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공원이 시민공원이어야 할 이유
남산공원이 시민공원이어야 할 이유
  • 이상율 기자
  • 승인 2018.12.12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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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눈]

 

이상율 주필.
이상율 주필.

 

여수는 예부터 전해진 여수 팔경(麗水 八景)이 있다. 죽도청풍(竹島淸風), 소대제월(蘇臺霽月), 한산모종(寒山暮鐘), 종포어가(鐘浦漁歌), 예암초적(隸岩樵笛), 봉강조양(鳳崗朝陽), 마수청람(馬岫晴嵐), 경호귀범(鏡湖歸帆)으로 호남제일의 경치라 했다.

예암산은 산 모양이 쇠북처럼 생겼다하여 예암(隸岩)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예암초적으로 여수 팔경의 하나며 목동들의 피리소리가 들려오는 산이라는 뜻으로 매우 낭만적이다.

유추하면 산 높이라야 겨우 96m로 나무와 숲 잔디가 질펀하여 소먹이는 목동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라고 하니 산등어리의 질펀한 초원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시당국은 예암 산에 남산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1단계 사업으로 진입로 427m와 주차장 100면 등을 조성했다. 2단계로 조성계획 변경 및 실시설계용역을 실시하여 200억여 원을 투입해 광장, 전망카페, 조각공원, 산책로 등의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제7기 지방자치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시장이 취임하고 나서 갑자기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민간 자본 투자를 통한 관광랜드마크 형으로 개발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때문에 여수시가 직접 투자하여 자연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시민공원 형으로 조성하자는 주장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예암 산이 여수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시 당국은 시민공청회를 열어 여론의 집약을 꿈꾸었지만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 의견의 접점을 찾는데 는 실패했다. 랜드마크를 주장하는 측은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창출, 지속가능한 관광객 유치 등의 장점을 들어 이를 지지하고 있다.

한편 시민공원을 바라는 사람들은 시민들이 함께 누리는 공원이 되어야 한다면서 난개발, 투기 등으로 공원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이외에도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시민들이 이용 할 수 있는 가치를 충분하게 보장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박람회 사후 활용 법안이 제정됐으니 랜드마크는 박람회장에, 시민 공원은 예암산에 만들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남산공원 조성지역은 상업지역으로 개발할 수 있는 부지는 15천여 평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은 극히 제한적이라며 민자 투자의 배경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많다. 또한 공원주변의 현행 도로를 기준으로 할 때 조성 이후의 교통대란을 염려하기도 한다.

여수 관광객 1,300만 시대를 맞으면서 시민의 기대와는 달리 박람회 확정 이후부터 시작된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면서 도리어 시민들의 삶은 더욱 어렵게 됐다.

어느 날 일어나보니 대형 건설사들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바다가 조망되는 곳이면 어김없이 숙박시설이 들어섰고 곳곳에 난개발이 이루어지고 원정 투기꾼까지 합세하여 땅값과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올랐다.

가게의 임대료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물가는 비싸고 교통도 불편해지고 유명관광지가 갖는 포괄적 불편사항이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파고들어 심지어 오버투어리즘 현상까지 염려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상포지구의 스캔들과 웅천지역의 개발이익을 특정기업이나 특정인들의 이익 독점의 충격파가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상업지역이 겨우 15천 평 정도의 남산공원에 세계적인 명소를 조성하는 계획이 과연 타당성이 있는가? 라는 의문과 함께 자칫 인근지역 일대가 투기지역으로 변하지 않을까 염려가된다.

마치 동네 뒷동산과 같은 예암산은 멀리 오동도 거북선대교와 밤바다 야경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해변공원을 비롯한 구항 일대가, 가까이는 돌산대교 경호도 등 가막만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원도심 최고의 뷰포인트.

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시민의 행복 지수를 높이는데 공원만 한 게 없다. 이순신공원은 웅천의 고층 아파트에 묻혀 공원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여수에는 공원다운 공원이 없기 때문에 시민공원이 더욱 절실하다 하겠다.

예암 산 주변에는 당머리에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주벽으로 정운과 이대원장군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이 있고 아래는 새철이 있다. 사철소(沙鐵所)가 있었던 자리다.

사철소(沙鐵所)는 전라좌수영 본영으로부터 약 4km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에 필요한 무기 제조와 병기 공급 창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까지도 당시 제철소 폐기물 처리장으로 추정되는 봉산동 33, 4반 일대에서 지금도 쇠똥(제철과정에서 발생하는 슬래그)이 발굴되고 있다. 예암 산을 중심으로 인근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예술을 스토리텔링한 쾌적한 시민공원 조성이 바람직하다.

김성식은 문화인의 역사의식에서 이렇게 갈파했다. “문화는 역사의 덩어리요. 역사는 문화의 근원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문화는 역사의 열매요 역사는 문화의 뿌리다. 역사가 있는 곳에 문화가 있고 문화가 있는 곳에 역사가 있는 것이다.” 고 했다. 곱씹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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