

스스로 반문해 보면서 거짓말 하지 않고 정직해지려 한다.

시인은 평소 말과 행동을 가려서 할 줄 아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평소의 생각이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이미지화되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 시인이 말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다 말하지 않고 그리고 돌려서 말한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대신 스스로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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