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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로도 저 많은 꽃을 피우시네
그림자로도 저 많은 꽃을 피우시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8.12.21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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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41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엊그제 우리지역 가장 역사가 깊은 문학동인인 「갈무리」의 동인지 <그림자로도 저 많은 꽃을 피우시네>출판 기념회가 있었다. 여수의 섬기행 시집에 이어 갈무리의 두 번째 기획동인지로 이번 기획은 사찰기행 문집이다.

11명의 시인과 1명의 작가가 동참하여 전국의 사찰을 돌아본 사찰기행 동인지이지만 그들의 문학적 이해는 종교적인 색채보다는 자연과의 함께 하며 함께 깊어지고 넓어진 인간의 내면풍경을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들의 생각문법이 공간과 시간, 그 너머의 것을 응시하는 열정에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게 된다. 닿고자 하는 것 그 너머를 응시하는 모든 대상을 향해 열려있는 감각과 사랑의 결실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상 너머에 있는 것을 향해 열려있는 감각과 사랑, 이것이 시 쓰기의 출발점이다.

 

그대가 한결같이 나를 생각한다면

내가 한결같이 그대를 생각한다면

환한 대낮에도 북두칠성은 반짝거리고

우리가 바람의 향기로

또 다시 만나

삼백 예순의 날 이천 번을 지나면

그때쯤에 우리는 나란히 누워 내내 행복할까요 -박해미 <운주사> 부분

 

시를 읽으면 운주사의 와불에 관한 시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떠났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서로를 생각하면 영겁의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나란히 누워 행복할 수 있다는 간절한 그리움이다.

한낮의 다솔사가 꽉 찼다 햇빛과 바람과 시간을 거느리고 저녁을 향해 내딛는 발등위로 한 잎 두 잎 씩의 비움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겨울을 맞이 할 준비인 것 이다 오랜 세월 견딘 소나무들이 정갈한 자세로 서서 길을 지키는 것도 생멸의 이치에 자신을 얹어놓은 모습이다 제 무게를 바람에게 내어놓은 까닭이다 – 송정현<가을, 다솔사> 부분

 

나무도 부처도 그냥 웃으시는 사찰은 풍경소리도 사람도 늘 맑아있어 좋다. 이번 갈무리의 사찰기행에 나타난 문학적 이해는 스스로 깊어지는 것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이면서 나무와 풀과 바람, 꽃과의 공감화법이다. 그래서 작품마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존재와 근원에 대한 수많은 물음표가 담겨있다. 우리로 하여금 원형의 삶에 다가서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가 하면, 그 마법적 상상력으로 세상을 향해 풀어놓은 전언은 혁명과도 같은 그리움을 열어놓는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으며 법당에 들어서는데 부처는 이미 나를 알아보고 목탁소리로 다녀가신다.’

사람을 향해 열려있는 정직하고 솔직한 법문으로 우리로 하여금 깊고 푸른 무량수전 한 채 짓게 한다. 나 몰래 그대가 필까봐 나 몰래 그대가 질까봐 귀를 열었는가 하면, 길 따라 길이 맑아지고 고요해져 몸 어딘가에 새겨진 기도의 언어를 찾는다.

 

저기,

연못 안에 계신분도 부처님 아니신가

어리연들이 다 신도들 아닌가

그림자로도 저 많은 꽃을 피우시네

여기가 사부대중 불국(佛國)일세

 

저기,

서 있는 사람들도 다 부처 아닌가

부처의 그림자가 걷고 있네  

그림자가 그림자를 만드네

사는 게 다 그림자 일세 -우동식 <불영사> 부분

 

이보시게 ‘저기 서 있는 사람들도 부처가 아니신가?’

천천히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의 모든 것이 다 부처요. 그들의 절실한 법문소리가 우레소리 처럼 들린다고 한다.

존재의 근원을 향해 열어놓은 갈무리의 응시는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맑은, 세상에서 가장 넓고 깊은 그리움의 발문법이다. 가만히 행간을 펼쳐보면 언어적 상상력을 따라 다녀 온 그들의 발품이 문득 고요해져 세상의 모든 소리가 지워진 자리마다 송이송이 통섭의 꽃이 피었다.

그리고 사람은 스스로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 그림자로도 저 많은 꽃을 피우신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갈무리의 작품을 만나는 순간에 이 말을 체험하게 된다.

마음의 거울에 비친 사물의 정체를 교감을 통해 진실된 마음의 눈으로 그려냄으로써 이상적 삶의 가치를 견인해 내는 것이다.

깨달음의 순간에 만나는 희열을 즐긴다.

시가 화엄일 수 있다는 것이 갈무리의 자존이다.

이상향의 꿈을 가꾸는 꽃밭이고 현실에 발을 두고 현실 밖의 하늘을 향해 있는 것이 시다.

시인을 하늘을 보고 걷고 철학자는 땅을 보고 걷는다고 하는 이유다.

 

바람의 등을 타고 왔어요

여기까지 오는, 환한 햇살의 길이 좋았어요

조금 늦었지만 허공 중에 꽃길 만들며

나 그대를 날아 올랐어요

백팔 개 번뇌의 잠들이

하얀 웃음 속에서 부서져 내렸어요

나 몰래 그대가 필까봐

나 몰래 그대가 질까봐

아주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였어요 - 박혜연<부석사 무량수전 앞 사과나무에게> 부분

 

‘나 몰래 그대가 필까봐 나 몰래 그대가 질까봐’ 귀를 기울이는 시인의 햇살 환한 봄길이 참 정겹다. 그 풍경 속을 걷는 시인에게 길은 길 너머로 가는 깨달음의 산책이리라.

이번 사찰기행문집은 시인과 작가의 자기성찰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어떻게 문인이 자존을 챙기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빛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잘 보여준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혹은 Be myself다.

내 운명을 사랑하고 있는지, 어떻게 자존을 세우는지 반성적 성찰까지 가능해진다.

 

선운사 동백숲에 이르러 사라지는 달거리 이야기를 할까 해요

나를 이 세상에 날아오게 하고

가지가지 꽃 피워냈던 그 것

붉은 꽃 실컷 피어있는 저 동백나무 아닐까 싶네요

초경이 낯설어 목 놓아 울던 새벽

얘야,

이 붉은 빛깔이 얼마나 고운지 너는 아직 알지 못하지

-최향란 <동백꽃, 동백꽃, 붉은 그것>부분

 

시의 울림은 또 가만가만한 자아 성찰에서 가능하다. 선운사의 동백을 또 이렇게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가만가만한 관찰의 결과다. 이런 성찰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시를 쓰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행복의 본질을 노크해 주기 때문이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으며

법당에 들어서는데

부처는 이미 나를 알아보고

목탁소리로 다녀가신다

더 숙여라

더 숙여라 -성미영<구도> 부분

본질을 바라보는 잔잔한 묵언이 참 숙연하고 참 향기롭다. 이렇듯 본질은 더하고 보태는 욕심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풀고 빼는 것에서 보이는 깨달음이다.

나를 낮추어 보면 더 선명하게 내가 보인다.

 

대충 건드려 볼 심상이면

눈길도 주지마라

미치도록 사랑할 수 없다면

다가서지 마라

한번 정주면 목숨까지

툭, 툭,

버릴 줄 알아야지

목숨 걸고 사랑할 수 없다면

발자국 소리도 들리게 하지 마라 -임호상 <붉다, 짙다> 부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작은 움직임 속에 큰 깨달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동백꽃을 이렇게 신명나게 쓸 수가 있다. 이렇게 꽃 속에 시가 있고 시 안에 사람이 있다.

‘사실’과 ‘생각’이 어떻게 관계하고 어떻게 상상력으로 확장되어가는지, 늘 보아오던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볼 것인지, 조금만 비껴서면 낯선 모습, 낯선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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